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 개정판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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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천원권 지폐에 새겨진 인물로, 성리학의 거두 중 한 사람으로, 청렴한 관리의 한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대체로 그런 유명세나 업적 이외의 생활이나 삶을 알기란 쉽지 않았다. 이는 이퇴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명한 선비나 관리들에 해당되는 일이기도 하다.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는 이황이 장남 이준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책으로 이황과 주변의 생활상, 아들을 걱정하고 다그치는 애틋한 부정父情, 집안일을 다스리고 걱정하는 마음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 매우 훌륭한 기록이자 사료史料였다.

 천원권 지폐나 교과서 등에서 보여지는 이황 선생의 영정影幀의 영향과 더불어 명망 높은 이황 선생 이름 자체에서 오는 영향 덕분에 매우 고상하고 고매한 성품으로 사소한 것에는 신경쓰지 않는 전형적인 사대부 바깥양반일 것이라 예상했던 선입견을 철저하게 깨준 편지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흰 접는 부채 2자루와 둥근 부채 2자루, 참빗 5개, 먹 한개, 붓 한 자루를 보낸다. 접는 부채와 참빗은 너의 처에게 전해주면 좋겠구나.', '또한 (토지, 재산) 문서는 상자에만 담아 보낸다면 너무 허술하지 않겠느냐? 마땅히 봉한 것이 완전한지 완전하지 않은지 살펴보아 너희들이 더욱 잘 봉하여 가볍지 않더라도 잘 간수하여 직접 가지고 오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등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 도처에서 드러난다. 집안 종들의 성향과 성격을 파악하고 이 종은 이러하니 다그치고 저 종은 저러하니 중히 쓰라는 등의 모습들도 나타나 있다. 

 이황 선생이 생전에 쓴 편지들 가운데 지금 남아있는 것만 무려 3천통 이상인데 이중 아들에게 보낸 516통 중 162통을 실어놓았다고 한다. 그 당시야 서간이 전화나 문자, 이메일을 대신하던 시대였으니 쓴 편지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편지들이 고스란히 지금껏 전해오는 것이 무척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장남, 아들에게 쓴 편지들이다 보니 아들의 건강과 공부에 관해 묻고 다그치는 내용들이 무척 많다. 예나 지금이나, 신분이 높으나 낮으나,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아들을 걱정하고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은 매한가지. 장가를 들고 나이가 들어감에도 급제하지 못해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아들에게 허송세월말고 산사에 들어가 독서하고 공부하라는 다그침이 제법 직설적이고 따끔했다. '너희들은 날로 나아갈 줄을 모르니 아마도 날로 퇴보하여 마침내는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말까 두렵다.'라거나 '끝내는 농부나 군대의 졸병으로 일생을 보내고자 하느냐?' 등 매서운 표현들도 많았다. 때로는 마치 나를 향한 이황 선생의 눈초리가 느껴져 이황의 장남에 일시 빙의(?)되기도 했다. ^^; 그러나 역시 아들이 먼길을 오가고 상을 치르거나 대소사를 처리함에 있어서 고생되지는 않았는지, 병에 걸렸을 때 차도가 있는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곳곳에 깊이 배어있어 아버지의 따스한 부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상喪 중에 학질에 걸린 아들에게 고깃국을 먹도록 한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때로 그런 경우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밖에 외종조부에게 수양손으로 가 있다 일찍 죽은 차남 이채에 대한 안타까움, 집안의 형제들과 조카들의 좋고 나쁜일들을 기뻐하고 슬퍼하는 마음들도 적어놓았다.

 또한 이황의 학문적 성과와 명망에 비해 벼슬이 그리 높지 않았던 데에 품었던 의문도 해소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이황의 체질이 병약하여 병치레를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권문세도가가 아니었고, 학문에만 매진하고자 한 뜻, 조정의 치열한 다툼에 회의를 느낀 바도 크겠으나 한창의 나이에 주어진 벼슬을 오래 지내지 못하고 일하는데 힘에 부쳐하는 모습들이 자주 나온다. 말년에는 재산이 꽤나 모였다고는 하나 당시에는 장남을 처가살이 시킬 정도로 집안이 가난하여 녹봉을 받아야 함에도 자꾸만 제수된 벼슬을 사양하고 깊은 고민만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내내 이황 선생의 가슴을 그토록 졸이게 만들고 애타게 했던, 줄곧 편지를 받아 읽어야 했던 당사자 이준의 출사出仕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황이 55세 되던 1555년에 이준은 음직으로 제용감의 봉사로 나아갔다고 한다. 이황은 고향에 돌아와 손자, 며느리와 함께 지냈는데 이때부터는 외지에 부임한 아들에게 또 걱정과 근심어린 편지들을 보낸다. 관직생활에 관한 조언들과 관직을 옮기는 일, 남명 조식의 일과 같은 중요한 소식은 꼬박꼬박 알리라는 등...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형편이 좋으나 나쁘나 아버지에게 아들은 아들일 뿐.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처음부터 끝까지 애타는 부정과 애틋한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그 어떤 글보다도 진솔한 마음이 가득 담긴 퇴계 이황의 향기롭고 따스한 글들, 무엇보다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한, '이황의 보낸메일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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