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오쿠다 히데오는 참으로 '참이야기꾼'입니다. 그가 만든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만들고, 그가 만들어 놓은 인물에게 흠뻑 공감하게 만드는 참재주가 있는 대단한 소설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 『올림픽의 몸값』, 『소문의 여자』 등 재미는 물론, 생각할 거리도 남겨주는 여운 있는 작가 오쿠다 히데오. 그의 신작 『나오미와 가나코』 역시 재미와 흥미는 물론이거니와 여러모로 제법 짙은 생각의 꼬리 그림자를 남겨준 작품입니다.

  

 우선 나오미의 직업(백화점 외판부)으로 인해 겪는 에피소드 등을 통해 아, 이런 직업도 있고, 이런 일들을 하며,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는 흥미로움이 먼저 일었습니다. 아마 작품을 쓰기 위해 구상하며 취재했을 것이기에, 제법 현실반영도 높은 에피소드들이 아닐까 싶은데, 제가 경험해 온 세계와는 동떨어져 있는 세상의 이야기이기에, 아- 이런 것도 소설 읽는 맛이지- 하는 경탄의 목소리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퍼집니다.

 

 그리고 일본내에서 사업하고 활동하는 중국인들, 그리고 일본에서 노동하며 삶을 영위하는 중국인들에 대한 스케치와 데생도 상당히 짙은 명암으로 그려져 들어가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오쿠다 히데오의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아- 이러다 오쿠다 히데오 중국사람들한테 테러라도 당하는 것 아닌가,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중국 현지에서 판매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 독자들이 그 문장들을 읽고 분개하여 오쿠다 히데오의 책들을 모아놓고 '분서'하는 것 아닌가 싶은 괜한, 쓸데없는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제법 강한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중 인물 '리 아케미'라는 여사장을 통해 중국인들의 끈끈한 가족의식, 후안무치하지만 세계 각지에서 욕먹고 지탄받는 민족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타개하고 벗어나기 위해 오히려 더 당당하고 당차게 일을 추진해나가는 힘과 노력 등 긍정적인 부분들도 그려내고 있어, 괜히 제가 다 안심이 되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나오미와 가나코의 든든한 언니 역할로 거듭나는 리 아케미가 당차고 멋진 여성이라는 이미지로 덧씌워져 보이기까지 했으니, 이만하면 오쿠다 히데오로서도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정도는 되겠다 싶습니다. ^^;

 

 어쨌거나 요즘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일하며 사는 중국인들이 상당히 많은데, 일본도 마찬가지구나, 그 중국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은 대략 이렇구나 하는 것을 슬쩍 엿볼 수 있어 꽤나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드디어, '나오미'와 '가나코'가 저지른 그 살인에 대하여-.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요. 아내를 때리고 패는 쓰레기 같은 남편이라면-. 시쳇말로 '헤까닥 돌았다'는 표현이 있는데, 말 그대로 미치광이 마냥 정신이 헤까닥, 눈이 헤까닥 돌아서 아내를 때리고 패는 답도 없는 종자라면, 그런 마음 먹고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오쿠다 히데오가 상황을 그럴싸하게 몰아갔으니, 그렇게 동정의 마음이 일고 이해갈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이 세상에 '정당방위'는 있어도 '정당한 살인'은 없습니다. 우발적으로 저지르거나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은 몰라도, 사전에, 이른바 '카케무샤(?!)'까지 끌어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증거를 조작하고 벌인 '계획살인'은 어떠한 경우라도 결코 용서되어서는 안될 치명적인 범죄이지요. 정상참작은 있을 수 있되,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인정해서는 안될 행위입니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하는 상상을 몇 초만 살짝 해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

 

 가나코보다 나오미가 더 이상합니다. 제 아무리 '영혼의 쏘울메이트(?!)', '베프 오브 프렌드(?!)'라 하더라도 "니 남편 죽여버릴까?" 하며 발벗고 나서서 '제거'계획을 치밀하게 짜고 행동에 옮기는 나오미야말로 잠시 정신이 헤까닥 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치밀하게 구상하고 계획하여 살인까지 서슴지 않고 냅다 저지를 정신으로, 남편을 갱생시키기 위한 처절한 프로젝트나 남편을 골탕먹이고 뼛속까지 후회하게 만들어줄 대작전을 세웠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절박하고 극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오쿠다 히데오식 이야기가 되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쨌거나 살인은 저질러졌고, 폭력남편은 세상에서 사라졌고, 모든 것이 다 순조롭게 흘러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나코에게 어김없이 들이닥치는 위기. 사실, 순조롭게 살인계획이 실현되고 전개되는 과정을 보며 이거 이렇게 순풍에 돛 단듯 매끄럽게 흘러가도 되는거야 하는 생각을 잠시 가졌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오미와 가나코에게 치명적인 위기가 닥쳐옵니다. 콩닥콩닥- 두콩두콩- 가나코의 심장박동 만큼이나 소설도 가속도가 붙어 한 장 한 장 책장넘어가는 속도가 절정에 다다릅니다. 가나코가 느끼는 막강한 심리적 압박을 곁눈질로 지켜보며 제 심장도 덩달아 콩닥콩닥- 두콩두콩-. 아, 역시 사람은 죄 짓고는 못 사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재삼 깨닫습니다.

 

 다만, 나오미도 가나코도 심리적 압박과 고통은 절절히 느끼되, 그 와중에도 사람 한 명을 죽였다는데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반성도 없었던 점은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이건 살인이 아니라 그냥 '제거'다, '클리어런스 플랜(clearance plan)'이다 하고 끊임없이 자기세뇌하며 모래에 머리 쳐박고 현실을 외면해 봤자 살인은 그냥 살인일 뿐입니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편도 죄값을 치렀어야 하는 것이고, 남편을 죽인 두 여인네도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죄를 달게 받아야지요. 물론, 그렇게 뻔하고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로 흘러갔다면 결코 이 장장한 한 편의 장편소설이 탄생되지 못했을테니 '소설' 읽고 이런 얘기 해봐야 의미도 소용도 없는 짓이지만, 읽는 내내 안타까움 금할 길 없었던 제 솔직한 심정은 그러합니다.

 

 뭐, 그렇게 이방인이 되어 평생 타국을 떠돌며 살아가야 할, 그러면서 무슨 일을 겪고 어떤 고난에 맞닥뜨리게 될지 알 수 없는 그녀들의 운명 앞에, 열심히, 행복하게는 살되, 그 누군가가 주신 새로운 삶과 기회라는 생각을 버리지말고 평생 참회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베풀며 살라는 소소한 충고밖에는 더 해 줄 것이 없네요.

 

 끝으로, 그녀들이 건너간 그 곳에서 정착하고 살며 겪는 일들과 또 닥치는 사건과 위기 등을 엮어 '나오미와 가나코' 2탄을 써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결국 모든 것은, 오쿠다 히데오, 내 맘대로지롱~ 이겠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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