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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가든 1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권기태 지음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오랜 만에 만난 상당히 괜찮은 소설이다. 정말, 아주 좋다.
책이 사람이라면 소설마다 빗댈 수 있는 스타일이 있다. 유랑 가객이나 모터사이클 선수, 미술관 큐레이터나 정신과 의사 같은 식으로 의인화할 수 있다.
이 소설을 그렇게 바꾼다면 ‘자연농원 원장’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초원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들처럼 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앵무새 같은 게 있는가 하면, 송어 같은 게 있다. 기린처럼 생긴 게 있는가 하면, 표범처럼 달려가는 게 있다. 그 하나 하나가 컬러풀해서 오래 들여다보고 싶고, 만져 보고도 싶다. 가능하다면.
‘파라다이스 가든’은 이런 이야기의 동물들이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다양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소설이다. 이야기들이 조화롭게 잘 어울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농원의 원장 같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원장은 끄는 힘이 상당히 강하다. 매력적이다.
나를 처음 끌어당긴 이야기는 김범오라는 평범한 인물이 자기 앞에 나타난 갖가지 장애물들을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것이었다. 김범오는 옥상에서 정원을 꾸미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다가 자기 상관의 질투를 받는다. 그 때문에 기업 오너십을 되찾으려는 젊은 사장의 권력 투쟁에 휩쓸려 들어간다. 자기 의지와는 달리 뭔가 큰 힘에 차근차근 끌려 들어가는 체험은 참 보편적인 것 같다. 유괴 당해서 꼼짝 못하고 범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아이의 이야기부터 그렇지 않은가.
두 번째 이야기는 수목원이 성림건설에게 넘어갈까 하는 점이다. 이 이야기는 이 소설의 2권을 완전히 장악한 사자나 호랑이 같다. 이 무시무시한 맹수 앞에 선 사람처럼 머리 속에는 잡념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로지 ‘앞으로 어떻게 될까’만 생각하게 된다.
소설 속의 김범오 역시 수목원이냐 성림건설이냐를 놓고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다 메피스토 같은 악마로부터 이런 유혹을 받는다.
비겁하다는 것, 그건 적자생존에서 살아날 우성형질
정의롭다는 것, 그건 자기주제를 모르는 히스테리
배신한다는 것, 그건 힘의 원리를 꿰뚫은 현실감각
의리 있다는 것, 그건 기꺼이 버림받겠다는 자포자기
(1권, 335쪽)
현실을 살아본 사람들은 알리라. 이 시구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그렇지 않은 이들은 아직 세상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거나 무신경한 건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계속해서 ‘상자 정원’의 이미지를 비춘다. 상자 만한 크기의 정원. 그러나 거기에 평범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소망을 미니어처처럼 꾸며놓은 정원. 그것의 이름이 ‘파라다이스 가든’이다. 현실의 힘이 폭풍처럼 몰아쳐 와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 개개인의 작은 낙원. 김범오가 그 작은 낙원을 잃지 않기 위해 최후의 싸움을 벌이는 대목들, 그리고 그와 남은 인생을 함께 하기로 한 강세연의 이야기는 감동을 남긴다. 아주 오래 가고, 진하고, 쉽게 잊을 수도 없는. 다른 무엇보다 내게는 그 이야기가 깊게 들어왔다.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사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