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책장을 막 덮은 지금, 헛된 망상 하나 해본다. 히가시노 게이고, 이 작가, 집 안 어딘가에 끊임없이 이야기를 토해내는 외계인이라도 잡아둔 것이 아닐까. 모 컴퓨터 부품 제조업체에 대한 세간의 살짝 틀어진 찬사에서 모티브를 따온 망상인데, 그만큼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야기 풀pool이 한없이 넓고도 깊다는 의미에서 날려보는 나름의 살짝 비틀어진 찬사다.

   

 훔친 차량이 멈춰버려 어쩔 수 없이 폐가로 숨어둔 얼빠진 세 도둑.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하지만 조금 어리숙하면서도 마음만은 따뜻한 이 세 사람에게 고민편지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그 편지가 현재의 누군가가 보낸 것이 아닌 수십년 전 누군가가 보낸 편지라는 것. 거기다가 답장을 써서 집 뒷편 우유상자에 넣어놓으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또 다시 그 답장에 날아온다는 것이다. 논리의 영역에서는 설명이 안되는 이곳, 바로 '나미야 잡화점'이다.

    

 판타지스런 설정으로 포문을 열었으되, 편지에 담긴 고민과 절절한 사연들은 무척 현실적이고 절박하다. 그저 하룻밤만 피신했다가 다시 떠나면 그 뿐인 곳이었지만 여리고 마음따스한 세도둑들은 이 고민편지들에 답장을 보내기 시작한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각각의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얽어져 있고, 모든 인물들, 모든 스토리가 합쳐져 큰 이야기의 물결을 이루어내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신참자>때도 그랬지만, 어떻게 이런 형태로 이야기를 구상하고 써냈을까 싶어 감탄스럽기 그지없다.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 할아버지 나미야 유지에 대한 내용은 제3장에 나오는데, 그런 식으로 시작한 고민상담이 많은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크나큰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때로는 인생무상을 느끼기도, 때로는 은근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혹자는 이번 작품을 두고 조금 싱겁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간 조미료 팍팍들어간 달고 짠 자극적인 작품들에 길들여져 있는 입맛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조금 밍밍하긴 하지만 한숟갈 떠먹었을때, 짜릿한 큰 자극없이 은은히 배어오는 깊고 따뜻한 맛이 내 몸 전체로 슬며시 퍼져가는 이런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소설 건강식이 아닐까.

    

 그리고 이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볼만한 생각,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나에게도 고민편지를 집어넣고 답장 받을 수 있는 나미야 잡화점이 있었더라면.' 하는 것.

 

 이것마저도 예측하셨던지 이에 대해 나미야 할아버지가 해주신 명료한 답변이 있다.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p.167)

 

 그렇다. 우리 마음 속에는 이미 그 문제에 대한 답이 잉태되어 있다. 다만 머릿속에서, 그 답을 실행했을 경우 되돌아 올 파장, 만약 그것을 하지 않았을 경우 파생될 문제 등을 이리저리 재고 꺼리고 고민하는 것일 뿐.

 

 그리고,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일 뿐, 나의 '나미야 잡화점'은 이미 내 주변에, 나만의 '나미야 할아버지'는 이미 내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나도 모르는 새, 나 자신이 그 누군가의 '나미야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지도.

   

 오늘밤, 귀중한 건강식 한그릇 든든하게 먹은 덕분에, 내 미래를 향해,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고민편지 띄워보는 소중한 시간 가져본다. 이 세상 어딘가에, 혹은 내 가슴 속 깊은 저 어딘가에서 흐뭇한 웃음 얼굴에 가득 띈 채 열심히 펜 움직여 답장 써주고 계실 '나미야 할아버지'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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