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해도 부모입니다 - 임수희 판사와 함께하는 아이를 위한 면접교섭
임수희 지음 / 동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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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나에게 이혼과 부모라는 제목은 내게 직접적으로 와닿았다. 두 단어의 조합은 부모의 이혼이 단순히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삶 전체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몸소 경험했었다. 책에 담긴 이야기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고 오히려 내 어린시절 기억들을 소환하는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 가장 아프게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와닿았던 메시지는 “부모의 역할은 이혼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당연하고도 어려운 진실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이 서로를 향해 쏟아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스러웠다. 두 분은 내게 직접적으로 상대방을 미워하라고 말하지 않았을지언정그들 사이를 감도는 차가운 공기와 날 선 대화들은 보이지 않는 벽이 되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 아이가 겪는 혼란과 죄책감의 근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면접교섭은 부모의 권리가 아닌 아이의 권리’라는 대목을 읽으며 과거의 내가 느꼈던 무거운 책임감의 정체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어른들은 자신의 상처와 권리 주장에 집중하지만 그 사이에서 아이는 자신이 마치 두 사람이 나눠 가져야 할 물건이나 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만약 그때 누군가 나에게 “이건 너를 위한 시간이고 네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다”라고 따뜻하게 말해주었다면 조금 더 당당하게 양쪽 부모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부모님이 조금만 더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아쉬움은 원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판사로서 저자가 담담하게 전하는 수많은 부부의 사연 속에서 나는 나의 부모님 역시 그저 서툴고 부족했던 사람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의 상처를 돌볼 겨를도 없이 부모의 역할을 해내야 했던 그들의 고뇌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과거를 향한 날 선 질문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이해와 연민으로 바꾸어 주었다.

과거의 나처럼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롭게 아파하지 않기를 그리고 모든 부모가 아이를 향한 책임의 무게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진심이 책 전반에 진하게 담겨 있다.

#이혼해도부모입니다 #임수희판사 #아이를위한면접교섭 #동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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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인사이트·디자인
터너 더크워스.자일스 링우드 지음, 정상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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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만 보고 '브랜드 전문가나 디자이너들이 읽는 전문 서적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이 책이 전문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 흥미롭고 깊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브랜드가 단순히 로고나 광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과 감정을 남기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평소 습관처럼 사용하던 제품과 서비스를 떠올리며 '나는 왜 이 브랜드를 선택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와 경험에 큰 영향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 소비자는 광고를 건너뛰고 팝업창을 닫을 수 있지만 디자인만큼은 피할 수 없다. 매장에서 손에 쥔 제품의 포장, 거리를 스치는 로고, 온라인에서 마주하는 이미지 등 디자인은 브랜드와의 첫 만남을 주선하는 ‘피할 수 없는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는 브랜드의 모든 것을 정직하게 말해준다.

‘심플하지만 오래 기억되는 디자인’이 가장 강력하다는 설명 역시 공감 가는 대목이었다. 왜 유명한 로고들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형태를 띠는지 이해하게 되니 길에서 무심코 보던 간판이나 포장 디자인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단순한 그림 속에 브랜드의 철학과 전략이 숨어 있는 비밀 코드를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원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코카콜라다. 코카콜라의 흘려 쓴듯한 스펜서체 로고와 잘록한 컨투어 병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행복, 축제, 짜릿한 순간 같은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 우리는 그냥 콜라를 마시는 게 아니라 그 병을 쥐는 촉감과 로고가 주는 익숙함 그리고 그와 연결된 수많은 기억을 함께 소비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코카콜라의 빨간색이 왜 그토록 강렬하게 느껴지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어려운 전문 용어는 거의 없었고 다양한 브랜드 사례가 소개되어 이해하기 쉬웠다. 물론 디자인 업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부분적으로 낯선 설명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방해는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단순해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기까지 그토록 깊은 고민을 하는구나' 하고 그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이 책은 브랜드를 바라보는 나의 눈을 많이 바꿔 주었다. 이제는 로고나 광고를 볼 때 단순히 ‘예쁘다, 멋지다’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 브랜드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브랜딩 인사이트 디자인'은 디자인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재미있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브랜드의 세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브랜딩인사이트디자인 #터너더크워스 #자일스링우드 #을유문화사_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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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 나라다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
백낙청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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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의 밤을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장면 중 하나로 기억하며 백낙청 교수의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라는 책의 제목이 더 와닿았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의 심장부에서 울려 퍼진 계엄령 선포는 우리가 피땀으로 쌓아 올린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극단으로 치우치고 또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를 폭로한 참담한 내란 행위였다. 분노와 무력감 속에서 이 책이 던지는 ‘변혁적 중도’라는 화두가 바로 그와 같은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길이라는 점에서 깊은 공감과 절박함을 느꼈다.

저자가 평생에 걸쳐 통찰해온 ‘분단체제’라는 개념은 12.3 내란을 통해 끔찍한 실체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내란을 실행한 세력들이 내세운 질서 와 안정이라는 이름의 거짓된 중도는 사실상 극단의 폭력으로 체제를 유지하려는 기만일 뿐이었다. 그들은 남북의 대결 구도를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한 방패로 삼고 민주적 절차를 파괴하며 헌정질서를 유린했다. 분단체제가 단순히 군사적 대치 상황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극우와 극좌의 논리만을 강화시키는 근원적 모순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12.3 내란은 그 모순이 곪아 터진 비극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중도의 길은 단순히 양쪽의 극단을 절충하는 미온적 방식이 아니라 역사를 직시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이고 변혁적인 태도였다. 불의에 맞서 싸우되 또 다른 극단으로 기울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변화를 추구하는 것. 이는 내란 세력이 보여준 왜곡된 중도와는 전혀 다른, 진정한 의미의 통합과 전진을 위한 실천적 전략이다. 12.3 내란을 겪은 우리에게 ‘변혁적 중도’는 더 이상 학술적 담론이 아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생존의 철학이 되었다.

촛불 혁명에서 보여준 시민의 위대한 힘을 새로운 체제, 즉 ‘2025년 체제’를 여는 핵심 동력으로 주목한다. 12.3 내란이 선포되었을 때 가장 먼저 거리로 뛰쳐나와 불의에 저항했던 것은 이름 없는 시민들이었다. “민주주의는 한 번 쟁취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균형과 성찰 그리고 시민의 실천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금 되새겼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에너지가 어떻게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지 우리의 저항에 역사적 정당성과 미래 비전을 부여해주었다.

12.3 내란이 남긴 상처를 넘어 우리가 무엇을 청산하고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게 되었다. 백낙청 교수의 혜안을 나침반 삼아 이제 우리는 내란 세력을 단죄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다시는 발붙일 수 없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변혁적중도의때가왔다 #백낙청 #중도 #정치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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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길 것 버릴 것 간직할 것 - 공간의 가치를 되살리는 라이프 시프트 정리법
정희숙 지음 / 큰숲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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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정리'를 하며 살아가야한다. 하지만 정희숙 작가의 '남길 것 버릴 것 간직할 것'은 단순히 정리와 버림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우리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1세대 공간 컨설턴트인 저자는 수많은 집을 방문한 경험을 통해 "집의 시간과 삶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갈 때 문제가 생긴다"는 핵심적인 통찰을 전한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추억 이나 소유를 이유로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그 속에 정말 나를 살찌우는 것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은 물건뿐 아니라 관계, 습관, 심지어 오래된 상처까지도 ‘정리’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단순한 미니멀리즘을 넘어 삶의 균형과 마음의 평화를 위한 정리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책의 제목인 '남길 것, 버릴 것, 간직할 것'은 단순히 물건을 분류하는 기준을 넘어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를 되묻는 세 가지 질문이 된다. 특히 이 책은 버림 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남았던 부분은 ‘버리는 일은 곧 비워내는 일이 아니라 더 소중한 것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과정’ 이라는 메시지였다. 그동안 나는 버림을 곧 손실로만 생각했는데 작가는 그것을 채움의 준비 로 설명한다. 나를 더 이상 행복하게 하지 않는 과거의 물건, 불필요한 관계,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내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넓히는 것을 넘어, 내 삶에 새로운 기회와 더 따뜻한 관계, 그리고 나다운 삶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는 창조적인 과정인 것이다.

버림을 통해 공간이 생겼다면, 이제 무엇을 남기고 간직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남길 것' 은 현재 나의 일상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실용적인 요소들이다. 동선에 맞는 가구 배치, 효율적인 수납 시스템 등 수많은 현장 경험에서 얻은 현실적인 팁들을 통해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토대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간직할 것' 은 나의 정체성과 추억이 담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다. 책은 이러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보일 수 있도록 전시 하라고 말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간직할 가치가 있는 것, 곁에 둘 사람, 끝까지 지켜야 할 신념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당장 집 안의 물건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마음속에서 오래된 집착과 불필요한 감정들을 내려놓아야겠다는 다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어지러운 집이 지금 내가 힘들다는 신호이듯 정돈된 공간은 흩어진 마음을 다잡을 힘을 주기 때문이다.

#남길것버릴것간직할것 #큰숲출판사 #정희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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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실의 멜랑콜리아 - 흔들리는 어린 삶에 곁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박상아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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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아 작가의 책 '어느 교실의 멜랑콜리아'는 교실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익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그 안에 담긴 보이지 않는 감정의 모습을 그려낸 책이다. 흔히 교실은 배움과 성장, 친구들과의 빛나는 추억이 쌓이는 공간으로만 기억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밝은 조명 뒤에 드리워진 우울과 침묵, 소외와 같은 서늘한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작가는 ‘멜랑콜리아’라는 단어로 교실 속의 독특한 분위기를 정확히 포착한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우울증을 넘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여러 인간의 감정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집단적인 정서에 가깝다. 교실은 인간의 내면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 안에는 성적이라는 계급, 친구 관계라는 권력, 그리고 ‘정상 가족’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뚜렷하게 작동한다.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균열과 긴장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교실을 무겁게 뒤덮는 멜랑콜리아의 일부가 된다.

책을 읽으며 나는 학창 시절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승의 날이나 어버이날이 다가올 때마다 느꼈던 미묘한 소외감,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애써 다른 아이들보다 더 밝게 웃으며 화제를 돌려야 했던 순간들. 이 모든 것이 ‘괜찮다’는 말 뒤에 숨겨야 했던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꿰뚫고 있었다. 교실의 우울은 단지 학업 스트레스 때문만이 아니라, 이처럼 말하지 못하는 각자의 사정과 소외감이 안개처럼 모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작가는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교실 속 ‘침묵’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겉으로는 평온하고 조용한 분위기이지만, 그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 혹은 외면당하고 있다는 상실감이 짙게 배어 있다는 점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그 침묵은 동정의 시선을 받을까 봐, 혹은 ‘다르다’는 꼬리표가 붙을까 봐 늘 씩씩한 척해야 했던 나의 침묵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비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수많은 감정을 억누르고 소화해야 했던 치열한 분투의 시간이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위로는 어설픈 희망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만 힘든 게 아니야” 혹은 “씩씩하게 이겨내야지” 같은 말들이 얼마나 공허하고 때로는 폭력적일 수 있는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작가는 아이들의 상처를 섣불리 위로하거나 섣부르게 진단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그 아이의 곁에서 그 우울의 풍경을 함께 응시하며 담담하게 기록할 뿐이다.

그 고요한 응시야말로 가장 필요했던 위로였다. 상황을 문제로 규정하고 해결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있는 슬픔을 온전히 인정해 주는 시선. 작가의 글을 읽는 내내 교식 속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받는 기분을 느꼈다.

작가가 보여준 이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교실을 넘어 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교육이란 결국 지식 전달 이전에 관계와 공감 위에 세워져야 함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일깨운다.

#어느교실의멜랑콜리아 #박상아작가 #북트리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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