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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혐오사회>_카롤린 엠케
출판사_다산초당(다산북스)

<혐오사회>는 전 세계 분쟁지역을 취재해온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가 혐오와 증오, 차별에 대한 사건을 돌아보고 정리한 책으로, 이 시대에 자리하고 있는 '혐오와 증오' 등의 본질적 원인과 위험에 대한 사색과 고찰이 담긴 책이었다.

1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외적 혹은 내적 영향에 따른 우리의 인지 방식에 따라 얼마나 차별적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사례와 함께 살펴본다. 2장 <동질성-본연성-순수성>은 전체, 집단, 무리 등을 둘러싼 특정 관념과 이데올로기 등으로 얼마나 많은 차별과 증오, 혐오가 자행되고 있었는지를 돌아본다.
끝으로 <순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찬미>에서는 이 증오 사회를 형성하는 사회의 다양한 메커니즘 속에서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대상을 마주할 것을 이야기 한다.
"모든 정의는 말과 함께 시작되지만 모든 말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자크 데리다
"정확히 관찰한다는 것은 낱낱이 해부한다는 것이다."-헤르타 뮐러
책의 맨 앞장에 실린 두 마디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사회 현상은 '말'로 전달된다. 모든 매체가 '언어'로 표현된다. 그런데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모든 매체가 같은 사건을 같은 시선으로 보고,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보수성향, 진보성향에 따라, 사회적 성격이 강한, 경제적 성격이 강한.... 등등의 성격에 따라 신문 기사도 같은 사건을 조금씩 다르게 다룬다. 모두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때문에 한가지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자체적으로 우리 눈을 가려버리는 우를 범하는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확한 관찰을 하려면, 다양한 시선에서 뜯어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나 사회가 다원화되고 그 구조가 복잡해지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책에 따르면 사회에 자리한 '혐오' 역시 같은 원리다. 결론부터 말하면, 책을 읽고 바로 든 생각은 '혐오'란 사회적 부산물이라는 것이었다.
* 증오와 폭력을 고찰할 때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도 함께 고찰해야 한다. 이 말은 증오와 폭력이 번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전 정당화와 사후 동의의 과정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사례들에서 증오나 폭력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다양한 원천을 고찰한다는 것은, 증오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엄연한 사실에 근거한다는 잘못된 통념에 맞서는 일이다.
책은 신선하면서도 날카롭게 다가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민감한 소재인데, 이렇게 주제로 다룬 글은 찾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혐, 여혐'이라든지, 특정 대상에 대한 '혐'이 어찌나 많은지. 한편으로는 경기도 안 풀리고, 분노 표출이 특정 대상으로 유도되는 걸까. 사는 게 힘들다는 방증인가 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하고는 있었지만, 지나친 폭력과 범죄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면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책에는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혐오와 증오'들을 다루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저자가 독일분이시다보니 유럽 사회의 이슈인 '이주민/피난민'문제부터 인종 문제,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어떻게 유도되고 자행되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 문제는 비단 유럽 사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미 겉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세계화'의 홍수에서 우리가 곧 직면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꼭 그 이유뿐만이 아니라도, 책은 특정 대상에 대한 증오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잘못 되었다면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지....와 같이,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
* 분노에는 언제나 그것이 발생하고 표명되는 특정한 맥락이 있다. 증오의 근거로 언급되는 이유들, 어떤 집단이 증오해야 '마땅하다'며 갖다 대는 이유들은 누군가가 구체적인 역사적 문화적 틀 안에서 산출해낸 것일 수밖에 없다.
가진 것이라곤 비밀봉지와 배낭에 든 것밖에 없는 피난민들은 클라우니츠 사건 영상에서 '폭도'가 되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 경찰들의 폭력적인 수사를 받다가 초크로 죽은 남자도 있다.
이런 증오와 혐오. 그리고 폭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의, 수호'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단의 이데올로기, 안정을 지키기 위해 증오와 폭력은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날카롭게 다가왔다.
2장에서 언급하는 '동질성-본연성-순수성'에서 그 내용은 더 자세히 나타난다. 민족, 국가라는 공동체라는 이름의 '동질성'과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성별에 따른 '본원성', 집단의 이데올로기 외의 다른 것에 물들지 않았다는 '순수성'. 이러한 특성들에 따라, 집단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념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대상을 향해 부정적인 감정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메커니즘에는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고.
뉴스에서 보도되는 피난민이나, 강압적 수사로 죽은 흑인들 이야기, 배척받는 성소수자 기사를 보면 첫 번째는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이 우연히 일지도 모를, 몇 사건이 더 인상적으로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혐오'까지보다도, '무섭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결국 나는 저 메커니즘에 무의식 중에 동조하고 있는 셈이었을거다.
* 타인의 고통은 쉽게 간과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고통을 가할 수도 있고, 이미 겪고 있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으며 그러면서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배척당하는 그들을 보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불쌍하다'라고만 생각한 것은 자기 기만이었다. 이미 '무섭다'라는 눈가리개를 쓰고 바라보면서 '힘들겠다.'라니, 말이다. 아마 지금 당장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면, 주저하거나, '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라고 둘러 댈것만 같다. 정말 한심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책은 우리가 이 문제를 수동적으로 바라보고, 세속적인 잣대에 맞춰 흘러가서는 안된다고 계속 역설한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바로 다음 문장에서 찾았다.
*장 뤽 낭시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모든 개별 존재는 유일무이하며, 따라서 다른 모두와 함께, 다른 모두의 안에서 모두가 다 유일무이하다." 이에 따르면 단수는 이기적인 개별자가 아니다. 그리고 복수도 단순히 '나의 추가나 병존이'아니다.
개인성은 서로 함께하는 관계, 서로에 대한 관계 안에서만 인식될 수 있고 실현될 수 있다. 누구나 혼자서는 독특한 것이 아니라 단지 혼자일 뿐이다.
결국 사회, 집단 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나의 '개인성'도 존재할 수 없다. 책을 다 읽고난 후, 이 명제가 머릿속에 남았다. 근거 없이 타인을 증오하고, 혐오하고, 배척해내는 것은, 결국 내가 설 자리 또한 배척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이제 우리가 해야할 것은, 이러한 다원적인 사회를 존중하면서, 그 안에서 일어날 갈등을 철저히 분석해 보며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갈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평가하며, 어떤 이유에 의미가 있는지,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부인될 것인지, 그래서 금지한다면 어떤 권리로 가능한지 등등 .....에 대해 분석해보아야 한다.
*
책은 참 예리하면서도, 아이러니하고, 적나라해서 어려운 용어와 이해하기 힘든 관념적인 말들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술술 읽혀나갔다.
신기한건, 특정 대상에 대한 증오와 혐오라는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고, 이 사회에 표출되는지. 그 문제에 대한 본질을 파헤치다보면, 집단의 일원으로 자리한 자신의 실존 문제를 직시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나란 존재의 한 개성을 존중받으려면 결국, 사회가 필요하고, 그 사회를 이루는 것은 다원성이다. 하나의 신화, 집단 사고, 이데올로기로 통일된 단체 안에서, 개성을 인정받고 살기 위해 결국은 집단 내 다양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대상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 고통을 배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건 아닌지. 다른 개성을 지닌 그들을 정당한 권리로 혐오하고 있는 것인지를 돌이켜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앞에서 본 것처럼, 정의를 정의라고 믿지 않고, 미디어가 보여주는 현상을 한 각도로만 살펴보지 말고, 증오의 감정이 올바르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되새김해봐야 할 것이다. 낱낱히 해부해보아야 한다.
또한, 타인을 이해한다는 섣부른 판단보다는 타인의 고통도 나의 고통과 같다는 생각으로, 그들이 맹목적으로 받는 혐오, 폭력에 대한 고통을 생각하며 이 감정을 돌아보고, 올바르게 표출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6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