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 위풍당당 양준혁이 머뭇거리는 청춘에게
양준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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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야구광인 아버지 때문에 한 대 밖에 없는 TV에서는 늘 야구중계 밖에 나오질 않았었다.그 덕분에 그다지 흥미도 재미도 느끼지 못했던 그 공놀이를 무심하게, 하염없이 지켜보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철없던 시절 유일한 재미를 앗아간 야구를 증오하기도 했고, 집에 TV가 한대  더 늘면서부터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던 것을 어느 날 문득 어느 한 선수에게 관심이 확 쏠리면서 내 스스로, 제 발로 야구의 세계에 정신없이 빠져 들어갔다. 한창 WBC로 떠들석하던 분위기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잃어버린 십수년을 되찾기라도 하려는 양, 매일같이 라이브 중계에, 각종 케이블 야구 정보 프로그램까지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이면 '야구 월요병'에 걸려 나도 모르게 기운이 빠지고, 비어버리는 저녁시간이 그리도 허망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를 3년째.

 서론이 너무 길었나... 야구를 접하고 야구를 캐다 보면 심심찮게 들리는 별명이 하나 있다. 바로 '양신'. 처음에는 뭘 도대체 얼마나 했기에 신이라 불리나 했지만 그의 종적과 과거 기록을 캐보면서, 2010올스타전 대타로 나와 극적인 쓰리런을 때리는 모습에 전율하면서, 화려한 은퇴식을 보며 삼성팬도, 그의 팬도 아닌데 함께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조금씩 알아간 말년의 양준혁 선수를 스스로 인정하고 받들기에 이르렀다.

 날 야구로 이끌었던 그 선수는 양준혁 선수가 아니다.(이것은 반전? ^^) 더욱이 응원하는 팀도 삼성 라이온스가 아니다. 그럼에도 양준혁 선수의 말과 행동,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타석에 들어섰던 그의 모습을 보고 점점 팬이 되어갔다. 처음에는 살짝 비웃기까지 했던 양신이라는 별명에도 점차 거부감이 옅어져 갔다.

 은퇴한 그가 내놓은 에세이 <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들과 이런 저런 조언들, 읽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저자의 마음이 가슴에 와닿는 것이 정말 좋았다. 으레 운동선수나 유명인의 에세이는 자기 자랑이 주를 이루지만 이 에세이는 자신의 한계와 괴로웠던 심경을 고스란히 토로하고 솔직하게 스스로 최고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에세이를 통틀어 가장 많이 나온 이름은 '이승엽'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타자 가운데 한명이었던 그와 직접적으로 경쟁해야 했던 선배 양준혁의 심정. 1인자 이승엽에 쏟아지는 찬사와 스포트라이트에 솔직히 질투도 많이 했다는 2인자 양준혁. 이승엽이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시절은 야구에 도통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신문 스포츠면에서 가장 많이 본 선수의 사진과 이름이 이승엽이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한창때 혈기왕성했던, 같은 팀 소속, 선수 양준혁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진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누구도 양준혁을 2인자라 말하지 않는다. 최다경기(2135경기), 최다홈런(351개), 최다안타(2318개), 최다타점(1389개), 최다득점(1299개), 최다타수(7332타수), 최다루타(3879루타), 최다2루타(458개), 최다사사구(1380개)의 어마어마한 기록. 41살의 나이까지 현역으로 뛴, 그 누구보다 철저한 자기 관리. 파란 피가 흐르는 삼성 라이온스의 영구결번 10번. SNS 등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뛰어난 젊은 감각. 선수 양준혁을 한 마디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점과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다.

 내야 땅볼을 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1루로 달리고, 자신의 어떤 기록들보다도 사사구 기록이 가장 값지다는 양준혁 선수. 야구팬의 입장에서 내야땅볼이라고 대충 설렁설렁 1루로 산보하듯 뛰다마는 선수와 공도 제대로 안보고 대충대충 방망이 휘둘러 삼진 먹고 돌아나오는 선수를 볼 때면 그야말로 열불이 터지는데, 천하의 김응용 감독도 양준혁 선수의 다른 좋은 기록들 보다도 열심히 1루까지 뛰는 모습을 높이 샀다하니, 팬의 입장에서도 감독의 입장에서도 양준혁은 정말 매력적인 선수가 아니었나 싶다.

 선수 시절 에피소드와 일화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데, 김응용 감독과 김성근 감독과의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서릿발 날리는 호랑이 감독으로 유명한 김응용 감독의 의외의 부드러움. 길지 않은 인연임에도 정말 많은 것을 깨우쳐주어 스승으로 받든다는 김성근 감독. 특히 '다른 팀과 팬들이 타도 SK를 목표로 하는 것은 김성근 감독을 이기고 싶어하는 것이며, 그걸 통해 김성근 감독은 필요 이상으로 독하다고, 그의 방법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라는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역시 '다른 팀 팬'의 입장에서 '김성근의 SK'가 아래로 내려왔을 때, '그것봐라, 언젠가 그럴 줄 알았지.'하며 고깝게 보려는 마음이 은연중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은퇴 후, 예능프로그램 출연, 전국 각지 대학과 회사 특별강연, 양준혁 야구재단 설립, SBS ESPN 해설가 등. 선수 시절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회인 양준혁씨. 해설 중에 팀을 불문하고 후배 선수들에 대한 애정어린 표현과 격려, 진심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는 것을 보고 야구를 사랑하는 양준혁씨의 진심이 느껴져 가슴 뿌듯해질 때가 많다.

 최고의 선수였음에도 언제나 겸손한 자세, 넉넉한 덩치만큼이나 넉넉할 것 같은 마음씨, 소탈하고 꾸밈없는 웃음. 선수 양준혁으로서의 기록은 끝이 났지만, 인간 양준혁의 타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가 반드시 쳐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안타를, 혼신의 힘을 다해 1루로 달려가는 그 모습을 미소지으며 오래도록 지켜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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