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킬러들이 득실대는 이 신칸센, 어디로 흘러가는가 - <마리아비틀>


 독특한 세계관과 작품들로 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이사카 코타로의 신작 <마리아비틀>. 무당벌레를 뜻하는 마리아비틀은 작품 속 한 킬러의 별명이기도 하다.

 

 알콜중독자 기무라가 아들의 원수를 갚기위해 발을 들여놓은 신칸센, 원수를 찾아 무난하게 복수하는가 싶었는데 순간적으로 반격을 당해 오히려 붙잡히는 상황이 되고, 온갖 킬러들이 득실대고 있던 신칸센 내부는 서로 얽히고 물리며 폭풍처럼 소용돌이 치게 된다.

 

 기무라, 왕자, 밀감, 레몬, 나나오(무당벌레), 말벌, 늑대. 거기에 기무라의 부모와 마리아, 나팔꽃, 스즈키까지. 기무라-왕자-과일(밀감과 레몬)-나나오 이렇게 네 화자가 번갈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이 두꺼운 소설은 시종일관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톱니바퀴처럼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온갖 복선과 나름의 반전도 존재한다. 거기에 급박하고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도 간간히 터지는 유머와 화자들의 입을 빌어 말하는 이사카 코타로의 철학이 녹아들어 읽는 내내 '오, 괜찮은데~'를 연발하게 할만큼 재미있었다. 확실하게 정립된 캐릭터들과, 돌발과 우연 혹은 필연이 겹쳐 어우러지는 사건들이 빈틈없이 맞물리며 굴러가는 혼돈의 신칸센. 이사카 코타로의 솜씨가 절정에 달했구나 하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기무라가 노리던 원수는 14살의 중학생 왕자. 성이 오우지(王子)라 왕자로 불리지만 순진하고 모범생같은 외모와는 달리 교활한 두뇌와 사악함으로 무장해, 또래 아이들을 거느리고 수족처럼 부리는 말그대로 왕자다. 이 왕자가 기무라의 어린 아들을 건물 옥상에서 밀어 중상을 입힌 것. 왕자가 신칸센에 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왕자를 노리러 왔지만 오히려 전기충격기로 반격을 당해 왕자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만다.

 

 어둠의 세계 거두 미네기시의 아들을 구해내어 무사히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은 밀감과 레몬. 무사히 구출해서 신칸센에 태운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미네기시의 아들이 죽어있었던 것. 거기에 함께 가져오라던 돈가방까지 사라지면서 밀감과 레몬은 신칸센을 이잡듯 뒤지기 시작한다.

 

 중개업자 마리아로 부터 밀감과 레몬이 가지고 있는 가방을 빼내 오라는 임무를 받은 나나오. 무사히 탈취하여 정차한 역에서 내리려는 순간 원수 늑대와 맞닥들여 내리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달리는 신칸센에 몸을 실고 함께 달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거기에 정체모를 킬러 말벌과 중간중간 등장하는 나팔꽃의 이야기. 그리고 총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눈하나 꿈쩍않는 학원 강사 스즈키. 시종일관 뭔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로 나중에 반전을 터트리는 인물이 되지 않을까 했던 스즈키는 알고보니 전작 <그래스호퍼>의 주인공이었다. 나팔꽃, 말벌 등도 모두 전작에 등장해 활약했던 킬러들. 후속작인 <마리아비틀>부터 읽게 되었지만 읽고나니 상당히 매력적이고 찰진 이야기들이라 <그래스호퍼>도 읽어볼 예정.

 

 어쨌거나 이들이 서로 얽히고 섥힌 중심, 폭풍의 눈에는 사악함과 악의로 똘똘 뭉친 왕자가 있었다. 남들의 불행과 절망을 즐기는 이 어린 왕자는 신칸센 내부에서 벌어진 거의 대부분의 사건과 싸움을 부추긴다.

 

 '타인의 인생을 사정없이 으깨어 거기서 흘러나오는 과즙을 마신다. 그보다 맛있는 것은 없다.' -p.436

 

 역자후기에서 옮긴이 이영미씨의 말마따나 시종일관 얼른 누가 이 왕자 좀 처리해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잔망스럽고 요망한 것이 어찌나 꼴뵈기 싫던지. 잔인한 킬러들이지만 나름 순수하거나 담백한 성격을 가진 여타 등장인물에 비해 나이 어리고 순수한 외모를 지녔지만 그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사악하며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것마냥 소름끼쳤던 인물, 왕자. 왕자에게 총구가 겨눠질때마다 망설이지 말고 빵~ 하고 쏴버렸으면 속시원하겠다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는 필시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와 사악함의 화신이 왕자로 그려진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결코 표출해서는 안되는 악의, 그 존재에 몸서리치고 징그러워 하지만 몸속 깊은 곳에서 꿈틀대고 있는 기생충같은 그것. 시작과 발단은 기무라였고, 나나오나 과일형제 모두 비슷한 분량을 가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도 그렇고 이 <마리아비틀>의 주인공이자 이사카 코타로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인물은 바로 이 왕자가 아닐까 싶다. 

 

 전작 <그래스호퍼>에서 <마리아비틀>로 이어왔듯 후속편을 기대해봐도 좋은 시리즈일 듯 하다. 결말을 보면 더욱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위험천만하고 순간순간 스릴넘치는 킬러의 삶은 무척이나 고되고 그 결말도 비극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킬러, 일명 문학킬러 밀감이 인용했던 소설 속 한구절은 이들의 삶을 너무나도 잘 대변해준다.

 

 '우리는 멸망해간다. 제각각 홀로' -p.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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