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우리는 타인과 조우하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그 착각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를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 P37

역사와 시대를 탓하지 않고서는 삶에서 맞닥뜨리는 고비들을 지나올 수 없을 만큼 인생이 고단했던 한 남자. 그러나 나는 폴에게 아버지를 이해시키려고 하지는 않았다. 왠지 폴도 사실은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폴 역시 아버지를 탓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순간들을 통과해온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을 테니까. - P51

"나는 결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한국말을 배우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버지와 communicate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내가 벗어던지려 해도 절대, 절대 벗을 수 없는 내 피부색의 역사를 말이에요." - P58

교포들의 역사는 narrative적으로 진부하죠. 모든 집의 역사가 다 다르지만 이야기로 만들고 나면 결국 모두 cliché예요. - P59

누군가에게 가장 절실한 사연이 왜 타인 앞에서는 진부해지고 마는 걸까. - P59

설혹 그림책의 한 장면처럼 달빛 아래 함께 오줌을 눌 수 있었다 해도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바람과 달리 아름다운 엔딩을 갖고 있지 않은 법이니까. - P64

수많은 취객들 사이에 마주앉아, 폴이 들려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지금,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의해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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