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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그녀들의 내밀한 역사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구중궁궐 속에서 왕과 함께 사는 여인들
조선왕조사에 있어 왕의 이야기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왕비와 후궁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구중궁궐은 왕의 소유나 마찬가지지만 그 궁궐속에 왕과 함께 사는 여인들은 왕보다 몇배나 많은 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양한 캐릭터와 일화들로 유명해 오늘날 문학이나 사극의 단골 소재가 되어 남편인 왕보다도 더 각광받는 인물들이 즐비하다. 흔히 왕의 여자라 하면 왕비와 후궁들만을 생각할 수 있지만 궁궐에 함께 사는 이들, 즉 궁녀들 모두를 일컬어 '왕의 여자'라 할 수 있다. <왕의 여자>에서는 왕비와 후궁을 포함한 궁궐내 궁녀들을 모두 다루고 있다.
<왕의 여자>의 구성은 궁녀-후궁-왕후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궁녀로서의 모든 지위, 즉, 궁녀, 후궁, 왕후를 모두 겪은 '장희빈'을 예로 들며 점층식으로 궁녀의 삶을 짚어나간 것이다.
제1장 궁녀편에서 특기할만한 사실은 궁녀들이 노비나 천민출신이었다는 점이다. 사극에서 보면 궁녀들은 일반인들보다 지위가 높고 모두가 존대한 것으로 그려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들까봐 일반인은 궁녀가 되지 못하도록 법으로도 규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임금을 지척에서 모시며 궁궐내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위엄있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사실 궁녀들의 삶은 무척이나 고단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봐도 남을 위해 청소하고 밥짓고 빨래하고 옷만들고 애(왕자나 공주) 키우고 하는 일이 쉽지도 않거니와, 신분차로 인해 왕실가족을 극진히 떠받들어 모셔야 했으며, 평생 혼인하지 못하고 궁궐내에서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장희빈이나 최숙빈처럼 빼어난 미모나 재기로 왕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는 호사를 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실상은 우연히라도 왕과 한번 마주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평생 혼인하지 못하고 혼자사는 것도 모자라 (당연한 일이겠지만) 왕 이외의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것 역시 금지되었다고 하니, 왕의 눈에 띄는 대박로또를 바라기 보다 신분은 천해도 궁궐 바깥에서 마음에 맞는 남정네와 알콩달콩 사는 것이 인간적으로 더 행복한 삶일 수도 있겠다 싶다.
제2장에서는 왕의 첩 후궁들을 정리했다. 조선왕조 27명의 왕이 둔 후궁은 모두 101명이었다고 한다. 많은 후궁을 거느린 왕도 있고 후궁이 없었던 왕도 있으니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한 임금 당 3.7명의 후궁을 두었던 셈. 정1품 빈嬪부터 종4품 숙원淑媛까지 품계를 정리(정리는 제1장에서 함)하고 제1대 태조부터 마지막 순종까지 거느렸던 후궁들과 그들의 소생, 후궁들의 성씨 등을 표로 만들어 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후궁들의 선발유형을 정리해 놓았다는 것인데, 외부선정-내부승진-자동승격-준후궁-기타의 경우로 분류해 놓았다. 이를테면 중종 때 경빈 박씨나 희빈 홍씨 처럼 왕으로 즉위한 이후에 이러저러한 사유로 후궁을 외부에서 들이는 경우, 숙종 때 희빈 장씨나 숙빈 최씨처럼 궁녀로 입궁했다가 왕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된 경우, 태종 때 효빈 김씨 처럼 왕이 되기전 사가에서부터 첩이었다가 왕이 되면서 자동적으로 후궁이 된 경우, 후궁으로 책봉되지는 않았지만 승은을 입어 특별상궁으로 후궁대우를 받은 경우 등이다.
이러한 후궁들이 주목받고 주역이 된 드라마가 왕후의 그것보다 훨씬 많은데, 보다 극적이고 많은 이야기거리들이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숙용('장녹수'), 장희빈('장희빈'), 최숙빈('동이'), 박경빈-홍희빈('조광조', '여인천하'), 김개시('서궁') 등등.
한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뭇 드라마에서 후궁역할은 대부분 예쁘고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맡지만 사실 후궁들의 외모가 빼어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장희빈이나 홍희빈처럼 여러 대신들이 미색에 현혹되지 말 것을 수시로 상기시켜줄 정도로 외모가 빼어난 경우도 있었지만 실록에 대놓고 외모가 별로였다고 평을 한 경우(김개시)도 있었다.(드라마 '서궁'에서는 이영애가 개시역을 맡았으니 실제 역사와의 괴리가 제법 크지 않은가? ^^;)
마지막 장에서는 왕의 정부인인 왕후에 대해 이야기한다. 총 36명의 왕후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왕후 선발 유형, 출산한 소생, 성씨별로 분류해서 잘 정리해 놓았다. 여자로서는 말그대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까지 오른 왕후는 왕의 부인인 동시에 궁궐내 여인들의 조직인 내명부를 총괄하는 수장이었다. 왕후 역시 삼간택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집안이나 출생시時에 비해 외모는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당연한 것이, 국모의 자리에 오를 인물이니 성격과 지혜, 성품이 우선시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간택하는 대비大妃의 입장에서는 예쁜 며느리보다는 시어머니 말을 잘들을 것 같은 며느리를 뽑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
책의 머릿말 제목은 '장희빈에게 물어보자'이다. 궁녀로 입궁하여 빼어난 미색으로 후궁이 되었다가, 명성대비의 반대로 궁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입궁하여 인현왕후를 밀어내고 중전의 자리에 올랐다가, 다시 밀려나 후궁이 되었다가, 결국에는 쫓겨나 사약을 받고 죽은 희빈 장씨 장옥정. 말그대로 궁궐 여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와 지위를 가졌었기에 궁녀의 삶 그 자체를 대변하기에는 이만한 인물이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극적이기에 사극의 단골 주역으로 대중들에게도 가장 익숙한 대표 후궁일 것이다.
<왕의 여자>의 미덕이라면 많이 알려진 후궁과 왕후에 대해서 뿐 아니라 하찮은 일들을 맡아 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던 궁녀들의 모습을 세세히 짚어본 것이라 하겠다. 군데군데 실록이나 여러 기록에서 전하는 재미있는 일화들을 소개하고 버무려놓아 읽는 재미도 더했고, 제도상의 분류나 각 후궁과 왕후의 기록들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해 놓은 점 역시 훌륭했다. 팩션 소설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재미를 주는 것도 좋지만 이렇듯 딱딱할 것 같지만 의외로 읽는 재미도 상당한 대중역사서가 더 공부가 되고 유익하다 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덕일님의 저작물들이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아침'은 참 좋은 출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