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 읽을 책을 골랐더니 얇은 두께가 역시 선택의 이유였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소설 책을 놓고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집어든 것은 황정은 작가에 대한 믿음과 친근감도 한 몫했다.

묵직한 장편소설 사이의 얇은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소설의 무게감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백의 그림자`에서도 느꼈던 사회에 대한 직접적이며 송곳같은 묘사는 강렬했다.

어린 앨리시어가 살고 있는 고모리, 시골은 아니지만 도시와는 경계가 있는 변두리이다. 한창 개발 바람이 부는 이 동네는 보상 문제로 시끄러울 뿐 횅한 곳이다. 하수 처리장에서 나는 썩은내가 안개처럼 동네에 깔려있고 앨리시어의 집은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대충 지은 집이다.

노인이 된 아버지, 후처인 친어머니, 동생과 함께 사는 집은 지옥이다. 씨발 병이 걸린 어머니는 툭하면 발작같은 폭력으로 동생과 앨리시어를 잡도리한다. 씨발, 씨발... 폭력을 되갚아주겠다는 앨리시어. 그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버지, 동네 사람들, 상담을 위해 찾아간 곳에서 조차 귀찮은 존재가 된다.

어두운 밤 비가 많이 내린 고모리, 부실했던 하수 처리장은 사단을 내고 마는데... 다음 날 아침 토사 속에서 발견된 것은 싸늘한 동생의 몸이다.

시간은 흘렀고 고모리도 변했다. 높은 빌딩과 여기저기 뻗은 도로와 사거리. 도망가고 싶어서 토끼를 쫓아 굴 속으로 떨어지는 앨리스의 계속되는 추락이 지금의 그를 말해준다. 고모리를 완전히 떠나지도 못하고 여성의 옷차림은 한 채 자신의 흔적과 냄새를 풍기며 다니는 앨리스.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파괴적인 소설의 내용은 쓰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황정은 작가의 사회 비판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글은 작가의 특징인 것 같다.
그녀의 앨리스는 야만적이지만 많이 아프고 공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프다. 책을 못읽기도 안읽기도 하며 5일 정도 있었다.
오늘 동네 병원에서 맹장 문제일 수도 있다며 나를 돌려보냈다. 마구마구 아팠던 시간은 지난 뒤라 큰 병원에 가야하는지...
아프단 핑계로 짧은 소설책과 사진집으로 읽을 책 준비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에 책을 집어 들었는데 연작소설이라는 문구에 생경했다. 연작소설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 강 작가의 연작소설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으로 완성된 듯 하다.

이전에 읽었던 한 강의 `소년이 온다`는 실재에 기반을 두기에 소설 전반의 이야기 구조나 흐름에서 익숙함이 느껴졌는데 `채식주의자`는 작가의 온전한 창작의 산물이었다.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어버린 영혜, 처제인 영혜의 엉덩이에 남아있다는 몽고반점에 매료된 언니의 남편, 영혜를 정신병원에 맡기고 돌보는 죽지 못해 사는 언니.

소설 전반의 인물들이 정상이라 할 수 있는 범주를 비켜간 듯 하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남의 떡이 커보이는 건지 채식주의자에서는 처형을, 몽고반점에서는 처제를 자신의 아내와 비교하고 성적 욕망까지 갖는다. 결핍된 감정이나 애착을 무시하다가 폭발한 것 같은 쳇바퀴같은 삶의 결과물이 보인다.
갑자기 채식을 시작한 영혜는 결국 비정상의 상징같은 정신병원에 가게 된다. 몽고반점에서 예술에 대한 집착과 광기는 파멸과 추문으로 마무리된다. 한편 영혜는 자신은 나무가 될 거라며 인간으로의 삶을 끝내려한다.

나무 불꽃으로 연작소설이 마무리되는데 마치 그동안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듯 하다. 경계에서 그 너머로 가고 싶은 욕망이나 고통에서 영혜와 언니는 아슬아슬한 차이만 있었을 뿐, 정상과 비정상이라 할 수 없다. 시간은 계속 가고 살아지는 것이다.

채식주의자 표지의 나무에서 사람이 기대고 있는 형상이 보인다. 착각인지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나무가 되고싶었던 영혜일까.

소설은 좋은 작품인 것 같은데 몸이 아프니 쓰는 글이 뒤죽박죽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집보다 단편소설의 흐름이 이어지는 연작소설이 잘 맞는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샤 케인, 네이트 버논, 매브 스미스 수녀, 척 베이스
4명의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해피엔딩`이라는 누구나 바라지만 그렇게 되면 뭐야...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뜬금없고 소설이어야 가능한 우연의 산물이 계속 되니까 말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라고 해야겠지만 그 면면은 큰 고통과 좌절로 구성되어 있다. 포르노 영화 제작을 하는 부자 남편을 둔 포샤는 딸같은 여자아이와 바람피는 남편을 목격하고 집을 나온다. 그녀의 스승이자 삶의 목표와도 같은 버논 교사는 학생에게 구타를 당해 장애를 입고 은둔생활 중이다. 척은 마약쟁이 삶을 청산하고 동생과 조카를 돌보고 있으며 교사를 꿈꾼다.

옛 인연이었던 그들이 다시 만나고 서로의 희망이 되고 실패도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한 편의 성장 드라마같다. 재미있지만 뒷 맛이 개운치못한 느낌이 남는다. 롹큰롤이라고 써야만 될 것같은 그들의 문화, 종교에 대한 미국인들의 친근감이나 태도가 나에게는 이질적이어서 소설 전반에 대한 평이 박해진 것도 같다.

다만 버논 교사의 동반자였던 강아지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을 꼭 읽어야겠다는 자극이 되어 주었다.
뭐... 매튜 퀵의 많은 소설들이 영화화되는 것은 충분히 납득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그러고 싶지만 선뜻 첫 발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교과연계도서라는 코너의 어린이 도서실에서 이 책을 빌렸다. 똑똑하다는 요새 초등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사 지식이 생기지 않을까?

한국사 편지라는 제목에 걸맞게 독자에게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문체와 형식이다. 사진이나 그림을 함께 보여주며 가독성과 흥미를 끌어보려 하지만 흐름과 크게 관계없는 문화재들도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엄마 말투, 친절함에 초반 힘들었지만 끝까지 읽었다.

의무교육을 받은 값을 하는건지 아는 인물명이나 사건에 반가웠다.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만한 역사 상식들이었지만 말이다. 5권으로 구성된 한국사 편지를 다 읽으면 초등학교 역사 교실 완성이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