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안락사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법을 가진 나라다. 유럽 전역에서 사람들이 이곳으로 죽으러 온다. 이것이 얼마나 기묘한 상황인지 이제 실감이 난다. 스위스에서는 밤 10시 이후에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리거나 일요일에 자기 집 잔디밭을 깎는 것이 불법이다. 하지만 자살은 합법이다. - P69

우리가 자살을 하지 못하게 막는 요소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요소는 서로 다르다. - P70

한 스위스인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스위스인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건 서로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서로를 신뢰한다. - P71

"일상적으로 상대하는 사람들을 믿지 못한다면, 사회 활동에 제대로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참여는 신뢰를 낳고, 신뢰는 참여를 뒷받침한다. 이 둘은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P72

"사람들은 대개 믿을 만하다." 여러 연구 결과,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웃을 믿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단지 이웃과 알고 지내기만 해도 삶의 질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특정 지역의 범죄율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 중 가장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 순찰 경찰관의 숫자 같은 것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살고 있는 아는 사람의 숫자다. - P72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권태는…………행복한 삶에 필수적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어쩌면 내가 스위스 사람들을 잘못 판단한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권태와 행복에 관해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을성과 권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권태 중에는 사실 성급함이라고 해야 옳은 것도 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싫고, 세상이 재미없어서 지루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권태는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세대는 소인배의 세대, 서서히 움직이는 자연과 심히 유리된 사람들의 세대, 생기 넘치는 충동이 죄다 꽃병에 꽂아놓은 꽃처럼 서서히 시들어가는 세대가 될 것이다." - P75

높은 곳에서는 잠재적인 위험을 모두 볼 수 있으니까, 눈에 띄는 것이 없을 때에는 긴장을 풀 수 있다. - P76

영국의 학자 애브너 오퍼는 "부가 성급함을 낳고, 성급함은 복지를 갉아먹는다"라고 썼다. 맞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성질 급한 사람이 많지 않다(그들이 불행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그때 깨달음이 찾아온다. 스위스인들은 부유하고 참을성이 많다. 이건 보기 드문 조합이다. 그들은 꾸물거리는 법을 안다. 사실 내가 스위스에 온 지 2주째인데, 지금까지 손목시계(시간이 틀리는 법이 없는 스위스제 금장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이제 가봐야 한다거나 당장 사무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사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항상 나다. 나는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는 작가인데도 50달러짜리 세이코 손목시계를 힐끔거린다. - P77

"어쩌면 행복은 이런 건지도 모른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하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 어쩌면 스위스의 지금 상황은………그저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 쉽게 해주는 것이라서 ‘행복해지기‘도 더 쉬운것 같다." - P77

우리는 선택이 바람직한 것이며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대개는 옳은 생각이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패러독스》라는 저서에서 선택의 자유도 지나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었다. 선택할 대상이 지나치게 많으면(특히 의미 없는 것들이 많으면), 우리는 혼란에 빠지고 기가 질려서 덜 행복해진다. - P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