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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
아마노 세츠코 지음, 고주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차갑고 아름다운... 생화보다도 치명적인 매력이 있지만, 냉기가 흐르고 순식간에 산산이 깨져 버리는 얼음꽃. 이순耳順의 나이에 데뷔작으로 성공을 거둔 아마노 세츠코의 <얼음꽃>.
얼음꽃 그 자체인 주인공 세노 쿄코의 이미지가 잘 형상화 되었고, 세밀한 심리묘사와 치밀한 전개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언뜻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하나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닮아있는 면이 많지만, 오히려 히가시노 게이고의 범작들보다 꼼꼼하고 빈틈이 적어서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는 세노 쿄코에게 여성으로서 가지는 치명적인 단점 하나. 그것이 불씨가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끝내 자기 스스로를 차갑게 태워버리고 만다. 세노 쿄코의 철두철미한 계획과 그로 인해 거듭되는 반전, 그 모든 일들을 공감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심리묘사,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조여오는 수사망, 절정으로 치닫는 파국. 그 어느 유사한 소설보다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 전화'에 격분했다지만 일말의 의심도 없이 우발적인 살의를 가지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는 것은 그렇게 냉정하고 치밀하기 이를 데 없는 쿄코의 성격과는 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쿄코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집요하기 이를데 없는 토다 형사. 그렇게 우수하고 수사력이 뛰어난 형사가 왜 그렇게 승진을 못했나 싶을 정도였다. 본인 말로는 그냥 현장에서 뛰는게 좋아서라고는 하지만 그런 표현 한줄로는 설명이 안될 만큼 엄청난 수사였다. 게다가 안풀리는 것 없이 척척 진행되어 가는 우연의 연속에, 어쩌면 쿄코가 마주치고 쿄코에게 관계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 뿐인가 싶을 정도의 비현실성. 토다 형사의 온갖 공상 속에서 착착 풀려나가는 사건의 진상. 집요함으로 똘똘 뭉친 집착의 화신 같아서 몰입을 방해하고 오히려 반감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예측가능했던, 조금은 평범한 결말도 아쉬웠다. 뜬금없는 가정부의 변신과 수사종결 뒤에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결국 쿄코를 그렇게 만들고만 부분은 사족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몰아갔으면 좀 다르게 마무리 짓던가. 쿄코스러운 마무리이기는 했지만, 너무 뻔하게 '화장할 시간 좀...'하는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마지막 종말 부분을 빼고 토다 형사의 상상은 상상으로만 남겨둔채,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쿄코가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한마디를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했으면 좀더 씁쓰레하고 여운이 남는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뭐 어차피 어떤 형태로든 파국으로 치닫는 멈출 수 없는 전차였을 뿐이다. 집요한 형사가 있었기에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분명하고.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얼음꽃이 그래도 마지막까지 그 얼음 결정 속에 감추고 지켜낸 것. 얼음 속에서 차갑게 타오르던 그 불씨. 그것으로 집착의 화신에게 끝내 밝혀내지 못할 일말의 찝찝함을 남겨준 것. 그것만으로도 승부는 쿄코의 것이 되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