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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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매스커레이드 호텔>이 드디어 찾아왔다. 히가시노 게이고 25주년을 기념하고, '닛타 고스케'라는 새로운 주인공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매스커레이드'가 가면무도회를 뜻한다는 것은 러시아 작곡가 아람 하차투리안의 '가면무도회(Masquerade)'라는 곡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비극인 원작에 곡을 붙인 '가면무도회'와 전체적인 틀은 다르지만 어쨌거나 호텔에서 일어난 비극이라는 점을 놓고 볼때 묘하게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3건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현장에 놓인 묘한 숫자 메세지 덕분에 다음 범행장소가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임을 알게된 경시청. 닛타 고스케 형사를 비롯한 일선 형사들이 호텔 직원으로 변장한 채 다음 사건을 막기 위한 잠입수사에 들어간다. 닛타 고스케를 교육하고 담당하게 된 호텔리어 야마기시 나오미. 얼레설레 전혀 호텔리어 같지 않은 닛타 형사를 엄하게 가르치고, 똑부러지는 일솜씨로 닛타 형사의 반감을 어느새 존경으로 바꾸어 놓는다.

 

 중반부까지는 나오미와 닛타의 호텔리어 놀이(?)에 집중하고 있다. 호텔리어로서의 마음가짐, 진상 부리는 손님 대처법, 요상한 손님들과의 에피소드, 혹시 범인아냐 싶은 의심스러운 인물들. 전문적인 직종과 직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데, 예전에 읽었던 <공항의 품격>이라는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공항에 파견나온 여행사 직원이 겪는 공항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려낸 작품인데, 나름 급박한 분위기도 있고, 추리요소가 약간 들어간 에피소드도 있어 더욱 겹쳐보이지 않았나 싶다.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매스커레이드 호텔> 전반부 300여 페이지 분량까지의 제목을 다시 붙여보자면 <호텔의 품격> 정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전체적으로 사건해결과 전혀 무관한 이야기들은 아니다. 결정적인 복선도 마련되어 있고,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가져다주는 발상의 전환과 깨달음이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설정이다. 연쇄살인사건의 비밀과 호텔에서 벌어질 사건과의 연관성, 급물살을 타는 후반부, 의외의 범인과 의외의 희생자, 범행동기와 사연 등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담백 쌉싸름한 솜씨로 술술 풀어낸다.
 
 새로운 주인공 시리즈 시작이라고 하는 만큼, 닛타 고스케라는 인물에 대해 평해 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다지 마음에 썩 드는 인물은 아니다. 젊은 나이에 경시청 수사1과 형사가 되었고, 약간 오만방자하다는 캐릭터인데, 큰 매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뭐, 이번이 시작이라니 앞으로 나올 후속작에서 얼마나 더 다듬어지고 덧칠되어 매력을 발산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작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아직까지는 '가가 교이치로'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한~~~참.

 

 오히려 투철한 프로의식과 똑부러지는 일처리를 보여준 호텔리어 야마기시 나오미가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오미 덕에 프런트 안쪽에서 엿볼 수 있게 된 호텔 내부의 모습, 호텔 손님들의 모습.
 
"...(전략)... 호텔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손님이라는 가면을 쓰고있다, 그걸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후략)"  (p.394)

 

"호텔리어는 손님의 맨얼굴이 훤히 보여도 그 가면을 존중해 드려야 해요. ...(중략)... 어떤 의미에서 손님들은 가면무도회를 즐기기 위해 호텔을 찾으시는 거니까요." (p.394)

 

 가끔 무리해서라도 고급 호텔, 고급 식당에서 품위있는 손님인척, 뭔가 있어보이는 손님인척, '선망의 타인'으로 분扮하고픈 욕망이, 손님놀이 하고픈 욕망히 꿈틀대기도 하는데, 그것을 정확하게 꿰뚫어낸 나오미의 대사다.

 

 각각 유부남, 유부녀지만 마치 연인인 것 마냥 밀회의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고, 사이가 이보다 더 안좋을 수 없지만 남의 시선 의식해 마치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부부인냥 행동하기도 하고, 빈둥거리는 백수지만 유능하고 바쁘기 이를데 없는 비즈니스맨으로 위장해 보기도 하고, 수준낮은 한심한 글이나 끼적거리는 작가지만 최고급호텔이 아니면 글이 안써진다며 허세도 떨어보고, 평소에는 냉담해서 전화 한통도 잘 안걸지만 마치 효자, 효녀인 것 마냥 효도여행 시켜드린다며 무리해서 호텔방에 부모님 모시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인격이 그럴싸한 가면을 집어쓰고 엉켜,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무도회를 벌이는 그곳, 호텔. 왠지모를 두근거림과 흥분이 찾아오는 그곳, 호텔. 계산서 보면 후회와 자조가 파도처럼 몰려오는 그곳, 호텔!!

 

 이참에 아예 나오미를 주인공으로 해서 호텔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과 사건성 짙은 미스터리한 일들을 다룬 후속작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은.... <호텔의 품격>으로!! 크크크...

 

 '앞으로 똑같은 작업을 한다해도 이보다 더 잘해낼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그러면 안됩니다, 히가시노 씨. 분명 유기적인 얼개와 이야기가 나름 돋보이긴 했지만 만족과 불만족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이 작품이 최선이어서는 안됩니다, 히가시노 씨. 야심차게 등장시킨 닛타 고스케가 이 정도 인물로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히가시노 씨. 이제나 저제나 히가시노 씨의 신간을 몽매에 그리며 기다리는 팬의 애틋한 마음을 무참히 짓밟아서는 안됩니다, 히가시노 씨!!!

 

 믿고 보는 가가 형사 시리즈, 믿고 읽는 갈릴레오 시리즈 만큼, 손꼽아 기다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닛타 형사 시리즈가 되기를 바라며, 이순耳順의 나이를 향해 달려가는 히가시노의 감각 회춘을 바라며, <용의자X의 헌신>, <백야행>, <악의>와 같은 잭팟이 터지기를 바라며... 다 집어치우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망작이든 졸작이든 신간만 꾸준히 나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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