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나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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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흥미롭습니다. 『왕과 나』. 인기 역사학자 이덕일 님의 신작이자 유명한 고전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시사하는 바와 같이, 왕이나 1인자가 아니라 그의 옆 혹은 뒤에 서 있던 2인자, 참모, 혹은 왕을 만들어낸 킹메커들을 조명하고, 그로부터 이끌어낸 역사적 교훈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총 11개의 챕터로 나누어 챕터별로 주제를 부여하고 이에 걸맞는 인물의 이야기와 역사를 이덕일 특유의 흥미로운 서술로 풀어나갑니다. 11개 챕터 주제와 인물의 면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어젠다 - 김유신
 2. 헌신 - 신숭겸·배현경·복지겸·홍유
 3. 시야 - 소서노
 4. 사상 - 정도전
 5. 시운 - 황희
 6. 정책 - 김육
 7. 기상 - 천추태후
 8. 악역 - 강홍립
 9. 실력 - 박자청
 10. 맹목 - 인수대비
 11. 역린 - 홍국영 

  

 가야 출신 진골의 한계로 주류가 되지 못했던 김유신이 역시나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던 김춘추와 '어젠다'로 합의하고 결탁하여 신라의 신주류가 되었고, 망명해온 주몽을 받아들여 왕으로 만들었던 소서노가 주몽 사후 유리왕과 왕권을 다투기 보다는 보다 넓은 시야와 혜안을 가지고 남하하여 새로운 왕국 백제를 건국했다는 등 각 주제에 걸맞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기존 저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역사의 사례와 교훈을 보여주고 이를 바탕으로 각 장 말미에 짧으나마 사회에 대한 비판과 자기의 목소리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현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젠다를 상실한 데 있다. 김유신과 김춘추처럼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고, 그런 어젠다에 사회의 동의를 받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주도세력이 나타날 때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p.48) 

  

 "현 사회는 안의 일로 더 시끄럽다. 안의 일이 물론 중요하지만 때로는 밖을 바라보는 더 넓은 시야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것이 더 큰 결과물을 낳는다는 것을 소서노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p.99) 

  

 또한, 상류층의 향락 및 번성과 대비되는 하층민의 궁핍한 삶, 이분화된 사회의 모습과 그 말로末路의 예를 절절하게 묘사하는 것만으로 현 사회의 문제점을 제법 맵게 꼬집고, 위정자들과 집권층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p.56~59) 

  

 많은 사료와 간간이 제시되는 사진 자료를 포함하여 새롭게 알게되는 역사적 사실과 교훈, 그 어떤 소설보다도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부분 등 이덕일 역사교양서 특유의 재미 이외에도 이렇듯 저자의 안목과 뜨거운 입김이 절로 느껴지는 행간의 냉철한 목소리를 짙게 느끼는 재미 또한 빼어난 작품입니다.  

  

 새롭게 조망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인물들이 기존에 잘 알려진 혹은 이름이나마 들어본 그리 생소하지만은 않은 인물들이었는데, '박자청'은 그 이름마저 처음 들어본 인사라 특히 흥미롭게 읽은 챕터입니다. 명문세가의 자제가 아닌 한미한 출신으로, 이성계 휘하의 병졸로 시작하여 가진 그 재주 하나만으로 정2품 공조판서에까지 오르고, 경회루를 비롯한 도성의 많은 건물을 지었다는 박자청(경회루는 사실상 재건축에 가깝긴 하지만). 양반가 출신이 아니었기에 이 박자청에 대한 높은 벼슬 관리들의 음해와 공격이 상당했지만, 언제나 냉철하고 무서운 이미지의 태종이 직접 적극적으로 박자청을 변호하고 비호해주며 그 재주를 아껴주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너무도 유명한 인수대비를 다룬 장에서는 조금 의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인수대비는 사실상 왕 못지 않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그렇게 맹위를 떨치며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뜬금없이 훗날 폐주가 되는 연산군에게 조롱당하고 화병을 얻어 죽는 것으로 그냥 끝나버립니다.  

 

 이 장의 주인공은 사실상 인수대비의 아버지 '한확'이었습니다. 입신을 위해 두 번이나 누이를 명나라 황제의 후궁으로 팔아먹고 수양대군과 정략결혼까지 감행하며 권력에 집착했다고 묘사된 인물. 그렇다면 이 장의 제목을 인수대비 대신 한확으로 해주거나, 아니면 권력을 위해 적극적으로 손쓰고 나서는 모습이 더 잘 묘사된 정희왕후나, 한명회 혹은 유자광 같은 인물을 다루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덕일 표' 저술은 앎의 재미와 더불어 순수하게 읽는 재미와 맛이 살아있기에 어렵지 않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대중교양서가 아닐까 합니다. 이 『왕과 나』 역시 그런 기본적인 재미가 충분한데다가, 저자의 혜안과 일침이 행간에 녹아 있어, 그것을 느끼고 그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멋지고 훌륭한 작품이라 여겨집니다.  

  

 무구한 역사와 무수한 사례에서 오는 교훈과, 그를 바탕으로 전철前轍을 밟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리고 재주를 갈고 닦으며, 정신 바짝차리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 또한 오롯이 이 '왕과 나'를 통해 얻은 아름다운 결론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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