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세와 인기가 한 세기를 넘어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탐정 셜록 홈즈. 아서 코난 도일이 쓴 네 편의 장편과 쉰 여섯 편의 단편 속에서 그는 수 많은 사건을 해결하고 활약하며, 심지어는 죽었다가 살아오기도 한다. 많다면 많은 이야기들이지만 너무나 매력적으로 창조된 그의 인기와 그에 대한 그리움에 비한다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볼륨.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셜록 홈즈를 가지고 코난 도일의 문체와 분위기를 그럴싸하게 흉내내어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 셜록 홈즈의 이력과 활약상을 점점 더 늘려놓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류의 작품들이 여럿 소개되었는데, 이번에 '노블마인'에서 출간된 <셜록의 제자> 역시 이런 작품들과 같은 선상에 놓여있으면서도 기존의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재미로 무장한 채 셜로키언들을 매료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작품은 셜록 홈즈와 그의 제자가 벌이는 활약상을 그린 작품인데, 놀랍게도 그 제자는 여성이며, 무려 10대 소녀라는 것. 미국 작가 '로리 R. 킹'이 창조해낸 당당하고 지적인 이 소녀의 이름은 '메리 러셀'. 기존 셜록 홈즈 시리즈는 셜록 홈즈가 주인공이되, 어디까지나 왓슨이 바라보고 그린 수기 형태로 쓰여진 것들이지만 <셜록의 제자>에서는 소녀 메리 러셀이 화자로 등장한다는 점이 너무나 흥미롭고, 색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전략)...나의 홈즈는 왓슨의 홈즈가 아님을 인정하는 바다. 마찬가지로 나의 관점, 붓 놀리는 솜씨, 색과 음영 사용법은 왓슨의 그것과 전적으로 다르다. 대상은 본질적으로는 똑같으나, 화가의 눈과 손은 바뀌었다. (p.17)
들어가기에 앞서 메리 러셀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말이지만, 어떻게 보면 작가의 변명 비슷하게도 들리긴 한다. 광적인 셜로키언들의 날카로운 분석에 어느 정도 방어막을 쳐둔 듯도 해 보이고. 그러나 바로 이 문장이 뜻하는 바,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재미가 아닐까 한다. 셜록 홈즈가 제자를 거두었는데, 무려 10대 소녀이고, 그 소녀의 눈과 귀와 입으로 쓰여진, 소녀의 시점과 관점을 통해 표현된 셜록 홈즈라니!
작품의 시작, 긴 여정의 서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와 메리 러셀의 만남. 아주 우연한 만남이지만 딥 임팩트 급 폭풍과 파장을 몰고올 이 접촉에서, 가장 알 듯도 모를 듯도 한 것은, 은퇴한 뒤 한가로이 양봉에만 몰두하던 그 셜록 홈즈가 어째서 이 어린 소녀를 파트너로,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메리 러셀의 놀랄만한 추리력과 기지를 높이 산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략)...은퇴하신게 천만다행이네요. 위대한 탐정의 지성이 겨우 이 정도라면!" (p.26) 라며 도도하게 쏘아붙이는 메리 러셀의 고고한 자태와 패기가, '헉, 날 이렇게 막 대한건 네가 처음이야!'라며 사랑에 빠진다는 고귀한 신분의 남성과 비천한 여성의 신데렐라 스토리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할 법한, 무척 익살스러우면서도, 재미있으면서, 그래, 천하의 셜록 홈즈를 한방에 넘어오게 하려면 이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이었다. 아울러 메리 러셀의 이 촌철살인 대사는 이 작품 최고의 명대사가 아니었나 싶다.
이후로 메리 러셀은 홈즈의 집을 드나들며 함께 실험도 하고, 말벗도 되고, 체스도 두며,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부녀지간처럼, 때로는 삼촌과 조카처럼, 아주 때때로 언뜻 연인의 그것처럼, 인연을 이어가며 이것저것 배우게 된다. 메리 러셀이 사고로 부모와 동생을 잃고 이모와 함께 쓸쓸하게 지낸다는 설정이 적절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홈즈 역시 메리 러셀을 때로는 제자로, 때로는 파트너로,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딸처럼, 때로는 조카처럼, 그렇게 여기며 바라보지 않았을까? 아주 때때로... 저 먼 밑바닥에서 은근히 피어나는 연심의 아지랑이가 심장과 뇌를 거쳐 어느 정도 희석되고 정화된 상태로 눈을 거쳐 바라보는 모습이 언뜻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메리 러셀의 시점으로 바라본 수기이므로, 호기로운 상상에 대한 진실은 저 너머에...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활약한 끝에 홈즈와 러셀이 당도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인물의 정체는 상당히 충격적이고 극적이었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을 제외한 많은 일들이 큰 고리로 연결되어 있었고, 홈즈와 러셀을 노리는 검은 손아귀의 정체는 바로...
이런 류의, 셜록 홈즈 패스티시라고도 불리는 작품을 읽음에 있어, 최고의 평은 '셜록 홈즈 전집 중 한편을 읽는 것 같았다.' 라거나 '발견되지 않은 코난 도일의 원고가 드디어 발표된 것 아닌가 싶었다.' 정도 되지 않을까? 읽는 내내 전혀 위화감 없이, 마치 셜록 홈즈 전집 중 한권을 뽑아 읽어내리는 것 마냥 너무나 흥미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홈즈의 새로운 대사들, 홈즈의 새로운 추리, 홈즈의 새로운 활약상. 아울러 새로운,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 메리 러셀. 로리 R. 킹의 메리 러셀 시리즈는 무려 18년에 걸쳐 11권이 출간되었다고 한다.(12번째 작품이 올해 출간예정이라고 함.)
비록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아쉽게 끝을 맺었지만,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통해, 셜록 홈즈는 우리 가슴속에 살아숨쉬며 점차 그 수명과 생명을 연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