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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4월
평점 :
리허설_앨리너 캐턴
출판사_다산북스
"진짜라는 말은 아무 의미 없어. '진짜'처럼 보이기만 하면 돼."
날카로운 불안과 발칙한 도발 사이를 날렵하게 넘나드는 사춘기 소녀들의 가장 순결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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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연습을 못 했어요.
...... 하지만 이유가 있어요. 제 얘기 들어보실래요?"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바로 학생과 제자의 성 스캔들 때문이었다. 그것도 학생은 미성년자. 가뜩이나 사제 간의 사랑도 이슈인데 상대는 무려 십대 소녀였으니, 학교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요, 신문 기사에 온갖 도배되어 갔다.
한순간에 사건 속 주인공의 여동생이 되어버린 이솔드는 색소폰 첫 여섯 마디를 불다 놓고 말았다. 이유인 즉슨, 언니가 성추문에 휩싸였는데 그것 때문에 연습할 수가 없었다는 거다.
그 일로 학교에서는 여학생을 대상으로 상담 교육이 생기고, 이솔드의 부모님들은 더욱 경계를 높이기 시작하지만, 그녀의 언니를 둘러싼 수군거림은 좀처럼 잦아들지가 않는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연기에 열정을 보이는 스탠리는 연기 학원에 입학하기로 결심, 오디션을 보고, 연기 수업이 시작된다. 또, 학교 성 스캔들 이후,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당찬 입담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줄리아는 이솔드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색소폰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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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십대 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그 나이의 설렘과 방황, 흥분, 호기심 등등이 떠올라 흥미롭게 읽은 것 같다.
실은 영미/유럽 소설 쪽이 번역투가 잘 안맞는지, 잘 못읽는 편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도 처음에 읽는데 약간의 진입장벽이 있었다. 주인공들이 주로 '예술계'쪽 이다보니, 대화 내용이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무튼 뭔가 처음에 적응하기 힘든 문장들이 많았다.
"색소폰은 목관악기 일가의 코카인이야. 색소폰 주자는 위험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더욱 어둡고 사악한 면을 탐험하기 때문에 존경받지. 네 연주에서는, 브리짓, 때 묻거나 섹시하거나 땀투성이거나 냉정한 면이 전혀 보이지 않아. 보이는 거라고는 매끈하고 반짝거리는 분홍색과 하얀색, 품평회의 푸들처럼 차분하고 건전한 모습뿐이야."-p.92
되게 극작품 같은 문장들도 많았고, 내가 함축적인, 뭔가 상황을 암시하는 듯한 문장들도 꽤나 많았던 것 같은데 빠르게 읽어서 인지, 내가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읽는데 조금 버벅거리면서 읽은 기억이 난다....
다만, 확실히 사춘기를 잘 그려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잡스런 소문에 겉으로는 쉬쉬 하면서도 왕성한 호기심에 뒤로 수군거리기에 일수이고, 앞에서는 욕하면서 선생님과의 애정관계에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는 여학생들. 또,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친구 무리로부터 배척 당하기도 하는 이솔드의 언니.
그 외에도 학생들이 생각하는, 어쩌면 실제로 일반적일지도 모를 여학생과 남학생 집단의 성향 차이라던가, 이성에 대한 호기심부터 살짝 민감한 성 소수자 이야기까지. 정말 띠지에 소개된 것처럼 '발칙한' 데뷔작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나이 불안정하고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겪는 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 비슷한 맥락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읽다보니 옛날 옛적에 보았던 <하이스쿨 뮤지컬>이라는 영화도 떠오르고, 그냥 '학교'라는 배경 때문에 (스토리랑은 완전 다르지만)<프린세스 다이어리>도 떠올랐던 것 같다.
문장이 역시나 읽는데 조금 불편했지만,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니 제법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보던 미국의 멋진 고등학교를 상상하며, 시 같은 대사를 읊는 엉뚱한 미국 청년들도 떠올려보고... 연기학원 다니는 배우지망생 외국오빠(?)도 떠올려보고 혼자 영화 한편 찍으며 읽은 듯하다.
아, 근데 생각해보니 항상 '성 스캔들' 문제를 학생들 간의 가십거리로 다소 유쾌(?)-당사자들은 골칫거리지만-하게 그려내는 건 외국 하이틴 영화들인 것 같다. 우리나라야 그런 사건 다뤘다간 학교 위원회 열리고 학생이 전학가거나, 얼굴도 못다니고 다녀서 괴로워하거나...등으로 엄청 어둡게 그려질텐데. 여긴 당사자가 유야무야 생활하는 것도 참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했다. 그런 점은 또, 약간 다른 문화적 배경이 작용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공교롭게도 남자주인공인 스탠리가 이솔드가 사귀는 와중에 연극 소재로 이솔드의 언니 사건을 다루는데, 하필 그 직전까지 이솔드의 가족을 몰랐던 스탠리로써는 발표를 앞두고 패닉에 빠지고, 참 이런 드라마틱한 전개라니,
(근데 둘이 언제 사귀기 시작한 건지 의문이었다. 뭔가 문맥상 둘이 자꾸 마주치는 부분들이 있어서 복선? 암시? 같은 것들이 중간중간 보이긴했는데, 갑자기 색소폰 쌤한테 사귀는 남자 있다고 해버리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한편 성소수자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는데,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수치심과 혼란으로 방황하면서도, 사랑을 얻고 싶은 소녀의 이야기가 참, 안타깝기도 했다. 역시 아직도 보는 시선이 영 유쾌하지 않은 탓인지... 솔직히 나라도 책으로야 편히 읽지 실제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어서.... 난감하겠다 싶었던 캐릭터였다.
처음의 진입장벽을 조금 버티면, 나름 하이틴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들고, 로맨스라기보다는 성장 드라마 장르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주로 학생들의 내면 이야기와 변화가 실려 있으니 말이다.
함축적인 표현이 다소 많이 다가와서 문맥을 잘 타야 할 것 같은데, 원래 외국 소설 잘 읽으신 분들이시라면 편히 읽으실 것 같기도 하고... ....
여튼, 그 나이 아이들의 혼란스런 정서와 발칙한 행동들이 귀엽고 공감가는 그런 작품이었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6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