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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 - 오쿠다 히데오 스페셜 작품집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버라이어티_오쿠다 히데오
출판사_현대문학

<버라이어티>는 살아가면서 볼 법하고, 겪을
법한 삶의 이야기가 유머러스하게, 혹은 웃프게 그려진 흥미로운 단편 모음집이었다.
이전에 받았던 작품, <악녀에 대하여>가 한 여성의 삶을 여러 사람의 시점으로 재구성 함으로써, 한 인간의
내면이 사회에서 어떻게 비칠 수 있는지를 보며, 인간의 내면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대해 반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소 소재가 소재인 만큼 다소 어두운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반면, 이 책은 아주 조금 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그들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럽게, 유쾌하게, 안타깝게, 그래서 웃프게, 그려내고
있다.

직접 회사를 차리겠노라며,
서른여덟에 준대기업 광고 기획사를 호기롭게 나왔지만 곧이어 직접 마주한 현실에, 사회 만렙(이라고 자부할 능력자)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현실을 배워가는 미생이 된 초보 사장님의 고군분기.
아내와 몇 년 만에 친정에 가는 길, 계속해서 행인을 태워주는
선행을 베푸는 아내 때문에 미쳐가는 남편과 아수라장이 된 벤츠. 빚쟁이 위에 수배범과
날아다니는 도망자 여인네들 이야기, 딸의 첫 경험을 계획을 알아차린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엄마의 울지도 웃지도
못할 007!
참으로 다채로운
이야기가 잔잔한 미소를 자아내는 작품이었다.
제일 인상 깊었던 내용은 앞의 유일하게 연작인 단편 두 작품, '나는 사장이다!'와 '매번
고맙습니다'의 나카이 가즈히로 이야기 였는데, 기업의 생리와 자본주의 사회의 암담하고도
모순적인 모습이 함께 그려졌기 때문에 더 그러했던 것 같다.

"하긴
대기업 출신 사람들은 깎거나 후려치는,
덧셈 뺄셈 경험이 없으니까. 세상 물정 모른다고나
할까......."
"뭐야, 그런 너는 잘 알고
있냐?"
"적어도 사장님 보다는요. 난 계속 비정규직이라 맨션을 빌릴 때도,
신용 카드를 만들 때도 더 힘들었어요. 그런 거, 경험해 보지 못했죠?" - p.91 <매번
고맙습니다>

"하지만 대기업만
그래요. 피라미드의 아래쪽으로 가면 시스템 자체가 없어요. 야생의 왕국이죠. 약육강식인." -p.110 <매번
고맙습니다>
가끔 사회 기사면을 보면 대체로 단가 후려치기나 지시 문제와 같은 하청 문제나 배임 횡령 혐의 등... 주로 기사로
터지는 것들을 보면, '약육강식'은 대기업에 의해서 비롯되는 게 더 많아 보였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적어도 그쪽은 '시스템'의 보호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의 힘'을 받고 있는 대상들이 아닌가.
이제 막 창업 단계의 신생 기업이나 기존의 중소 기업들이
프로젝트 하나 성사하는 데 얼마나 피 튀기는 전쟁이 이뤄지고 있는지가 새삼 와닿았다. 요즘 아무래도 삶이 삶인지라 나카이의 이야기가 더 안타깝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 막 비참하고 피폐하고 암담하고 쓰라린 것만은 아닌 것이, 그게 이 작가님의 특징인지
모르겠는데... 마냥 암울할라하면, 한번씩 그걸 조금씩 풀어주는 유머(?)가 있다. 가령 여기서는 나카이가(家)의
가족이야기였다.

"오사카에서는, 게임기를
살 때도 '아저씨, 깎아 주세요'하고 주인한테 말한대."
"저기, 유키. 그런 말은 절대 하면 안 돼. 사람이
추해지거든."
"잠깐만,
여보. 이상한 말은 하지 마세요."
구미코가 옆에서
참견한다.
"그럼, 깍지 마?"
"아빠는 안 그럽니다. 도쿄
사람이니까요."
"그럼
후려치는 건?" -
p.95<매번 고맙습니다>
초등학생 딸이 사회 숙제로 아버지 직업과
관련된 인터뷰를 하는 이야기가 중간 중간 나오고, 가족 간의 일상이 또 중간 중간 나오는데, 딸이 말하는 게 귀엽다. 아니, 딸보다 딸의 질문에
답하는 부부의 티격태격 모습이 웃기다.
또, 어찌보면 대화를 보면서 나카이의 가부장적이고 다소 뻣뻣한, 좋게 말하면 강직하고 자신의 신념이 굳지만 나쁘게
말하면 좀 융통성 없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 마저도 저 딸과의 대화, 그리고 그걸 보며 경악하며 제제하는 아내의 모습이 참
웃프다.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대화하기 싫을 것 같은데, 그래도 사람으로서, 나름 대기업 인재였던 사람으로서, 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지키고 싶은 마지막 자존심
같은...음, 뭐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도 함께 떠올라서 아주 밉지도 않았던 게 참 의아했다.
이후, 나카이의 회사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결말은 없다.
다만, 이 사람이 세상에 도전장을 던졌고, 세상 풍파에 치이면서 배워나가는 모습이 우리네들의 모습 한 켠을 떠올리게 해서 묘하게 정이 갔던 것
같다.
이후에도 친정 가는 길에 계속해서 행인들을 태워다 주는 아내 때문에
두통 좀 겪어야 했던 노리오와 아내 히로코 이야기를 담은 <드라이브 인 서머>는 정말, 다시 떠올려도 아내의 선행이 이해가, 아니
감당이 안된다. 심지어 태웠던 사람도 이상한 사람들이어서, 노리오가 신경질적으로 그려진 점이 적잖게 있지만, 나는 노리오의 심경이 대번에
공감갔다.
또, 딸의 첫 경험
계획을 눈치 채버린 엄마가, 이걸 엄마로서 말려야 하나, 아니면 둬야하나!!를 두고 자기 모순에 빠져 방황하는 이야기 <세븐틴>은
정말,, 웃기다가 안타깝다가. 일본은 10대 후반 40% 정도가 경험을 끝냈다라니........ 나 같은 초 보수주의자는 경을 칠 일인데. 내가
엄마라면 머리를 써서 못 나가게 잡았을 것도 같아, 참 함께 답답하고, 고민했던, 상황이 웃겼지만 마냥 웃지
못했던 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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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난 뒤, 문득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명언이 떠올랐다. 그저 '남의 일'로 이
이야기들을 보면 '으아, 무슨 이런 상황이 다있어, 짠해, 뭐야 이 사람들ㅋㅋㅋㅋ'하고 그저 웃겠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이 당사자들은
'비극'아닌가.
잘나가던
중견기업 나와서 사장 달자마자 그전 회사 부장이 보복 심리로 일을 가로채가질 않나,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착실하고 부정하지 않게 일처리 했더니
뻗뻗하다는 소리나 듣고, 세상 물정 모른다는 소리를 듣질 않나.
현대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데 아내는 모르는 사람들을 차에
태워주는데,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 탔다!! 내 아내를 성희롱 하는 이상한, 예의라고는 밥 말아 먹은 이십대 남자에 휴게소에서 합승한 노부인,
아이 둘 딸린 엄마, 경찰 사이렌과 함께 갑자기 차 앞에 나타난 식칼 든 남자!
금융회사에 돈을 빚지고, 남편의 폭력에 도망쳐 다녀야 하는
하루하루를 속여야 하는 삶.
딸아이의 순결과 피임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엄마!!
이 얼마나 비극적인
상황들인지.
하지만, 읽는 독자로서 나는, 이 짠내(?)나는 풍경이 애잔하면서도
재밌었다.
이 외에도 저자가 잇세 오가타, 야마다 다이치와 나눈 담화도 중간
중간 실려 있는데, 스페셜 작품이라 그런가, 이런 내용도 신기했다. 작가의 목소리는 항상 <작가 후기>에서 보던 것들이었는데, 작품의
해설은 <작가 후기>에 있지만, 또 그 두 편의 담화에 집필할 때 생각들이나 세상을 보는 관점, 작품을 대할 때 태도 등에 담겨 있던
점이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작가
개인의 사견들일테니 부분부분 공감가는 부분은 공감하고, 아닐 것은 '아, 그렇구나'하면서 넘겼지만.
'독자가 뒤를 예측할 수 없게 하고 싶다.'라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물론 요즘 다시 보니 다양한 소재와 참신한 이야기의 글들이 많은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비슷한 장르의 글을 연달아 읽다보면, 또
같은 내용이네,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 캐릭터 구성할 때의 생각이라던가, 사건을 구성할 때 참작하는 사건들을 보는 관점들도 유익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글을 쓰고 싶은 나로써는 단편집도 작가의 필력(을 내가 아직 운운할 정도는 아니라 조심스럽다.ㅠㅠ)과 개성에 따라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던 글이었다.
또, 작가의 마지막 작가후기에 작품이 탄생하게 된
비화(?), 계기와 출판업계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아... 작가님 상황도 심지어 웃프다. 숨겨진 [단편집 1]인줄.
그래서 였을까. 작가는
담화에서 우리 모두가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가르치는, 모두 자신의 인생이 더 의미 있어야 한다는 식의 가르침을 비판하고
계셨지만-물론, 자신의 인생은 더 의미 있어야 한다는 식의 자기 과대평가를 우려한 것
같다-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인생이 잘
풀리고 의미있는 삶이든 아닌 삶이든, 우리는 모두 자기가 주인공인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 더욱 열심히
살아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나만의 글을 써내려가야지. 처음 문학 독후 신청할 때, 독서는 책을 통한 여행이라고, 그래서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견문을 넓히고 싶다고 했는데..... 그게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이다.
다양한 삶과 그 속에 담긴 애환, 해학.. 그리고 그것들을
보는 작가의 시선. 짧은 글들 안에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도 얻고, 또 한가지, 좋은 배움을 얻은
것 같다.
<본 서평은 현대문학(출판사)의 문학독후로 활동하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