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어반북스콘텐츠랩, 사진 목진우(2016)

꽃집에서 파는 꽃들의 이름이나 좀 알까 싶어서 책을 찾다가 우연히 `식물수집가`를 읽게 되었다. 잡지인 듯 책인 듯한 요것은 인터뷰를 기반으로 사진과 정보 제공까지 아우른다. 인터뷰는 식물관련한 일을 선택한 사람들과 식물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이들로 나뉜다. 인터뷰 이외에도 핫 플레이스의 사진이나 초보 가드너를 위한 팁같은 다양한 콘텐츠의 배치가 잡지 느낌을 낸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편집도 한 몫한다. 초록 글씨나 초록 페이지, 일러스트가 요소요소 보는 재미를 준다.

식물수집가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자연`이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에서 그들은 마음의 안정을 느끼고 편안해 보인다.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도 그 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지 식물을 기르는 이들이 아니라 요리도 하고 식물을 처방해주고 식물을 이용한 공간을 만든다.
식물세밀화가라는 직업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식물을 예쁘게 그리는 예술이 아닌 관찰과 보존, 기록을 요하는 생물학과 관련해 있었다. 사진을 통해 실험실같은 작업 공간을 볼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이들은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식물과 함께 하는지 보여준다. 대단하지 않게 식물을 키우고 있었다. 먹고 남은 아보카도 씨앗을 발아시켜 키우는 아보카도 화분은 애정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갑자기 화분 쇼핑에 대한 욕구를 느낄 수도 있다. 테라리움은 방 안에도 어울린다니 욕심이 난다. 이끼나 다육식물, 선인장의 배치가 참 오밀조밀 귀엽다. 엄마표 식물들과 함께 하는 우리 집에 내 화분은 초등학생 때 관찰일기용으로 산 히아신스가 있다. 볼 것 하나없이 죽었나 싶으면 잎만 삐죽 내미는 녀석이다. 지금은 잎도 없어 진짜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해서 사온 율마와 차별받고 있다. 그 히아신스를 어쩌지.


ㅡ 사진은 P.99 <슬로우파마씨>의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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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1964)

범우사에서 나온 `무진기행`은 야행, 서울. 1964년 겨울, 역사, 무진기행 총 4편의 단편소설을 싣고 있다.

야행
현주는 동료 직원과의 결혼을 숨기고 은행에 다니고 있다. 낯선 남자가 손목을 붙잡아 끈 그 날 이후 그녀의 야행이 시작된다. 통행금지 시간이 다가와 택시를 잡는 여성에게 합승을 제안하는 남자들. 그녀의 은밀한 욕망은 답답함과 공포 사이의 아슬아슬함 속에서 피어오르는데... 야행은 계속되지만 덧없이 걷고만 있다.

서울. 1964년 겨울
제목에서 작가가 말해주는 시간과 공간의 느낌이 한껏 뭍어난다. 한 겨울의 선술집이나 시체팔기, 여관방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선술집에서 만난 동갑내기 안과 김, 그리고 아저씨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들의 대화는 툭툭 던지는 듯도 하고 무례한 듯도 공허한 듯도 하다.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대화는 팍팍하다. 배운 이도 가난한 이도 살기 힘든 세상이라 말하는 것만 같다. 여관에서 각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셋. 아침이 되어 도망쳐 나오는 안과 김이 결국 아저씨의 마지막을 함께 한 이들이다.

역사
하숙집 두 곳이 등장한다. 본래 살던 창신동의 그곳은 볼 것없는 인간 군상이다. 몸을 파는 영자, 일용직 노동자 서씨, 중년 아저씨와 딸 그리고 내가 하숙한다. 규칙도 희망도 없는 구린 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는 가풍있는 집으로 하숙을 옮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내외, 손녀가 사는 집은 깔끔하다. 정확한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이질적이다. 기타줄 좀 튕겨보니 할아버지가 기타치는 시간을 배정한다. 천박한 장난으로 나는 약국에서 흥분제를 사 가족들이 마시는 물컵에 약을 탄다. 시간이 가고 벌컥 문이 열리기만 기대하는데 할아버지만 나올 뿐이다. 이야기를 마친 그가 묻는다. 어느 쪽이 잘못된 것인지.

`역사`는 그 시대 두 집을 보여주며 맞고 틀림을 묻는다. 소설 속 대답처럼 나도 글쎄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대비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일까? 전쟁 이후 혼란스러움과 현대 사회의 갈림길 속 이중적인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 잘사는게 목표인 삶에서 어느 방향이 바람직했을까. 젊은이는 결정내리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다.

무진기행
나는 무진가는 버스에 올랐다. 명산물 하나없이 사람들만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무진은 고향이자 나약했던 나의 과거가 가라앉아 있는 곳이다. 돈푼있는 과부와 결혼해 제약회사 중역자리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잠시 무진으로 온 것이다. 후배 박이 찾아와 동창 조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여교사 하인숙을 만난다. 촌동네의 좁은 관계 속에서 남녀의 감정도 엉킨 가운데 나는 하인숙을 낚아챈다. 서울로 함께 가자며 자신과 닮은 그녀에게 사랑을 말한다. 아내의 전보는 현실로 나를 부르는 손짓이다. 무진을 뒤로 하고 서울로 향하는 그의 뒤로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표지판과 안개가 멀어진다.

`무진기행`을 읽기 시작하면서 굉장한 걸 느껴야 한다는 미천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극찬받는 글이라는 인식을 떨쳐내고자 별거 아닌 단편소설이라고 되뇌었다. `무진기행`은 앞서 읽은 `역사`처럼 공간과 장소를 통한 대비를 보여준다. 서울과 무진이라는 상반된 지역을 통해서 말이다. 안개가 자욱한 무진은 늪같은 느낌이었고 사람을 가라앉게 하는 이미지다. 무진의 인물들도 생활감이나 활력보다는 내면이나 감정 위주로 표현된 것 같다. 서울에서 내려간 희중은 잠시 무진에 머물다 가는데 이면을 보여준다. 출세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면서도 보잘 것 없지만 젊었던 과거 무진에서의 자신을 끄집어낸다. 현실로 돌아가는 그는 마치 무진이 꿈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무진의 단 하나의 명물 안개도 환상적인 이미지를 배가한다.


4편의 단편소설 속 인물들의 나이는 많지 않다. 많아도 기껏 30대 초반이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나 이미지에서 중년의 느낌들이 많이 났다. 50년 전 청년들과 지금 젊은이들은 비슷하지만 많이 다를 것이다.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허무함도 공통되게 느껴졌다. 단편적으로 통제를 보여주는 통행금지나 데모만 봐도 사회 분위기나 통념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완연한 방관은 아니지만 허무한 감정을 통해 한탄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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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2015)

방바닥에 발바닥이 쩌억 들러붙고 꿉꿉한 장마철이다. 저녁으로 엄마표 잔치국수를 먹었다.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 속 국수와 비슷한 듯 다르다.

`딸에게 주는 레시피`는 엄마표 치유와 요리를 함께 볼 수 있는 에세이다. 다른 집은 뭐 해먹고 사는지? 크게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새로웠다.

`딸에게 주는 레시피` 속 스물일곱 레시피는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하다. 하나하나 다 해볼 것 같진 않지만 적어도 하나의 요리는 해먹을 것 같다. 유력한 건 시금치 샐러드나 알리오 올리오처럼 더더더 간단한 요리가 될 것 같지만. 더운 양상추는 내 생각에는 이상해서 한번 시도하고 싶다.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보며 단번에 읽기 보다는 야금야금 하나씩 레시피를 보고 이야기를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책은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삶의 자세와 사랑이 담겨 있다. 헌데 작가가 말하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마치 나인 것 같았다. 자존감 결여인 나. 관계에 대한 정리가 필요함을 알지만 쉽게 할 수 없기에 단지 말로 끝날 법하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가 날 위해 해주는 충고나 따듯한 말이기에... 나를 돌아보고 사랑해보려 한다. 우선 작가의 충고대로 육체부터 돌보자.

어묵두부탕편에서 우리 엄마는 두부를 네모네모하게 잘라서 넣으시는데 하고 생각하기도 했고, 훈제연어 안먹는데 계속 시도해볼까? 다크서클 보유자로서 생각하기도 했다.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라는 노래는 나랑은 잘 안맞는지도. 그럼에도 제목만은 눈을 시큰하게 한다. 작가가 딸에게 추천해준 책도 살짝 기억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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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2007, 유럽)

보고싶던 동화책은 없고 정사각형 모양의 책들이 들어찬 책장에서 삐죽 나와있던 책을 집어들었다. 아무 이유없이 동화책 `적`을 읽게 된 것이다. 동화는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전쟁 이야기이다.

사막과도 같은 들판에 두 개의 참호가 있다. 나와 단 한명의 적은 아주 작은 자신의 참호를 지킨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전쟁은 일상이 된지 오래이다. 아침에 일어나 총 한발씩을 쏘고 얼마 남지 않은 식량으로 버티고 또 밤이 된다.

힘든 나날 중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 나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적의 참호를 습격한다. 마치 내가 있던 곳인 냥 흡사한 적의 참호는 비어있다. 적도 나의 참호로 최후의 공격을 떠난 것이다. 나는 적의 가족사진과 지침서를 발견한다. ˝적은 사람이 아닌 짐승이다.˝ 자신의 것과 똑같은 내용의 지침서와 사진을 보며 전쟁의 의미를 생각한다.

군인에게 내려온 지침서는 전쟁의 당위성을 설명, 주입시킨다. 적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으며 불필요한 살상을 자행했기에 적을 반드시 물리쳐야한다는. 지침서는 똑같다. 단지 적의 이름만 다를 뿐이다.

책 표지에 있는 군인의 모습은 무공 훈장을 가득 달고 있는 장교인 듯 하다. 하지만 실제 전쟁에서 싸우는 군인은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는 보통의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아군과 적군 단 둘만 등장하는 `적`에서 이분법적 구분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동화라니... 책을 읽으며 생각하니 내 삶에 전쟁은 없었다. 군인이라는 신분이 한 번씩 되는 남자들은 직접, 간접적으로 전쟁을 느끼겠지만 말이다. 전쟁없는 세상을 막연하게 꿈꾸지만 실제 아는 것이 없기에 동화를 통한 울림이 작지만 크게 느껴졌다.
그림체는 어릴적 그렸을 법한 볼펜으로 그린 듯한 단순한 선의 모음이다. 전쟁을 표현하는데 화려함이나 생생한 묘사는 나도 보고싶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별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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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2015, 스웨덴)

노인=꼰대 공식에서 벗어나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곧 여덟살을 앞둔 손녀 엘사보다 더 화려한 말썽을 자랑하는 할머니다. 전작 `오베라는 남자`와 비슷하게 할머니가 주인공인가 싶지만 아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꼬마 엘사의 모험과 할머니를 비롯한 아파트 입주민들의 이야기이다.

아파트 입주민들 ;
할머니네 집, 엘사네 집, 브릿마리와 켄트네 집, 레나르트와 마우드네 집, 알프네 집, 까만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자네 집, 무슨증후군을 앓는 아이네 집, 괴물네 집, 워스네 집

할머니는 엘사에게 슈퍼 히어로이다. 엄마는 이혼하고 예오리를 파트너로 만나 반쪽이를 임신하고 있다. 매일 할머니가 들려주는 미아마스를 포함한 왕국과 깰락말락나라의 동화는 엘사에게 큰 힘이 된다. 어느 날 슈퍼 히어로가 암에 걸린다. 히어로이자 유일한 친구인 할머니는 엘사에게 큰 임무를 맡기고 떠난다.

할머니의 마지막 편지 배달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할머니가 쓴 사과 편지를 배달하며 엄청난 덩치의 개 워스와 깔끔 강박증 괴물을 친구로 사귄다. 엘사는 이제 알게 된다. 그동안 할머니가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들이 살짝 각색한 아파트 입주민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잔소리쟁이 브릿마리도 아주 개떡은 아니며 레나르트와 마우드가 그림자의 부모인 것도 알프아저씨의 첫사랑도... 할머니가 할머니가 아닐 적에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는 비밀도. 마치 라디오 사연소개처럼 아파트 주민의 이야기가 술술 풀린다.

할머니의 동화와 실제 사람들의 매치는 독자에게 흥미를 주는 요소이다. 초반에 책 넘기는게 힘들었는데 적응하니 500페이지가 넘는 양에도 쉽게 읽었다. 전작 `오베라는 남자`에 비해 재미적 요소는 부족하지만 비슷한 듯 다른 소설을 써낸 것 같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이야기가 생동감있게 느껴졌다.

깜찍했던 에피소드는 할머니의 요술옷장이 Made by 알프의 작품이라는 것 정도. 워스가 떠나는 날 태어난 반쪽이의 이름이 엘사의 마음에 쏘옥 든다는 것도.
이야기는 누나 엘사의 파란만장한 모험과 친구들의 뒷 이야기가 상상되며 유쾌하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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