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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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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문학 신동의 작품이라고 해서 읽어 봤다. 샤프란 포어의 전작은 한 유대인이 러시아로 가서 나란 누구인가를 알아내는 과정을 담은 '모든 것이 아름답다'이다. 이 작품에 대한 호평들도 이미 들은 바 있었다.

일단 구입한 지 한달 가량 되었는데, 어제까지 약 절반 가량을 읽고 접기로 했다. 몇 가지 이 작품에 대한 칭찬에 대한 내 평가는 이렇다.

타이포 그라피 실험.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실험이 나와서 오히려 고풍스럽다는 인상이다. 그동안 이런 데에 관심이 없으셨던 분들한테는 다소 신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타이포그라피 실험과, 한 페이지에 한문장 정도씩 쓰고 지나가는 블랭크 실험(?)은 샤프란 포어만 쓰고 있는 게 아니다. 그의 부인인 니콜 크라우스도 '사랑의 역사'에 쓰고 있다. 이런 걸 독창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적이라고 해야 할지.

흑백 사진 삽입. 환갑이 다 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면 연극 장면들을 찍은 흑백 사진들이 여러 컷 들어있다. 이게 왜 특별한 실험인지 잘 모르겠다. 내용과 관련 있는 알레고리가 사진들 속에 있는가 했지만, 딱히 그것도 아니었다. 귀고리한 여자가 나와야 할 장면, 열쇠 구멍이 나와야 할 장면, 다리를 넘는 장면, 코끼리가 이야기 되는 장면마다 그 사진들이 나와있다.

이 소설이 곤혹스러운 건, 지루하고 산만하다는 점이다. 가령 주인공 소년이 열쇠 주인인 블랙을 찾아 나서서 한 여인의 집으로 들어간 장면을 보자. 그 집 벽에 코끼리 사진이 걸려 있어서 코끼리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무려 2페이지에 걸쳐서. 그런데 이게 이야기 진행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이런 대목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디테일 속에 신(god)이 있다는 말이 있다. 신의 섭리가 작품 곳곳에 작용하듯이 디테일도 정밀하고 테마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디테일을 이렇게 별다른 개념 없이 사용한 작품에 대해 샐먼 루슈디나 조이스 캐럴 오츠가 그렇게 극찬을 했다는 게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 둘 다 이제는 무대에서 내려오는 작가이기 때문에 그랬는 지도 모른다.

특히 '네가 있는 곳에 왜 나는 없는가'라는 제목으로 4개의 부에 나뉘어 쓰여 있는 이야기들은 산만하다 못해 난삽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앞서의 리뷰들에서 자극 받아 구입한 책이지만, 다소 후회스러운 느낌이 난다. 

하지만 이런 독후감이 내 것이기만을 바란다. 정말 완독한 분이 계시면 어떻게 이런 독서 장애를 뛰어넘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도움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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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9-3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각적으로 독특하고, ( 사진이 삽입된 것이 신기한건 아니지만, 마지막의 사진들은 꽤나 감동적이었어요) 2차대전과 9.11의 현재,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겹침을 따라가는 것이 혼란스러웠다는건 인정해요. 하지만, 결말로 가면서, 그 모든 것들의 이면이 보이게 되는 것은 얼마나 멋졌는데요. ^^ 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보면 지루하고, 그 이름 똑같은 대대손손들에 식겁하게 되지만, 마지막 열장으로 그 소설은 '소설이란 장르의 존재이유' 가 되지 않았을까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의 나열이 몹시도 짜증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제가 숨쉬는 시간에 이런 작가가 있어줘서 정말 운이 좋다. 라고 생각했어요.

개인 취향이 있는 것이니, 다만, 반만 읽고 접으셨다면,
끝까지 읽어보시면 어떤 감상하실지 궁금합니다.
마르께스까지 가져다 붙였으니, 제가 너무 큰 장담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
 
파라다이스 가든 1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권기태 지음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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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만난 상당히 괜찮은 소설이다. 정말, 아주 좋다.


책이 사람이라면 소설마다 빗댈 수 있는 스타일이 있다. 유랑 가객이나 모터사이클 선수, 미술관 큐레이터나 정신과 의사 같은 식으로 의인화할 수 있다.


이 소설을 그렇게 바꾼다면 ‘자연농원 원장’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초원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들처럼 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앵무새 같은 게 있는가 하면, 송어 같은 게 있다. 기린처럼 생긴 게 있는가 하면, 표범처럼 달려가는 게 있다. 그 하나 하나가 컬러풀해서 오래 들여다보고 싶고, 만져 보고도 싶다. 가능하다면.

‘파라다이스 가든’은 이런 이야기의 동물들이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다양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소설이다. 이야기들이 조화롭게 잘 어울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농원의 원장 같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원장은 끄는 힘이 상당히 강하다. 매력적이다.


나를 처음 끌어당긴 이야기는 김범오라는 평범한 인물이 자기 앞에 나타난 갖가지 장애물들을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것이었다. 김범오는 옥상에서 정원을 꾸미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다가 자기 상관의 질투를 받는다. 그 때문에 기업 오너십을 되찾으려는 젊은 사장의 권력 투쟁에 휩쓸려 들어간다. 자기 의지와는 달리 뭔가 큰 힘에 차근차근 끌려 들어가는 체험은 참 보편적인 것 같다. 유괴 당해서 꼼짝 못하고 범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아이의 이야기부터 그렇지 않은가.

두 번째 이야기는 수목원이 성림건설에게 넘어갈까 하는 점이다. 이 이야기는 이 소설의 2권을 완전히 장악한 사자나 호랑이 같다. 이 무시무시한 맹수 앞에 선 사람처럼 머리 속에는 잡념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로지 ‘앞으로 어떻게 될까’만 생각하게 된다.

소설 속의 김범오 역시 수목원이냐 성림건설이냐를 놓고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다 메피스토 같은 악마로부터 이런 유혹을 받는다.


  비겁하다는 것, 그건 적자생존에서 살아날 우성형질

  정의롭다는 것, 그건 자기주제를 모르는 히스테리

  배신한다는 것, 그건 힘의 원리를 꿰뚫은 현실감각

  의리 있다는 것, 그건 기꺼이 버림받겠다는 자포자기

  (1권, 335쪽)


현실을 살아본 사람들은 알리라. 이 시구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그렇지 않은 이들은 아직 세상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거나 무신경한 건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계속해서 ‘상자 정원’의 이미지를 비춘다. 상자 만한 크기의 정원. 그러나 거기에 평범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소망을 미니어처처럼 꾸며놓은 정원. 그것의 이름이 ‘파라다이스 가든’이다. 현실의 힘이 폭풍처럼 몰아쳐 와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 개개인의 작은 낙원. 김범오가 그 작은 낙원을 잃지 않기 위해 최후의 싸움을 벌이는 대목들, 그리고 그와 남은 인생을 함께 하기로 한 강세연의 이야기는 감동을 남긴다. 아주 오래 가고, 진하고, 쉽게 잊을 수도 없는. 다른 무엇보다 내게는 그 이야기가 깊게 들어왔다.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사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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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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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구석에 박혀 있는 일을 찾아낸 과정과 그곳에서 저만의 세계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감동을 주는 책이다.

  일본의 손꼽히는 다독가, 논픽션 저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제 일을 찾아 몰두하고 있는 11명의 청춘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무언가 나만의 일을 찾고 싶은 나에게는 생생한 느낌과 감동을 주었다.


   한 장의 생생한 동물 사진을 찍기 위해 일주일 동안 절벽에 매달려 있었던 미야자키 마나부 씨, 명문대를 나왔지만 산에서 매를 훈련시켜 사냥을 하게 하는 ‘수할치’가 된 마쓰바라 히데토시 씨, 원숭이와 어울려 지내면서 자기혐오에 빠졌다가 기어코 최고의 원숭이 조련사가 된 무라사키 타로 씨, 갑작스러운 사고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되자 자전거 선수에서 최고의 자전거 프레임 제작자로 변신한 나가사와 요시아키 씨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

  다치바나는 ‘고양이 도서관’이라는 자기만의 개인 도서관을 갖고 있는 내가 정말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이런 말이 가슴을 적신다. “망설임과 방황, 실패와 낙담을 겪는 청춘의 표류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적당주의로 사는 젊은이가 일본에 많다고 생각했는데, 만나 보니 너무나 매력적인 친구가 널려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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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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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입한 지 이틀만에 다 읽어 버린 책이다. 책 장정도 예쁘거니와 내용이 쉽고도 지적이다. 하지만, 구성이 다소 방만한 느낌을 주어 처음부터 코드가 맞지 않는 독자들은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란 인상이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2054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영국 옥스퍼드대의 중세학도 키브린은 1320년으로 향하는 시간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총명함을 아끼는 던워디 교수는 마녀 사냥꾼과 갖가지 질병들이 널려있는 위험한 중세로 그녀가 떠나가는 것이 불만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 여행은 야심만만한 학장 대리 킬크리스트가 밀어붙이는 것이라 제대로 반기를 들지도 못한다. 결국 위험은 현실로 나타난다. 키브린은 기술적 장애로 1320년이 아니라 페스트가 만연하던 1348년의 옥스퍼드로 보내진 것이다.

  미국 여성 작가인 코니 윌리스는 내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휴고상, 네뷸러상을 8회, 6회 받았다니 미국에서는 대단한 기록인 것 같다. 로커스상까지 받았다는 걸 보면(이 상이 얼마만한 권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손꼽히는 미국 작가인 것 같다.

  ‘둠즈데이 북’이 높게 평가받는 것은 SF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과학적 사고를 밑바탕에 둔 채 사실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중세 영국의 생생한 생활상과 페스트에 맞선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가 실감나게 재현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간여행’은 이야기의 큰 장치로만 사용되며 엄격한 인과규칙이 적용돼 현재의 인물들이 과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SF이면서도 본격소설의 특장을 보이는 이 소설은 탈(脫)장르적 상상력의 ‘경계소설(slipstream)’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위트 넘치는 문장들, 짧고 빠른 대화, 독자들의 궁금증이 일게끔 정보 공급을 조절하는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탁월하다. 시간여행, 기술의 오류, 14세기 중세를 연구하는 학자들, 돌아갈 길을 잃은 시간여행자, 중세 영주의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페스트의 발병 같은 요소들은 뒷날에 나온 마이클 크라이튼의 작품 ‘타임 라인’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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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모순어록
마디 그로스 지음, 하남경 옮김 / 고즈윈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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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구절 나오는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짤막짤막하게 읽으면서 무언가 인생의 패러독스를 알수 있는 책이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삶에는 정반대의 일, 행복과 불행, 선과 악이 뒤섞여 있다”고 말했다. 삶의 이 같은 현실을 갈파해 내면 명언이 된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집에는 수많은 벗이 함께한다. 특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침이면.” 벗들조차 실상 아무런 참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을 직시한 말이다.

  수많은 책들을 뒤져서 분류해낸 지은이의 노력이 대단하다.

  거기에는 심리학자인 지은이의 예리한 눈매가 보이는 대목들이 많다. 에리카 종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더한 위험이 찾아온다’는 말 같은 것이다.

  공자와 노자에 정통했던 소로는 “진실은 언제나 역설적”이라고 말했다. 뭔가 이 책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듯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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