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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IQ 178의 천재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부호형사>가 출간되었다. 쓰쓰이 야스타카는 얼마 전 읽었던 <로트레크 저택 살인 사건>으로 처음 만났는데 상당히 기발한 트릭과 반전에 허를 찔렸었다. 물론 추리소설사에 '그런 유형'의 트릭이 종종 쓰이기는 하지만 나름의 변칙과 색다른 변용에 놀랐던 것. 그 유명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 역시 이 작가의 작품이다.
<부호형사>는 2005년 TV Asahi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동명 드라마의 원작이다. 무려 1978년에 출간된 작품인데, 주로 SF작품을 발표하던 쓰쓰이 야스타카가 처음으로 시도한 추리 미스터리물이라고 한다.
차는 캐딜락, 아바나에서 공수해온 한 개비에 8,500엔짜리 시가는 반도 피우지 않고 버리고, 10만엔은 더 되는 라이터를 매번 잃어버리고, 영국제 맞춤 양복을 입고 빗속을 태연하게 걸어다니는 형사... 주인공인 부호형사 간베 다이스케 이야기다. 여주인공을 내세웠던 드라마와는 달리 대부호의 외아들이다.
총 4편의 에피소드가 묶여 있는데, 각 사건마다 정말 대부호가 아니면 하기 힘든 발상과 방법으로 사건해결을 시도한다.
'부호형사의 미끼'에서는 5억엔 탈취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용의자들이 큰 돈을 쓰게 해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도록 만들고, '부호형사의 함정'에서는 기업체 사장의 아들이 유괴당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범인이 요구한 500만엔을 사비로 내놓는다. '호텔의 부호형사'에서는 두 야쿠자 조직의 충돌을 제어하기 위해 호텔을 통째로 빌려 야쿠자들을 모조리 한 호텔에 투숙시켜버린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밀실의 부호형사' 편이었는데, 방화로 살해당한 기업체 사장의 밀실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회사를 차리고(!!), 동일한 조건의 건물을 짓고 방을 만들어(!!!), 그곳에서 직접 사장행세를 하며 범인의 마수가 뻗쳐오기를 기다린다(!!!!)..... -_-
어리숙한 듯, 금전감각이 아스트랄해 보이는 부호형사. 그렇지만 그 나름의 금전감각이 있고, 나름의 센스와 추리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비록 중간 과정이나 결말에서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사태가 이리 튀고 저리 튀고 하는 불상사들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부호형사의 자금 원천이자 부호형사보다 더 괴짜인 아버지 기쿠에몬이 또 압권이다. 사건 하나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돈과 인력을 쏟아붓겠다는데도 "네가 벌써 그런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다니. 넌 정말 착한 아이야. 형사가 되어 정의를 위해 싸우다니. 내 전 재산을 써도 상관없다. 너는 내 더러운 돈을 전부 쓰게 하려고 하느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천사야."하며 흐느껴 울다가 이내 눈을 까 뒤집고 발작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젊은 시절부터 온갖 더럽고 추악한 짓을 일삼았다나 뭐라나.
그리고 기쿠에몬의 양녀이자 비서인 스즈에. 기쿠에몬이 스즈에 아버지의 회사를 파산으로 몰아 스즈에의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했지만(!) 스즈에의 교육비를 대고 양육하여 비서로 삼았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스즈에는 사건 해결에 있어 나름 역할을 맡아 공헌하기도 한다. 다이스케와는 묘한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기도.
전체적으로 조금은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의 추리 미스터리 <부호형사>. 언뜻 최근 국내에 소개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등을 연상시키도 한다. 물론 쓰쓰이 야스타카의 작품이 훨씬 이전에 나온 것이니 후배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연신 피식피식 웃음나는 가운데 사실 어설프고 조금은 미숙한 부분들도 있고, 특이한 서술방식을 취하는 등 독특한 형식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많다. 특히 등장인물이 갑자기 독자를 향해 직접 멘트를 날리는 부분에서는 대번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이 떠오르기도 했다. 작가의 첫 추리 미스터리 작품이라 여러가지 실험적인 것들을 이것 저것 많이 시도했다는 느낌이 든다.
2년 반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썼고, 결코 "쉽지 않았다"며 추리 미스터리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 쓰쓰이 야스타카. 작가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는 드라마 <부호형사>도 찾아서 봐야겠다. 후카다 쿄코가 분扮하는 부호형사는 또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 작가님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만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