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구입한 지 이틀만에 다 읽어 버린 책이다. 책 장정도 예쁘거니와 내용이 쉽고도 지적이다. 하지만, 구성이 다소 방만한 느낌을 주어 처음부터 코드가 맞지 않는 독자들은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란 인상이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2054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영국 옥스퍼드대의 중세학도 키브린은 1320년으로 향하는 시간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총명함을 아끼는 던워디 교수는 마녀 사냥꾼과 갖가지 질병들이 널려있는 위험한 중세로 그녀가 떠나가는 것이 불만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 여행은 야심만만한 학장 대리 킬크리스트가 밀어붙이는 것이라 제대로 반기를 들지도 못한다. 결국 위험은 현실로 나타난다. 키브린은 기술적 장애로 1320년이 아니라 페스트가 만연하던 1348년의 옥스퍼드로 보내진 것이다.
미국 여성 작가인 코니 윌리스는 내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휴고상, 네뷸러상을 8회, 6회 받았다니 미국에서는 대단한 기록인 것 같다. 로커스상까지 받았다는 걸 보면(이 상이 얼마만한 권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손꼽히는 미국 작가인 것 같다.
‘둠즈데이 북’이 높게 평가받는 것은 SF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과학적 사고를 밑바탕에 둔 채 사실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중세 영국의 생생한 생활상과 페스트에 맞선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가 실감나게 재현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간여행’은 이야기의 큰 장치로만 사용되며 엄격한 인과규칙이 적용돼 현재의 인물들이 과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SF이면서도 본격소설의 특장을 보이는 이 소설은 탈(脫)장르적 상상력의 ‘경계소설(slipstream)’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위트 넘치는 문장들, 짧고 빠른 대화, 독자들의 궁금증이 일게끔 정보 공급을 조절하는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탁월하다. 시간여행, 기술의 오류, 14세기 중세를 연구하는 학자들, 돌아갈 길을 잃은 시간여행자, 중세 영주의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페스트의 발병 같은 요소들은 뒷날에 나온 마이클 크라이튼의 작품 ‘타임 라인’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