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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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힘>은 40년 시인 인생을 살아온 장석주 시인이 풀어나가는 시와 시인의 삶에 대한 고찰이 담긴 책이었다.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시인이 되는 건 별로 좋은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p.13 <그림자들의 노래>

첫 장, 첫 문장이다. 40년 시인의 삶을 걸어온 시인의 첫마디는 다소 쓸쓸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다보면 시인이랑 가장 고귀한 업이면서도 가장 낮은 곳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관조하는 관찰자 같다는 생각들이 많이 들고는 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길이란 것을 알지만, 그 길을 걸어온 자신의 사명에 대한 자부심과 그간의 고뇌가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시인이 되려면 저보다 앞선 시인들의 시를 과식하고 폭식을 일삼더라도 너끈히 소화해 낼 수 있는 튼튼한 위장을 가져야 한다. ........ 시는 단지 의미의 수사학적인 응고물이 아니다. 시는 말의 춤, 사유의 무늬, 생명의 약동이다. 시는 수천 밤의 고독과 술병을 집약하고, 세계를 향해 뻗치는 감각의 촉수들은 천지 만물의 생리와 섭리를 더듬는다. - p.15 <그림자들의 노래>

화자는 계속해서 한 편의 시를 직조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고, 끊임없이 고뇌하며, 그렇게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몸에서 뻗어나오는 시를 쓰라고 한다. 시와 은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이기 때문에 다소 비유적인 문장들이 많이 나와서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하나의 대상을 보더라도 그것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 꾸준히 고뇌하고, 그 응고 끝에 나오는 글이라야 된다는 말로 이해되었다.

은유는 다른 무엇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함이 아니라, 즉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것 자체로 온전하게 있기 위함이다. 은유는 맥락이 아니라 끊김이고, 그냥 끊김이 아니라 맥락의 찰나적 출현이다. 이것이야말로 "의미의 창조적 생산"이다.
한마디로 은유는 시적인 것의 번뜩임, 시적인 것의 불꽃이다. -p.36 <은유의 깊이, 은유의 광휘>

은유란 '실제의 본질'에 관찰자 혹은 창조자의 직관을 덧댄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은유는 대상의 삼킴이고, 거울이 아닌 거울에 비친 상이라고 했다. 은유는 본체와 똑 닮은 것을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현상하는 표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플라톤의 이데아가 떠올랐다. 시인이 은유라는 연금술을 통해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본체를 모사해내는 연금술사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은유의 힘은 본체와 가장 가깝고도 먼 모사 대상 사이 공백에 시인의 철학이 채워져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이육사의 「절정」이라는 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쓰인 단락 중 일부이다.

칼날이나 강철은 무른 마음에 견줘 얼마나 단단한 강밀도를 가진 것들인가! 이 광물성 이미지의 연쇄는 강밀도와 더불어 시적인 것이 뿜어내는 날카로운 번뜩임, 바로 은유의 광휘를 보여준다. 이것은 구체적 실재를 가리키기보다는 은유의 맥락에서 그 의미가 도렷해진다. -p.35~36 <은유의 깊이, 은유의 광휘>

언어에 담긴 함축성과 그로 인해 연상되는 이미지의 연쇄작용, 그리고 잘 직조된 맥락이 은유가 가진 힘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시인과 은유가 발굴해낸 '언어'라는 원석의 위대함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시에서 말들은 감각들의 통역관이다. 말은 이 세계에 대한 모호한 느낌들을 자명한 것으로 통역한다. -p. 99
말은 거울이다. 그것은 삶을, 삶의 세부 항목들을 빠짐없이 비춘다. -p.100
사람의 기억은 말의 집적이다. 그 세계에서는 삶의 궤적, 경험한 모든 것들, 어떤 찰나의 풍경, 심지어는 이미지조차 말이다. -p.101 <말은 감각들의 통역관>

그 말은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이름 붙은 존재들로 둘러싸인 세상에 살면서 시인들 혹은 우리들은 대상을 조망하고, 때로는 세심하게 관찰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문장을 직조해낸다.

'말의 가장 원초적인 존재 형태는 '이름들'이다.-p.117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를 환대함이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p.128  <이름들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시 쓰기로 살기 힘든 시대에서 시인이란 직업은 고된 일이지만, 숭고한 일처럼 보인다. 시인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책 곳곳에 묻어났다. 

시든, 산문이든, 어떤 형태의 글이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세상을 언어로 바라보고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뛰어난 '관찰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의 대상도, 평범한 현상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그것이 담고 있는 본질을 연구하는 사람, 초승달이 반달이되고 다시 보름달이 되는 그 과정들 하나하나를 눈에 스캔하는 사람. 그렇게 인고의 끝에 오는 직관과 통찰에서 결실을 맺어내는 세심한 관찰자.

언어와 상징의 힘을 빌어 인간의 다양한 감성부터 삶, 그리고 고된 역사 속에서 투철한 희생정신과 투지를 노래한 숱한 문장들이 떠올랐다.

비유적 문장들 때문에 다소 난해하고 어려운 문장들도 많았지만, 시인에 대한 꿈이 있는 사람,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6'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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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나 스토리콜렉터 56
마리사 마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북로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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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나_마리사 마이어
출판사_북로드

 




<레바나>는 달의 지배자로 지구 정복을 꿈꾼 레바나 여왕의 성장기로,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의 프리퀄 스토리였다.

루나 왕국의 둘째 공주였던 그녀는 왕실 근위병 에브렛에 대한 사랑을 남몰래 키우고 있었다. 언니 채너리의 조롱과 왕실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도 그 진실된 마음 만큼은 지키고 싶어했다.

그러던 어느날, 출산 후 에브렛의 아내 솔스티스는 결국 합병증으로 죽고 만다. 그러나 레바나는 일말의 동정심도 느낄 수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무감했던 그녀였다. 그저 아내를 잃고 슬퍼하는 에브렛의 상황이 자신에게 기회라고 생각했다.

결국 에브렛의 눈을 마법을 통해 가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이용했다. 결국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면서, 그의 배려를, 우정을 철저히 이용하고 사랑을 기만했다. 레바나는 에브렛이 그의 아내 '솔스티스'를 애타게 찾는 속삭임을 들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


"하지만 이게 당신이 원하는 거잖아요. 아닌가요? 이렇게하면 둘 다 가질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될 거고, 당신 아이의 엄마가 될 거예요.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릴 거예요. 그러면 나와 당신과 완벽한 우리 가족만 남게 되겠지요."

"그만하세요! ....제발, 제발 원래 공주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주세요. 공주님은 모르세요. 제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결국 레바나는 마법으로 그가 사랑했던 아내의 모습을 하고, 정신을 조종하며 그에게 안겼다. 껍데기 뿐인 사랑이 남긴 것은 결국 파국이었다레바나는 자신의 마음을 진실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뒤틀린 사랑의 전말은 결국 10여 년의 허망함을 안겼다.

 


"틀렸어요. 공주님. 공주님이 설명하는 게 뭔지 모르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

"당신이 나한테 결혼하자고 했을 때에야 비로소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달았소. 만약 내가 저항했다면, 정말로 당신에게 저항했다면 당신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소. 당신은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데 아주 능한 사람이오. 그때도 이미 그랬지. ........ 그리고 만약 내가 계속해서 저항한다면 당신이 혹시..... 뭔가 경솔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소."


비틀린 사랑이 눈을 덮었던 십 대의 모습을 지나 마주한 껍데기의 실체는 그녀를 새로운 욕구에 잠식시켜갔다.



내가 여왕이다.
죄책감과 참혹함과 그 끔찍한 냄새의 기억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여왕이다.


언니 채너리의 죽음을 기점으로 이는 더욱 심화된다. 정당한 왕위 계승자인 자신의 조카를 없애고 왕비가 되고자 했던 욕구는 지구에 대한 지배야욕으로 물들어간다. 지구인들을 굴복시킬 바이러스와 항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한편, 새로운 반인반수의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하기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 십대 시절 사랑의 열병이 만든 껍데기를 자신이 부서버렸다.


 
사랑은 정복이야. 사랑은 전쟁이라고.
'이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야.'


레바나의 이야기는 뒤틀린 애정 욕구가 물리적 힘을 지녔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비극이었다. 또, 이 악녀의 탄생 비화에는 애정 결핍과 언니로부터의 멸시와 학대, 흉측하게 변해버린 외모가 가져온 일종의 열등이 언뜻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일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잔혹한 성정과 무의식중에 잠식하고 있던 야망이 없었다면, 혹은 그것을 실현할 힘이 없었다면, 어쩌면 갑자기 찾아온 첫사랑에 설레며 울먹이고 당황하는 순수한 열여섯 소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은 나쁜 건 아니니까.


레바나는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한 소녀를 위해 울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직도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는 소녀를 위해. 에브렛이 자신을,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확신했지만 그 확신이 어떤 느낌이었는지조차 이제는 기억할 수 없는 그 소녀를 위해.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악행은 용서받을 수 없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강요해서는 안 됐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건 더더욱 안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항상 마법으로 가리고 본 모습을 가리고 다니는 모습에서 일종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대한 자기방어적 모습이 보여 약간 불쌍하기도 했다. 본 시리즈에서는 어떻게 그려지는 지 모르겠지만, 10대 레바나의 마법이 내게 준 메시지는 '불신과 열등감, 공포'였다.


어렸을 때의 그 상처와 주변의 수군거림 때문에 가리는 것에 더 익숙해져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외관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그 때문인지, 끝끝내 사랑은 주지 못했지만, 그녀에게 '우정'은 주고 싶었던 에브렛이라는 캐릭터가 더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 같다. 레바나가 잘못된 마음으로 방황할 때, 공주라는 지위와 어쩌면 그가 얻었을지도 모를 권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마음을 간직하고 레바나가 그녀 자신의 감정을 마주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 물론 끝까지 전해지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었어도, 그녀의 마법 때문에 함께 잠들고 말았던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사랑을 지켰던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브렛은 레바나에게 진실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게 해줄 소중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닿지 않은 마음은 그들을 잔혹 동화로 이끌어갔다. 레바나는 결국 다른 모양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명명했다.
'정복과 전쟁'이라고 일축한 한마디에서 그녀가 어떤 사랑을 했는지, 어떤 사랑을 할 것인지에 대한 암시가 느껴진다. 죽은 에브렛의 아내 솔스티스의 모습으로 이미 고인을 능욕하고 그의 사랑을 짓밟았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잔인하면서도 가여운 말이었다.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다.


*
권선징악이 소재의 일부인 이야기에서 악인의 탄생 비화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지금까지는 주인공의 행태에 집중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왔다. 그게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뱉는 대사는 멋지다, 시련을 이겨내는 모습을 통해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그리고 악인이 처벌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감동을 느낀다.

하지만, 요즘에는 매력적인 악역이 주는 메시지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신을 돌아볼 때에도 나는 항상 착한 생각만 했나? 정말 한번도 나쁜 욕심을 내본 적이 없어? 라는 생각들.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는 욕심, 사랑받고 싶은 마음, 하필 연인이 있는 상대에게 빠져서는 우울하다가도, 저 사람이 헤어지고 나한테 오면 안되나?하는 그런 나쁜 마음들.


악행은 당연히 나쁘다. 그런데 그들 만큼이나 또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모습에는 한번쯤 인간이라면 가져볼 법한 온갖 욕망 덩어리가 응축되어 있다. 그래서 잔혹하지만 한편으로는 매혹적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레바나에서는 '매혹'적인 것보다는 약간의 연민이 느껴져서 지금도 당혹스럽지만.... (이건 10대 레바나 한정). 그렇기 때문에 본 시리즈의 레바나가 어떻게 그려져있는지 더욱 궁금하다.

거기서는 완전 잔인한 폭군으로만 나오려나.
무튼 언제나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참 슬프다.

일반 주인공과 악인의 차이는 껍데기라도 가지나 안가지냐의 차이인가.....라는 헛생각도 살짝 들고. 레바나가 만약 짝사랑으로 끝내고 에브렛에 대한 마음을 접었으면 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책은 얇기도 얇았지만, 가독성이 좋아 술술 읽혀들어갔다. 웃기게도 외전을 보고 본 시리즈를 읽어보려고 생각했는데, 포인트 야금야금 모아서 한 편씩 볼 것 같다. 프리퀄 작품이었지만 본 편에 나올 소재들이 약간 상상되서랄까. '바이러스, 항체, 반인반수 군대, 언뜻 보이는 첨단 기기들과 루나인들의 마법, 지구 연맹' ......거기에 로맨스까지!


약간 스포당한 느낌이지만, 책도 잘 읽히고, 동화를 모티프로 이렇게 구성했다는 것도 너무너무 신기해서 엄청난 자극이 될 것 같다. 달에 한 권 정도씩 선물주는 셈 치고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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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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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_카롤린 엠케
출판사_다산초당(다산북스)



 

<혐오사회>는  전 세계 분쟁지역을 취재해온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가 혐오와 증오, 차별에 대한 사건을 돌아보고 정리한 책으로, 이 시대에 자리하고 있는 '혐오와 증오' 등의 본질적 원인과 위험에 대한 사색과 고찰이 담긴 책이었다.  


 


 

1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외적 혹은 내적 영향에 따른 우리의 인지 방식에 따라 얼마나 차별적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사례와 함께 살펴본다. 2장 <동질성-본연성-순수성>은 전체, 집단, 무리 등을 둘러싼 특정 관념과 이데올로기 등으로 얼마나 많은 차별과 증오, 혐오가 자행되고 있었는지를 돌아본다.

끝으로 <순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찬미>에서는 이 증오 사회를 형성하는 사회의 다양한 메커니즘 속에서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대상을 마주할 것을 이야기 한다. 
 


 



"모든 정의는 말과 함께 시작되지만 모든 말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자크 데리
"정확히 관찰한다는 것은 낱낱이 해부한다는 것이다."-헤르타 뮐러
 
책의 맨 앞장에 실린 두 마디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사회 현상은 '말'로 전달된다. 모든 매체가 '언어'로 표현된다. 그런데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모든 매체가 같은 사건을 같은 시선으로 보고,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보수성향, 진보성향에 따라, 사회적 성격이 강한, 경제적 성격이 강한.... 등등의 성격에 따라 신문 기사도 같은 사건을 조금씩 다르게 다룬다. 모두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때문에 한가지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자체적으로 우리 눈을 가려버리는 우를 범하는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확한 관찰을 하려면, 다양한 시선에서 뜯어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나 사회가 다원화되고 그 구조가 복잡해지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책에 따르면 사회에 자리한 '혐오' 역시 같은 원리다. 결론부터 말하면, 책을 읽고 바로 든 생각은 '혐오'란 사회적 부산물이라는 것이었다.  


* 증오와 폭력을 고찰할 때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도 함께 고찰해야 한다. 이 말은 증오와 폭력이 번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전 정당화와 사후 동의의 과정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사례들에서 증오나 폭력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다양한 원천을 고찰한다는 것은, 증오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엄연한 사실에 근거한다는 잘못된 통념에 맞서는 일이다.


책은 신선하면서도 날카롭게 다가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민감한 소재인데, 이렇게 주제로 다룬 글은 찾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혐, 여혐'이라든지, 특정 대상에 대한 '혐'이 어찌나 많은지. 한편으로는 경기도 안 풀리고, 분노 표출이 특정 대상으로 유도되는 걸까. 사는 게 힘들다는 방증인가 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하고는 있었지만, 지나친 폭력과 범죄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면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책에는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혐오와 증오'들을 다루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저자가 독일분이시다보니 유럽 사회의 이슈인 '이주민/피난민'문제부터 인종 문제,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어떻게 유도되고 자행되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 문제는 비단 유럽 사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미 겉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세계화'의 홍수에서 우리가 곧 직면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꼭 그 이유뿐만이 아니라도, 책은 특정 대상에 대한 증오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잘못 되었다면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지....와 같이,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  
 

* 분노에는 언제나 그것이 발생하고 표명되는 특정한 맥락이 있다. 증오의 근거로 언급되는 이유들, 어떤 집단이 증오해야 '마땅하다'며 갖다 대는 이유들은 누군가가 구체적인 역사적 문화적 틀 안에서 산출해낸 것일 수밖에 없다.


가진 것이라곤 비밀봉지와 배낭에 든 것밖에 없는 피난민들은 클라우니츠 사건 영상에서 '폭도'가 되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 경찰들의 폭력적인 수사를 받다가 초크로 죽은 남자도 있다.

이런 증오와 혐오. 그리고 폭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의, 수호'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단의 이데올로기, 안정을 지키기 위해 증오와 폭력은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날카롭게 다가왔다.

2장에서 언급하는 '동질성-본연성-순수성'에서 그 내용은 더 자세히 나타난다. 민족, 국가라는 공동체라는 이름의 '동질성'과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성별에 따른 '본원성', 집단의 이데올로기 외의 다른 것에 물들지 않았다는 '순수성'. 이러한 특성들에 따라, 집단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념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대상을 향해 부정적인 감정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메커니즘에는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고.

 
뉴스에서 보도되는 피난민이나, 강압적 수사로 죽은 흑인들 이야기, 배척받는 성소수자 기사를 보면 첫 번째는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이 우연히 일지도 모를, 몇 사건이 더 인상적으로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혐오'까지보다도, '무섭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결국 나는 저 메커니즘에 무의식 중에 동조하고 있는 셈이었을거다.


* 타인의 고통은 쉽게 간과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고통을 가할 수도 있고, 이미 겪고 있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으며 그러면서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배척당하는 그들을 보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불쌍하다'라고만 생각한 것은 자기 기만이었다. 이미 '무섭다'라는 눈가리개를 쓰고 바라보면서 '힘들겠다.'라니, 말이다. 아마 지금 당장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면, 주저하거나, '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라고 둘러 댈것만 같다. 정말 한심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책은 우리가 이 문제를 수동적으로 바라보고, 세속적인 잣대에 맞춰 흘러가서는 안된다고 계속 역설한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바로 다음 문장에서 찾았다.

*장 뤽 낭시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모든 개별 존재는 유일무이하며, 따라서 다른 모두와 함께, 다른 모두의 안에서 모두가 다 유일무이하다." 이에 따르면 단수는 이기적인 개별자가 아니다. 그리고 복수도 단순히 '나의 추가나 병존이'아니다.
개인성은 서로 함께하는 관계, 서로에 대한 관계 안에서만 인식될 수 있고 실현될 수 있다. 누구나 혼자서는 독특한 것이 아니라 단지 혼자일 뿐이다. 


결국 사회, 집단 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나의 '개인성'도 존재할 수 없다. 책을 다 읽고난 후, 이 명제가 머릿속에 남았다. 근거 없이 타인을 증오하고, 혐오하고, 배척해내는 것은, 결국 내가 설 자리 또한 배척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이제 우리가 해야할 것은, 이러한 다원적인 사회를 존중하면서, 그 안에서 일어날 갈등을 철저히 분석해 보며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갈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평가하며, 어떤 이유에 의미가 있는지,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부인될 것인지, 그래서 금지한다면 어떤 권리로 가능한지 등등 .....에 대해 분석해보아야 한다.


*
책은 참 예리하면서도, 아이러니하고, 적나라해서 어려운 용어와 이해하기 힘든 관념적인 말들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술술 읽혀나갔다.

신기한건, 특정 대상에 대한 증오와 혐오라는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고, 이 사회에 표출되는지. 그 문제에 대한 본질을 파헤치다보면, 집단의 일원으로 자리한 자신의 실존 문제를 직시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나란 존재의 한 개성을 존중받으려면 결국, 사회가 필요하고, 그 사회를 이루는 것은 다원성이다. 하나의 신화, 집단 사고, 이데올로기로 통일된 단체 안에서, 개성을 인정받고 살기 위해 결국은 집단 내 다양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대상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 고통을 배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건 아닌지. 다른 개성을 지닌 그들을 정당한 권리로 혐오하고 있는 것인지를 돌이켜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앞에서 본 것처럼, 정의를 정의라고 믿지 않고, 미디어가 보여주는 현상을 한 각도로만 살펴보지 말고, 증오의 감정이 올바르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되새김해봐야 할 것이다. 낱낱히 해부해보아야 한다.

또한, 타인을 이해한다는 섣부른 판단보다는 타인의 고통도 나의 고통과 같다는 생각으로, 그들이 맹목적으로 받는 혐오, 폭력에 대한 고통을 생각하며 이 감정을 돌아보고, 올바르게 표출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6'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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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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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Behind Doors)_B.A. 패리스
출판사_아르테



"나를 두려워하는 너의 눈빛, 그걸 계속 보고 싶어. 영원히."

완벽한 남편, 완벽한 결혼, 그리고 완벽한 거짓말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남편은 공포의 냄새를 즐기는 사이코패스였다!



<줄거리>

잭 엔젤은 완벽한 남자다. 기본적으로 신사였으며, 아내에 대한 사랑과 다정함이 넘치는 사람이다. 게다가 '매 맞는 여성의 수호자'라는 이미지의 가정 폭력을 전문으로하는 승률 좋고 인자한 느낌의 변호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남편을 둔 그레이스 앤젤은 시종일관 긴장의 연속이다. 행여 자신이 실수를 하면 어쩌나하며, 남편의 눈치를 본다. 지인들의 눈에 비치는 아내를 바라보는 잭의 모습은 꿀이 뚝뚝 떨어지지만, 그레이스는 그 모습이 두렵고 가증스럽다.

완벽하고 성인군자 같았던 남자. 자신만을 위해 하늘의 별도 달도 따다 줄 것 같았던 로맨티스트는 알고보니 계획적으로 제게 접근한 사이코패스였다.

한없이 다정하던 그녀의 남자는 결혼을 기점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 네가 나한테 영혼을 팔아넘겼다는 걸 모르겠어? 밀리의 영혼도 마찬가지고. 장난이 아냐. ..... 너무 늦었어. 완전히 늦었지."


잭은 타인을 공포의 상황에 몰아 넣고 공포에 떠는 그 모습에서 희열을 찾는 남자. 물리적인 폭력은 행사하지 않지만 정신적 폭력을 가하며 흥분하는 가학성 사이코 패스였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그레이스의 여동생이자 다운증후군을 지닌 밀리였다.

부모님도 방치한 여동생을 친자식처럼 키워 온 그레이스였다. 절대 제 여동생을 그의 손아귀에 넘길 수 없었다.

그의 계획을 안 순간부터 잭과 그레이스의 심리전이 시작됐다.

"난 절대 당신을 떠나지 않아, 하지만 죽일 수는 있지."



<리뷰>

<비하인드 도어>는 완벽한 성품을 지닌 가정폭력 변호사를 가장한 가학성 사이코패스 잭 앤젤과 그의 아내 그레이스 앤젤의 숨막히는 심리 추릴러 소설이었다.


폭행, 살인과 같은 물리적 폭력 행사 말고도 심리적 폭력이 행사하는 긴장감도 상당하다는 걸 실감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진행된다. 현재에서는 앤젤 부부와 지인들의 소소하고 단란한 모임으로 시작된다. 그 속에서 그레이스는 한없이 자상한 남편 덕분에 부러움을 몸소 받고 있지만,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이 이질적인 모습에 대한 의문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촘촘한 전개 속에서 풀려나간다. 세상에 둘도 없는 로맨티스트에 완벽한 남자인 줄만 알았던 그가 알고보니 타인을 공포에 몰아넣고 즐기는 사이코패스라니. 완벽히 다른 두 모습에 정말 소름이 돋았다.

거기에 더해, 그레이스가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하면, 한 발 먼저 나가서 도망갈테면 도망가보라며 조소를 날린다. 이미 그레이스는 잭의 판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이게 참 답답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죄어대서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든다.

감금된 사람은 그레이스인데, 꼭 내가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레이스가 머리를 쓰면, 잭이 이미 그녀의 생각을 다 읽고 있다. 심지어 해보라는 듯, 느슨하게 함정을 파놓고 풀어놓기도 한다. 그 모습이 마치, 지루함을 달래려고 제 먹이를 놓아주는 척 풀어놓고 지켜보는 맹수 같다. 달아날테면 달아나 봐, 같은 느낌.


"어디 해봐. 도망쳐. 저기 저 사람한테 말해봐. 아니면 저 사람은 어때? 내가 너를 가둬두고 있다고. 내가 괴물이고 살인자라고 해봐. 하지만 그 전에 주변을 봐. 내가 데려온 이 아름다운 식당을 봐. 그리고 생각을 해보라고. 지금 먹고 있는 맛있는 음식과 훌륭한 와인을.
네가 포로같아 보여? 내가 괴물, 살인자로 보여? 그럴리가 없지. 그래도 계속하겠다면, 말리지 않을게. 재미를 좀 보고 싶기도 하고."-p.145


바로 직전에 읽었던 작품이 다소 거친 신체적 폭력을 다룬 이야기라서 이건 좀 수월하겠지 싶었는데, 심리적 압박감이 주는 몰입이 상당하다.

누군가 나를 꿰뚫고 있다는 기분, 자신의 계획이 모두 허사로 돌아갈 때마다 느껴야했던 강력한 무력감과 낭패. 소중한 존재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상실감까지. 거기에, 너무나도 빈틈없는 잭 때문에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점까지 더해지니 정말 끝까지 긴장을 놓기 어렵다. 


"어디 있어, 그레이스?"

노래를 부르는 듯한 나지막한 잭의 속에서 책이 킁킁 냄새를 맡는 소리가 들렸다.

"음, 공포의 냄새, 너무 좋네."

하아 숨을 내쉬더니 그의 발소리가 자박자박 점점 가까워지자 나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 발소리가 멈춰 섰다. 온 신경을 귀에 집중시키고 있는데, 뺨에서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어흥!" 잭이 속삭였다. -p.175



와. 정말 이 부분은 순간 육두문자를 내뱉었던 대목이었다. 순간 놀라서.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의 기이한 행적은 계속 된다. 처음 정체가 밝혀지기 전, 그는 밀리를 위해 방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밀리가 좋아하는 색의 노란 방이 아니라 비밀의 빨간 방이었다. 잭의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고통의 방이자. 강제로 그레이스에게 잔혹한 그림을 그리게 만들고, 그 그림으로 채워넣은 공포의 방이었다.

꼭 시체가 주렁주렁 달렸던 푸른 수염 사내의 비밀의 방이 연상되어 오싹했다.

그리고 밀리가 그들의 집으로 들어오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었지만 영특한 밀리는 이상함을 눈치채고, 그레이스와 나름 모의를 하게 되는데! 크!! 정말 끝까지 예측하기 정말 힘들었다.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잭이 설마 연기하는 거 아니야? 몰래 도청하고 있는 거 아니야? 페이지 얼마 안 남았는데?! 하고 엄청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얇은 페이지 안에 짧고 굵게 심리적 긴장감을 맛볼 수 있도록 짜인 흥미로운 글이었다.


생각보다 잭의 본 모습이 늦게 나타나서,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그래서 정체가 밝혀졌을 때 소름이 더 컸던 것도 같다. 설마 관대하던 사람이 알고보니 엄청난 완벽주의자? 심각한 완벽주의자라서.... 그래서 숨막히는.... 심리물?.....하고 약간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잭은 끝까지 그레이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철저히 상반된 그의 모습이 충격을 준다. 여성들을 폭력으로부터 구해주는 가정폭력 변호사 일을 하며, 뒤로는 자신의 폭력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내를 감금하고 아내의 여동생까지 노리는 파렴치한 사이코패스라니. 말이다. 

그리고 또다른 형태로 내재하고 있는 인간의 가학성과 잔혹성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사람 좋은 모습을 하고 수많은, 그리고 잔인한 살인과 범죄를 저질렀던 몇 범죄자의 모습들이 스쳐가서 느닷없는 현실감도 소름에 한몫했다.

뒤에 옮긴이의 말처럼 갈수록 폭력이 교묘하고 기이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책의 원제 'Behind Closed Doors'는 '은밀히, 비공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말 힘있고 똑똑하고 잔인한 자들이 은밀하게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흥미를 위해 읽었던 장르소설에서 사회의 추악한 단면까지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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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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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과 천둥>은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배경으로 피아니스트들이 진출하며 벌이는 감동과 꿈의 무대를 그린 작품이었다.

 

각 국 오디션을 통과해 선발된 백 여 명의 젊은이들이 일본 요시가에에서 경연을 벌이며, 주로 마사루 카를로스, 에이덴 아야, 가자마 진, 다카시마 아카시라는 4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음악과 인생, 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작은 난데없이 나타난 천재소년 가자마 진으로 발칵 뒤집어진 콩쿠르 이야기가 흥미진진함을 자아낸다. 아무 경력도 없는, 양봉업자의 아들인 열 여섯 소년이, 세계적인 음악가이자 얼마 전 타계한 유지 폰 호프만이 사사한 제자라는 것이다. 것도 놀라운데 이 ‘꿀벌왕자’가 보여주는 독창적인 연주가 콩쿠르를 발칵 뒤집는다.

그의 연주를 놓고 심상평이 분분한 가운데, 그의 음악은 다른 피아니스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끊임없이 음악이라는 인생을 탐구하고 열망하는 촉매가 된다. 가자마의 연주가 보여주는 무섭도록 순수하고 천진한 선율이, 듣는 이로 하여금 내면에 감춰둔 순수함과 풋풋했던 때의 음악에 대한 동경과 이상을 끌어내버린다.

 

이미 스타처럼 각광받는 마사루는 가자마의 음악을 들으며 음악인으로써 더욱 성장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천재 소녀로 어린 나이에 성공했다가 꿈을 잃어버렸던 아이덴 아야는 그의 음악에 이끌려 다시 음악의 세계로 발을 내딛고, 현실과 타협하며 살았던 아카시는 가자마를 비롯해 그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는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꿈과 열정을 확인한다.

 

이야기는 콩쿠르라는 소재 덕분에 드라마틱하면서도, 청춘들의 성장 이야기가 담겨 있어 슬프면서도 흐뭇한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여기에 작품을 감싸고도는 음악과 그 감상들은 소설보다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까지 들게 해준다.

이들이 보여주는 음악은 인생이다. 인생은 다시 음악이 되고, 그 속에 녹아 있는 인생에는 찰나 같은 영원이 담겨 있다. 우주의 신비와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담겨있다.

 

각기 다른 개성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프로그램 구성은, 각자의 숙제 풀어나가는 여정을 암시하는 듯하다. 음악에 대해서 더 잘 알면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을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여튼, 주인공들이 선정한 음악을 듣다보면 그들의 개성과 고뇌...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잘 담아진 것 같아, 오묘하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책을 읽는 동안 문장 하나 하나가 들리지 않은 선율을 이루는 듯하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에 거닐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 속에서는 많은 음악가들이 초연을 재현해 내려고 끊임없이 음악을 해석하고, 심사위원들은 그것들을 평가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지나친 독창성은 선정적이고 이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드러나는 그 개성넘치는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음악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클래식 음악은 고전이라는 본질 아래 우리들 각자의 삶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한 권의 책을 통해서도 비슷하지만 수 천, 수 만가지 감상이 나오는 것처럼. 그리고 대자연과 광활한 우주 아래, 한낱 미물로 끊임없이 삶의 본질과 근원, 인생의 목표를 찾아 해매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본 서평은 현대문학(출판사)의 문학독후로 활동하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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