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 불확실한 시대, 최고의 결정을 이끄는 확신의 프레임
피터 애트워터 지음, 송이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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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부터 들고 결정적인 순간엔 한 발 물러서곤 한다. 그래서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움츠러들게 된다. 그런데 피터 애트워터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은 그런 나에게 '문제는 너 자신이 아니라 너를 둘러싼 인식의 틀'이라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밤새워 분석한 재무제표와 차트, 전문가들의 낙관적인 전망까지 모든 데이터가 ‘상승’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시장은 무섭게 돌아서며 나를 비웃었다. 처절한 실패 앞에서 무엇을 놓쳤던 걸까?

시장을 움직이는 것이 냉정한 데이터가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사람들의 뜨거운 감정, 즉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나는 기업의 가치와 경제 지표만 맹신했을 뿐 그 시장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안과 탐욕, 희망과 절망이라는 거대한 감정의 파도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감’이라는 감정이 단순한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신뢰가 높을 때와 낮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깊은 공감을 느꼈다.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은 보통 위험 이나 불확실성에 더 크게 반응하고, 자연스럽게 시야가 좁아진다. 이 책은 그런 반응이 잘못된 게 아니라 사람의 자연스러운 심리 흐름이라고 말해주었다.

사회와 시장의 흥망성쇠는 사람들이 미래를 얼마나 확신하고, 자신의 삶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지 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두 축을 기준으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리고 그 인식이 어떻게 현실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K자형 회복’처럼 동일한 경제 현상 속에서도 누군가는 기회를 잡고 누군가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양극화의 본질이 결국 이 ‘자신감의 격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신감 사분면을 통해 현재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고, 각 영역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공한다. 특히 "어느 영역에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확신이 생긴다"는 저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객관화하고 구조화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더 넓은 시야로 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그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책은 작은 단서부터 주의 깊게 보고, 감정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대다수가 간과하는 부분을 질문해보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은 미래를 점치는 예언서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예측하려는 오만함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라고 조언하는 현명한 안내서에 가깝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 인간 심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세상을 꿰뚫어 보는 단단한 혜안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항해하는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위즈덤하우스 #보이지않는것을보는법 #피터애트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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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다 2 - 역사의 변곡점을 수놓은 재밌고 놀라운 순간들 역사를 보다 2
박현도 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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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착맨 유튜브의 애청자이자 ‘애굽민수’ 곽민수 소장님의 찐팬이다. 소장님이 침착맨 방송에 나와 끝없이 쏟아내시는 그 방대한 이집트 TMI를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으로서, 그가 필진으로 참여한 '역사를 보다 2'는 사실 애굽민수 굿즈 사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내 기대를 뛰어넘었다. 특히 곽민수 소장님의 이집트 파트는 그야말로 ‘음성 지원’이 되는 듯했다. 한 문장 한 문장에서 특유의 열정적인 톤과 신난 말투가 들리는 듯해 입꼬리를 올리며 읽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시간 제약이나 침착맨의 영상에서는 못 풀어냈던 얘기들도 책에서는 고삐 풀린 듯 마음껏 펼쳐진다. 미라를 만드는 디테일한 과정부터 파라오들의 인간적인 고뇌까지 그가 왜 이집트에 이토록 빠져있는지를 페이지마다 온몸으로 증명해낸다. 이런 부분들이 팬으로서는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그냥 교양이 아니라 나를 ‘과거로 여행 보내는 시간여행 티켓’ 같았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피라미드 안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단순히 ‘이집트는 신비롭다’는 게 아니라, 왜 그런 문화가 생겼고, 그것이 어떻게 인류 문명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솔직히 처음엔 곽 소장님 파트부터 완독하고 책장에 꽂아둘 생각이었는데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이왕 샀으니 다른 분들 이야기도 한번 훑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가, 그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고 말았다.

박현도 교수님의 이슬람 이야기는 뉴스에서 단편적으로만 보던 이슬람 세계에 대한 나의 얄팍한 편견을 산산조각 냈다.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들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알고 나니 비로소 하나의 문명으로서 존중하게 되었다. 강인욱 교수님을 따라나선 북방 초원의 역사에서는 내 머릿속의 역사 지도가 한반도를 훌쩍 넘어 대륙까지 확장되는 것을 알게되었다. 정요근 교수님 덕분에 ‘힙스터의 나라’ 고려의 재발견은 또한 흥미 포인트였다. 늘 신라와 조선 사이에 끼인 왕조 정도로만 생각했던 고려가 그토록 개방적이고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나라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지식의 향연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허준 MC의 이야기까지 어느 하나 버릴 파트가 없었다.

'역사를 보다 2'는 한 명의 최애 전문가를 따라 들어왔다가, 어느새 다섯 명의 매력적인 이야기꾼 모두에게 입덕하게 되는 신기한 책이다. 좋아하는 전문가의 지식을 온전히, 방해받지 않고 풀버전 으로 즐기고 싶은 팬심을 120% 만족시켜주는 동시에,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역사 분야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열쇠가 되어주었다.

나와 같이 침착맨 채널에서 곽민수 소장님의 이야기에 매료된 분이 있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애굽민수’의 이야기들을 즐길 수 있다. 당신의 지적 세계를 몇 배는 더 넓혀줄 최고의 역사 길잡이들을 한꺼번에 만나는게 된다.

#역사를보다2 #원앤원북스 #박헌도 #곽민수 #애굽민수 #강인욱 #정요근 #허준 #보다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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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안경사 - 안경사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직업 공감 이야기 비기너 시리즈 13
공대일 지음 / 크루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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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사로서 나의 일은 환자의 몸에 집중하는 것이다. 통증으로 굳어진 관절을 풀고 약해진 근력을 되살려 다시 자유롭게 걷고 움직이는 기쁨을 되찾아주는 일이다. 늘 환자의 움직임과 기능을 고민하던 내게, '보는 것'의 가치를 다루는 공대일 작가의 '행복을 주는 안경사'는 신선한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같은 의료기사 직군에 속해 있지만 전혀 다른 감각을 다루는 안경사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이 책을 보고나서 분야를 넘어선 깊은 동질감과 뜨거운 직업적 공감을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안경사라는 직업의 A to Z를 친절하게 안내하지만 내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단순히 정보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몸에 최적화된 '기능'을 찾아주려는 전문가의 치열한 고민과 철학이었다. 환자의 보행 패턴과 생활 반경을 분석해 맞춤 운동 프로그램을 짜는 나의 일처럼 저자는 고객의 얼굴 형태와 보는 습관, 직업까지 고려해 가장 완벽한 세상을 보는 창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미세한 각도와 작은 수치 하나로 환자의 편안함이 좌우되는 것을 숱하게 경험했기에 섬세한 피팅 과정 하나하나에 담긴 노력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작가가 꾸준히 자신의 일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태도는 큰 자극이 되었다. 단골 고객이 생기는 이유 또는 다시 그 사람을 찾는 이유는 단지 좋은 안경을 써서가 아니라 나를 존중해주는 전문가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내 환자들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치료사가 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때로는 더딘 회복에 좌절하는 환자를 다독이고 보이지 않는 통증을 공감하려 애쓰는 순간들. 작가가 까다로운 클레임을 해결하고 고객의 미소를 마주하며 느끼는 보람은 내가 환자의 통증이 줄었다는 말 한마디에서 얻는 희열과 정확히 같았다.

행복을 주는 안경사는 내게 익숙했던 치료의 개념을 새로운 감각으로 확장시켜 주었다. 이 책은 비단 안경사를 꿈꾸는 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나와 같은 물리치료사는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불편을 덜어주고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의료인들에게 큰 영감과 위로를 줄 것이라 확신한다.

#행복을주는안경사 #크루 #비기너시리즈 #안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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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 웨이 - 초격차를 만드는 괴짜들의 마인드셋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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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일상처럼 사용하는 나에게 앤드루 맥아피의 '긱 웨이'는 꽤 반가운 책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결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데이터, 그리고 이를 다루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조직과 개인의 경쟁력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다룬다. AI가 이미 내 업무와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만큼 책 속 ‘긱 문화’의 특징이 AI 활용 방식과 크게 맞닿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 말하는 ‘긱(Geek) 방식’이라는 게 무슨 대단한 천재들의 비법 같은 게 아니었다. 그냥 딱 내가 AI랑 일하는 방식이었다. 가설 세우고, 데이터로 증명하고, 계속 시도하면서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거. 내가 더 좋은 결과 얻으려고 프롬프트 이리저리 바꿔보고, 나온 결과물 보면서 ‘아, 이건 좀 아니네’ 하고 바로 수정하는 과정이랑 똑같았다.

특히 속도, 주인의식, 개방성, 과학. 이 네 가지 원칙은 굉장히 공감됐다.
AI 덕분에 일하는 속도는 미친 듯이 빨라졌는데, 조직의 의사결정 속도는 거북이걸음이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바로 그게 문제라고 완벽한 계획 짜느라 시간 다 보내지 말고 일단 빨리 해보고 고쳐나가는 게 맞다고 말해준다. 또 AI가 있으니 전엔 팀 단위로 붙어야 했던 일도 혼자서 거뜬히 해낸다. 그럼 당연히 내 일에 대한 주인의식도 커지고, 더 많은 자율성이 주어져야 신나서 일할 텐데, 회사는 여전히 사사건건 간섭하려 든다. 이 책은 그냥 목표를 명확히 주고 믿고 맡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딱 짚어준다.

‘데이터 기반 판단’은 AI 활용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감이나 경험만으로 결정을 내리는 대신, AI를 통해 얻은 분석 결과와 통계적 근거를 참고하면 훨씬 명확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맥아피의 메시지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기술을 보유하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을 의사결정의 구조 속에 녹여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크게 와닿았던 건 ‘권위보다 협업’이라는 부분이었다. AI는 위계나 직급을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든 아이디어를 던지고, 데이터를 공유하고, 그 결과를 팀 전체가 발전시킬 수 있게 만든다. 긱 문화에서 강조하는 개방성은 AI가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데 필수적인 태도라는 걸 새삼 느꼈다.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든 구조 문화라고 생각했다.

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기술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조직문화라고 말한다. AI를 자주 쓰는 입장에서, 나 또한 더 빨리 시도하고, 더 많이 공유하고, 더 깊게 분석하는 긱적인 습관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진짜 경쟁력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긱 웨이'는 단순한 경영 전략서가 아니라, AI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AI를 자주 쓰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방식이 긱스러운지 돌아보게 됐다. 더 빠르게 시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데이터를 근거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아이디어를 개방적으로 공유하는 것. 이 네 가지 습관이야말로 AI와 긱 문화가 만날 때 생기는 진짜 시너지라는 확신이 들었다.

#긱웨이 #앤드루맥아피 #초격차를만드는괴짜들의마인드셋 #청림출판 #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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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다 죽은 여자들 - 가장 조용한 참사, 교제폭력을 말하다
경향신문 여성서사아카이브 플랫 지음 / 동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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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독자로서 동녘 출판사의 헤어지다 죽은 여자들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마음 한구석에는 막연한 방어기제와 불편함이 자리했다. 교제 살인이라는 끔찍한 단어는 나와는 무관한 극단적인 일부 괴물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뉴스에서 종종 나오는 사건들이 떠올랐다.

이 책은 결코 남성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찍는 고발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남성으로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거나 혹은 외면했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책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사건 기록과 유가족의 절규는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며, 어쩌면 내 주변의 누군가가 겪었거나 겪고 있을지 모를 고통의 기록임을 깨닫게 한다.

일상 속에서 여성들이 겪은 참혹한 폭력의 실태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무관심, 제도적 한계, 피해자 탓하기 문화 등을 냉정하게 비판한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과연 이런 문제에 아무 관련이 없는 존재일까?" 라는 자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적으로 가해나 방관에 연루된 적은 없지만 나 역시 주변에서 벌어지는 경미한 농담, 성차별적 분위기, 피해자를 향한 무심한 시선을 외면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남성으로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지점은 가해자들이 휘두른 폭력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쉽게 포장되고 오용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사랑해서 그랬다”는 변명, 집착과 통제를 ‘열정적인 애정 표현’으로 착각하는 자기 합리화는 비단 특정 가해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용인해 온 가부장적이고 왜곡된 관계 인식이 폭력의 씨앗이 되었음을 책은 명확히 보여준다. ‘네가 걱정돼서 그래’, ‘다른 남자 만나지 마’ 와 같은 일상적인 말들이 어떻게 상대방을 옥죄는 통제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그 경계에 대해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제도적 문제 역시 뼈아프게 느껴졌다. 경찰과 법원은 여전히 친밀한 관계의 폭력을 사적인 갈등으로 치부하고 피해자가 신고를 반복해도 실질적인 보호 장치는 제공되지 않는다. 결국 법과 제도가 폭력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대신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 무관심 속에서 피해자는 언제든 다음 희생자가 될 수 있다. 11번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막지 못한 시스템의 실패는 이 문제가 단순히 남녀 간의 갈등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안전망에 뚫린 거대한 구멍임을 증명한다.

책이 주는 불편함은 회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반드시 마주해야 할 각성의 계기임을 절감했다. 이는 내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다. ‘헤어지자’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 그런 공포를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일정 부분 안전 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남성들이 더 읽어야 할 책이다. 교제폭력의 구조와 문화는 대체로 남성의 침묵과 무관심 속에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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