나 개인으로 봤을 때 좋은일이 반드시 집단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 P36
우리가 엄격한 도덕에 대하여 펴고 있는 두 가지 반론은 결국 합쳐진다. 첫 번째 반론은 이런 것이다. 만약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목적이 그들이 스스로의 삶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을 돕는 데 있다면, 나 또한 나 자신을 위하여 유의미한 삶을 영위할 허가를 받은이다. 두 번째 반론은 만약 모든 사람이 엄격한 도덕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들 중 많은 사람이 아주 의미 있는 삶을 살지는 못하리라는 것이다. 이 두 반론을 종합하면 피터 싱어와 다른 엄격한 도덕철학자들이 제안하는 행위와 도덕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된다. - P37
사실을 털어놓고 말해보자면, 보통 사람들 대부분은 싱어와 그 밖의 다른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종류의 엄격한 도덕을 준수할 능력이 없다. 설사 그런 도덕이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굶주림을 종식시키는 것은 확실히 좋은 일이다-우리 자신을 극단적 형태의 이타주의에 전적으로 헌신시키는 것은 우리의 능력 범위 밖에 있는 것이다. 우리들 중에 도덕에 신경 쓰지 않는 자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도덕과 무관한 일들에 너무나 강하게 몰두해 있으므로 도덕이 그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해도 포기할 수가 없다. - P37
우리 보통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최선의 결과를 창조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차선으로 만족하는 사람들 satisficers‘이다. - P43
물론 우리가 하루 24시간 정언명령을 지키며 살 수는 없다. 항상 정직하기, 모든 약속을 지키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우리의 능력껏 재능을 개발하기 등은 우리에게 과한 요구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언명령을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모범으로 받들 수 있고 최선을 다하여 그에 부합하도록 노력할수 있다. - P45
칸트의 의무론은 그 나름의 기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약속을 위반하면 커다란 피해를 막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약속을 무조건 지켜야 하는가? 진실을 말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아주 나쁘게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는가? 칸트의 의무론이 적절한 도덕적 지침이 되려면 그 의무론을 일상적 도덕 생활에 좀 더 적용시키는 방식으로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정언명령이 우리 경험의 지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의 경험이 정언명령을 결정해버릴 위험이 있다. - P45
품위 있는 도덕적 행위는 이 세상에는 살아가야 할 삶이 있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 P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