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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12월
평점 :
2011년의 막바지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 나왔다. 출간을 기다리고 있던 몇몇 작품들(신참자, 기린의 날개, 한여름의 방정식, 마스카레이드 호텔 등)이 아닌 의외의 작품, <마구魔球>. 일본 출간년도를 살펴보니 1988년작이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들의 출간년도 순으로 따져보니 <11문자 살인사건>(1987년작)과 <잠자는 숲>(1989년작) 사이에 놓인 작품이다.
원래는 1984년에 25세의 히가시노 게이고를 처음 알린 작품으로, 1984년 제30회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고 한다. 몸도 마음도 젊었던 시절의 히가시노 게이고, 그 시절만의 풋풋한 매력이 듬뿍 묻어나는 작품.
약체고교팀을 고시엔 본선에 올려놓을 만큼 기량이 빼어난 천재 투수 스다 다케시. 봄 고시엔 대회의 아쉬운 패배 이후 스다와 호흡을 맞추며 팀을 이끌던 포수 기타오카가 살해되고, 기타오카가 봄 고시엔 대회 모습이 찍힌 사진 아래에 '마구를 보았다'라는 메모를 남겨놓았음이 발견된다. 한편, 도자이 전기 회사의 3층 화장실에 설치된 폭탄이 발견되고, 이내 범인으로 추정되는 이의 협박장이 도착한다.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은 점점 그 진상이 보이기 시작하며 얽혀있는 뿌리를 드러내게 되는데...
가난한 모자가정의 장남 스다 다케시. 프로구단에서 군침을 흘리는, 어딘가 쓸쓸하고 고독한 모습을 지닌 천재 투수. 야구에 매진하게 된 것은 집안을 위해서, 어머니를 위해서, 동생을 위해서였다. 약체인 팀을 이끌고, 가난한 집안을 이끌고. 팀에서나 집에서나 말 그대로 소년가장인 셈. 띠지 홍보문구에 나온 류현진의 이름이 살짝 오버랩되기도. 풉~ (류현진의 별명 중 하나가 소년가장)
사건이 전개됨에 따라 스다에 얽힌 복잡한 사연과 안타까운 진실들이 드러난다. '마구'는 모든 사건을 아우르는 단서이자 열쇠였던 셈.
불안정하고 불우한 청춘의 땀과 한이 서린 이야기. 각각의 사건들이 허술한 부분 없이 잘 맞물려 돌아가고,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아스라한 여운이 돋보이는 지극히 히가시노 게이고 스러운 작품이었다.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국내에 번역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만한 괜찮은 작품. 그래, 이런 이야기를 원했다고!
굳이 단점을 파고들어 따지고 들자면 약간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 것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단점을 덮을만큼 이야기의 구조나 내용이 괜찮았다. 책장을 덮은 뒤 입안을 맴도는 씁쓰레한 뒷맛이 일품이다. 그저 안타깝고 서글픈...
최근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연달아 뒤통수 얻어맞고 그를 멀리하려 했던 분들께는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다시금 눈길 돌릴 수 있도록 만들만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