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비하인드 도어(Behind Doors)_B.A. 패리스
출판사_아르테
"나를 두려워하는 너의 눈빛, 그걸 계속 보고 싶어. 영원히."
완벽한 남편, 완벽한 결혼, 그리고 완벽한 거짓말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남편은 공포의 냄새를 즐기는 사이코패스였다!
<줄거리>
잭 엔젤은 완벽한 남자다. 기본적으로 신사였으며, 아내에 대한 사랑과 다정함이 넘치는 사람이다. 게다가 '매 맞는 여성의 수호자'라는 이미지의 가정 폭력을 전문으로하는 승률 좋고 인자한 느낌의 변호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남편을 둔 그레이스 앤젤은 시종일관 긴장의 연속이다. 행여 자신이 실수를 하면 어쩌나하며, 남편의 눈치를 본다. 지인들의 눈에 비치는 아내를 바라보는 잭의 모습은 꿀이 뚝뚝 떨어지지만, 그레이스는 그 모습이 두렵고 가증스럽다.
완벽하고 성인군자 같았던 남자. 자신만을 위해 하늘의 별도 달도 따다 줄 것 같았던 로맨티스트는 알고보니 계획적으로 제게 접근한 사이코패스였다.
한없이 다정하던 그녀의 남자는 결혼을 기점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 네가 나한테 영혼을 팔아넘겼다는 걸 모르겠어? 밀리의 영혼도 마찬가지고. 장난이 아냐. ..... 너무 늦었어. 완전히 늦었지."
잭은 타인을 공포의 상황에 몰아 넣고 공포에 떠는 그 모습에서 희열을 찾는 남자. 물리적인 폭력은 행사하지 않지만 정신적 폭력을 가하며 흥분하는 가학성 사이코 패스였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그레이스의 여동생이자 다운증후군을 지닌 밀리였다.
부모님도 방치한 여동생을 친자식처럼 키워 온 그레이스였다. 절대 제 여동생을 그의 손아귀에 넘길 수 없었다.
그의 계획을 안 순간부터 잭과 그레이스의 심리전이 시작됐다.
"난 절대 당신을 떠나지 않아, 하지만 죽일 수는 있지."
<리뷰>
<비하인드 도어>는 완벽한 성품을 지닌 가정폭력 변호사를 가장한 가학성 사이코패스 잭 앤젤과 그의 아내 그레이스 앤젤의 숨막히는 심리 추릴러 소설이었다.
폭행, 살인과 같은 물리적 폭력 행사 말고도 심리적 폭력이 행사하는 긴장감도 상당하다는 걸 실감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진행된다. 현재에서는 앤젤 부부와 지인들의 소소하고 단란한 모임으로 시작된다. 그 속에서 그레이스는 한없이 자상한 남편 덕분에 부러움을 몸소 받고 있지만,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이 이질적인 모습에 대한 의문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촘촘한 전개 속에서 풀려나간다. 세상에 둘도 없는 로맨티스트에 완벽한 남자인 줄만 알았던 그가 알고보니 타인을 공포에 몰아넣고 즐기는 사이코패스라니. 완벽히 다른 두 모습에 정말 소름이 돋았다.
거기에 더해, 그레이스가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하면, 한 발 먼저 나가서 도망갈테면 도망가보라며 조소를 날린다. 이미 그레이스는 잭의 판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이게 참 답답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죄어대서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든다.
감금된 사람은 그레이스인데, 꼭 내가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레이스가 머리를 쓰면, 잭이 이미 그녀의 생각을 다 읽고 있다. 심지어 해보라는 듯, 느슨하게 함정을 파놓고 풀어놓기도 한다. 그 모습이 마치, 지루함을 달래려고 제 먹이를 놓아주는 척 풀어놓고 지켜보는 맹수 같다. 달아날테면 달아나 봐, 같은 느낌.
"어디 해봐. 도망쳐. 저기 저 사람한테 말해봐. 아니면 저 사람은 어때? 내가 너를 가둬두고 있다고. 내가 괴물이고 살인자라고 해봐. 하지만 그 전에 주변을 봐. 내가 데려온 이 아름다운 식당을 봐. 그리고 생각을 해보라고. 지금 먹고 있는 맛있는 음식과 훌륭한 와인을.
네가 포로같아 보여? 내가 괴물, 살인자로 보여? 그럴리가 없지. 그래도 계속하겠다면, 말리지 않을게. 재미를 좀 보고 싶기도 하고."-p.145
바로 직전에 읽었던 작품이 다소 거친 신체적 폭력을 다룬 이야기라서 이건 좀 수월하겠지 싶었는데, 심리적 압박감이 주는 몰입이 상당하다.
누군가 나를 꿰뚫고 있다는 기분, 자신의 계획이 모두 허사로 돌아갈 때마다 느껴야했던 강력한 무력감과 낭패. 소중한 존재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상실감까지. 거기에, 너무나도 빈틈없는 잭 때문에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점까지 더해지니 정말 끝까지 긴장을 놓기 어렵다.
"어디 있어, 그레이스?"
노래를 부르는 듯한 나지막한 잭의 속에서 책이 킁킁 냄새를 맡는 소리가 들렸다.
"음, 공포의 냄새, 너무 좋네."
하아 숨을 내쉬더니 그의 발소리가 자박자박 점점 가까워지자 나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 발소리가 멈춰 섰다. 온 신경을 귀에 집중시키고 있는데, 뺨에서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어흥!" 잭이 속삭였다. -p.175
와. 정말 이 부분은 순간 육두문자를 내뱉었던 대목이었다. 순간 놀라서.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의 기이한 행적은 계속 된다. 처음 정체가 밝혀지기 전, 그는 밀리를 위해 방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밀리가 좋아하는 색의 노란 방이 아니라 비밀의 빨간 방이었다. 잭의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고통의 방이자. 강제로 그레이스에게 잔혹한 그림을 그리게 만들고, 그 그림으로 채워넣은 공포의 방이었다.
꼭 시체가 주렁주렁 달렸던 푸른 수염 사내의 비밀의 방이 연상되어 오싹했다.
그리고 밀리가 그들의 집으로 들어오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었지만 영특한 밀리는 이상함을 눈치채고, 그레이스와 나름 모의를 하게 되는데! 크!! 정말 끝까지 예측하기 정말 힘들었다.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잭이 설마 연기하는 거 아니야? 몰래 도청하고 있는 거 아니야? 페이지 얼마 안 남았는데?! 하고 엄청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얇은 페이지 안에 짧고 굵게 심리적 긴장감을 맛볼 수 있도록 짜인 흥미로운 글이었다.
생각보다 잭의 본 모습이 늦게 나타나서,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그래서 정체가 밝혀졌을 때 소름이 더 컸던 것도 같다. 설마 관대하던 사람이 알고보니 엄청난 완벽주의자? 심각한 완벽주의자라서.... 그래서 숨막히는.... 심리물?.....하고 약간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잭은 끝까지 그레이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철저히 상반된 그의 모습이 충격을 준다. 여성들을 폭력으로부터 구해주는 가정폭력 변호사 일을 하며, 뒤로는 자신의 폭력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내를 감금하고 아내의 여동생까지 노리는 파렴치한 사이코패스라니. 말이다.
그리고 또다른 형태로 내재하고 있는 인간의 가학성과 잔혹성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사람 좋은 모습을 하고 수많은, 그리고 잔인한 살인과 범죄를 저질렀던 몇 범죄자의 모습들이 스쳐가서 느닷없는 현실감도 소름에 한몫했다.
뒤에 옮긴이의 말처럼 갈수록 폭력이 교묘하고 기이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책의 원제 'Behind Closed Doors'는 '은밀히, 비공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말 힘있고 똑똑하고 잔인한 자들이 은밀하게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흥미를 위해 읽었던 장르소설에서 사회의 추악한 단면까지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