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그릇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9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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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 찾아 읽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헤아려보니 꽤 된다. 《점과 선》, 《제로의 초점》, 《D의 복합》, 《짐승의 길》, 《푸른 묘점》, 단편선 《잠복》,《역로》등. 마쓰모토 세이초의 일천 여 편에 가까운 장·단편 가운데 추리고 추려 인기있거나 재미있는 작품 위주로 발간되어 그런지 지금까지 읽은 그의 작품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모래그릇》 역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예전부터 명성은 익히 들어왔는데, 얼마 전 조금 특이하게도 문학동네의 '세계문학' 시리즈로 발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문학동네가 '엘릭시르'라는 장르소설 임프린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학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발간했다... 단순히 장르소설 분야를 떠나 당시의 세태와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여러모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의 위상을 새삼 느껴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모래그릇》은 《점과 선》처럼 한 살인사건을 뒤쫓는 집요한 형사의 추리수사여행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시의 시대상과 세태를 드러내는 직·간접적인 자료들이 많이 활용되고 있고, 형사가 찾아가는 지방의 특색을 물씬 느껴볼 수 있으며, 드러난 진상과 애처로운 범인의 뒤에는 당시 사회의 시선과 영향력으로부터 비롯된 어둡고 안타까운 사연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전지전능한 명탐정과는 달리 지극히 인간적이고 성실한 형사의 추리수사인 만큼 중간에 헛발을 디디기도, 이렇다할 성과없이 답답한 시간을 꽤 오래 보내기도 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의외의 공감을 낳고 추리를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둘러둘러 가는 과정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고, 가끔 맥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거나 마쓰모토 세이초 표 추리소설의 특색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겠다. 

  

 이번 작품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것 가운데 하나는 꽤나 현대적이고 치밀한 범행수법이 사용되었다는 점. 다 읽고 나서 보니, 그를 위해 설정한 여러가지 장치들, 깔아놓은 복선들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영향력을 깊게 받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상상을 초월한 범행수법 못지 않은, 작품이 쓰여진 시기를 고려하면 꽤나 이것저것 궁리와 연구를 많이 했겠구나 싶은 수법이다. 그저 사회적 분위기와 동기를 그려내는 데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이런 범행수법과 장치 고안에도 꽤나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진범의 정체에 있어서도 앗! 하고 느낄만한 나름의 반전을 마련해 두었다는 것. 너무나 명확하게 드리운 범인의 실루엣이 사실은... 차근차근 따라가며 궁리해 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도 있지만 의외의 반전이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마쓰모토 세이초 표 추리소설의 단점이라 생각되는 부분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세상에 이렇게나 공교로울 수가 없는 우연의 남발, 그저 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 앗!! 하고 떠오르며 사건을 급진전 시키는 추리가 그것이다. 적당히 단서를 얻어야 소설이 진행되는 것은 맞는데, 너무나 공교로운 우연의 연속이 때로는 절로 쓴 웃음 지어지게 한다. 그리고 《제로의 초점》에서도 여실히 느꼈던 것이지만 그저 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 '이러이러 했을 것이다', '이러이러 하지 않았을까'하며 차곡차곡 진행되어 가는 추리. 실제 수사과정에 들인 헛발질과 공에 비해 결정적인 부분은 머릿속 유레카!!! 로 너무 쉽게 결정지어 지는 느낌이라 그들이 열심히 움직인 다리와 발에 괜히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뭐, 어쨌거나 그것도 어떤 면에서는 과정에서 이뤄진 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있기도 하고, 그런 자잘한 단점은 충분히 상쇄시키고도 남을만큼 훌륭하고 매력적인 마쓰모토 세이초 월드이기에... 

  

 연속적이지는 않지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들을 하나 둘 섭렵해 가고 있는 가운데, 마쓰모토 선線 세이초 호號 가 정차할 다음 역은 어디일지, 그 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인물들과 사건들은 어떤 표정을 한 채 그 모습을 드러낼 지 무척 기대된다. 유서깊은 명소를 찾아 떠나는 호젓하고 오붓한 기차여행. 칙칙폭폭 느긋하게 달려가는 사이사이 그의 아들, 딸들(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등)이 만든 도시락들도 맛있게 까먹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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