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 읽을 책을 골랐더니 얇은 두께가 역시 선택의 이유였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소설 책을 놓고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집어든 것은 황정은 작가에 대한 믿음과 친근감도 한 몫했다.
묵직한 장편소설 사이의 얇은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소설의 무게감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백의 그림자`에서도 느꼈던 사회에 대한 직접적이며 송곳같은 묘사는 강렬했다.
어린 앨리시어가 살고 있는 고모리, 시골은 아니지만 도시와는 경계가 있는 변두리이다. 한창 개발 바람이 부는 이 동네는 보상 문제로 시끄러울 뿐 횅한 곳이다. 하수 처리장에서 나는 썩은내가 안개처럼 동네에 깔려있고 앨리시어의 집은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대충 지은 집이다.
노인이 된 아버지, 후처인 친어머니, 동생과 함께 사는 집은 지옥이다. 씨발 병이 걸린 어머니는 툭하면 발작같은 폭력으로 동생과 앨리시어를 잡도리한다. 씨발, 씨발... 폭력을 되갚아주겠다는 앨리시어. 그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버지, 동네 사람들, 상담을 위해 찾아간 곳에서 조차 귀찮은 존재가 된다.
어두운 밤 비가 많이 내린 고모리, 부실했던 하수 처리장은 사단을 내고 마는데... 다음 날 아침 토사 속에서 발견된 것은 싸늘한 동생의 몸이다.
시간은 흘렀고 고모리도 변했다. 높은 빌딩과 여기저기 뻗은 도로와 사거리. 도망가고 싶어서 토끼를 쫓아 굴 속으로 떨어지는 앨리스의 계속되는 추락이 지금의 그를 말해준다. 고모리를 완전히 떠나지도 못하고 여성의 옷차림은 한 채 자신의 흔적과 냄새를 풍기며 다니는 앨리스.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파괴적인 소설의 내용은 쓰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황정은 작가의 사회 비판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글은 작가의 특징인 것 같다.
그녀의 앨리스는 야만적이지만 많이 아프고 공허하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3274/14/cover150/8954622747_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