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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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소설을 먼저 읽지 않고 에세이를 접하면서 그 작가의 작품을 일독해봐야겠다고 결심하는 경우가 있다. 학창시절 독후감을 쓰기위해 윤대녕의 <사슴벌레 여자>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분명 있었음을 기억하는데, 결심대로 그 책을 읽었는지, 읽고나서 독후감은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 책의 내용만큼이나 아리송, 안개속에 휩싸인, 어쩌면 그 기억조차도 왜곡되고 조작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윤대녕의 <사슴벌레 여자>라는 소설을 기억하고 있는 만큼, '그때 그 결심'은 내 역사속에 실재實在했던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은 작가 윤대녕의 역사 속에 실재했던 일들을 차분하고 조용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올해로 마흔아홉살이 된, 학창시절부터 문학을 하겠다고 부모 속 깨나 썩인, 그래서 아버지와는 평생을 서먹서먹했던, 어머니 가슴에 대못 깨나 박았던, 책보따리, 노트북 짊어지고 훌쩍 전국 사방 어디론가 떠나기를 밥먹듯 하는. 우연찮게 이름을 알게 되어 그의 신작 에세이를 읽게 된 작가 윤대녕은 그런 사람이었다. '우연찮게'라고 하니 생각나는데 대학시절 읽었던 소설책 뒷날개에 인쇄되어 있던,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그의 소설집 제목 <은어낚시통신>을 보았었고, 알라딘을 들락거리면서 그의 신작 소설집 <대설주의보>가 나왔다는 것도 보았었다. 유달리 그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 것에는 분명 '대녕'이라는 흔하지 않은 이름도 한 몫 했으리라. 그러나 그가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에서 지극한 우연도 '불가해한 우주의 섭리'가 작용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말하듯 내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작품명을 기억하고, 마침내 그의 산문집을 손에 쥐고 곱씹으며 읽어내려간 것도 우연은 우연이되, 강한 자력이 작용한, 어쩌면 <사슴벌레 여자>를 알던 그 시절부터 예정되어 있던 필연적인 사건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번 산문집에서 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청춘을 그리워하고, 현실을 깨달아가고,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작가 윤대녕을 알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텍스트'는 없다고 여겨진다. 윤대녕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팬들이 들으시면 피식 하고 웃으실지도 모르지만. 


'윤대녕의 독서일기'에서는 마루야마 겐지의 책들에 대한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 일회성의 일본문학에 질렸다면 마루야마 겐지의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를 읽어보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윤대녕이 마루야마 겐지의 <달에 울다>, <물의 가족>,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를 읽던 시간이 행복했다고 쓰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반드시 마루야마 겐지를 읽어봐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도 함께. 


작가의 소설을 먼저 읽지 않고 에세이를 접하면서 그 작가의 작품을 일독해봐야겠다고 결심하는 경우가 있다. 거듭된 우연이 필연이 되어 결국 그의 글을 읽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의 작품들을 일독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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