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나 스토리콜렉터 56
마리사 마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북로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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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나_마리사 마이어
출판사_북로드

 




<레바나>는 달의 지배자로 지구 정복을 꿈꾼 레바나 여왕의 성장기로,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의 프리퀄 스토리였다.

루나 왕국의 둘째 공주였던 그녀는 왕실 근위병 에브렛에 대한 사랑을 남몰래 키우고 있었다. 언니 채너리의 조롱과 왕실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도 그 진실된 마음 만큼은 지키고 싶어했다.

그러던 어느날, 출산 후 에브렛의 아내 솔스티스는 결국 합병증으로 죽고 만다. 그러나 레바나는 일말의 동정심도 느낄 수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무감했던 그녀였다. 그저 아내를 잃고 슬퍼하는 에브렛의 상황이 자신에게 기회라고 생각했다.

결국 에브렛의 눈을 마법을 통해 가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이용했다. 결국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면서, 그의 배려를, 우정을 철저히 이용하고 사랑을 기만했다. 레바나는 에브렛이 그의 아내 '솔스티스'를 애타게 찾는 속삭임을 들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


"하지만 이게 당신이 원하는 거잖아요. 아닌가요? 이렇게하면 둘 다 가질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될 거고, 당신 아이의 엄마가 될 거예요.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릴 거예요. 그러면 나와 당신과 완벽한 우리 가족만 남게 되겠지요."

"그만하세요! ....제발, 제발 원래 공주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주세요. 공주님은 모르세요. 제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결국 레바나는 마법으로 그가 사랑했던 아내의 모습을 하고, 정신을 조종하며 그에게 안겼다. 껍데기 뿐인 사랑이 남긴 것은 결국 파국이었다레바나는 자신의 마음을 진실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뒤틀린 사랑의 전말은 결국 10여 년의 허망함을 안겼다.

 


"틀렸어요. 공주님. 공주님이 설명하는 게 뭔지 모르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

"당신이 나한테 결혼하자고 했을 때에야 비로소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달았소. 만약 내가 저항했다면, 정말로 당신에게 저항했다면 당신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소. 당신은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데 아주 능한 사람이오. 그때도 이미 그랬지. ........ 그리고 만약 내가 계속해서 저항한다면 당신이 혹시..... 뭔가 경솔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소."


비틀린 사랑이 눈을 덮었던 십 대의 모습을 지나 마주한 껍데기의 실체는 그녀를 새로운 욕구에 잠식시켜갔다.



내가 여왕이다.
죄책감과 참혹함과 그 끔찍한 냄새의 기억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여왕이다.


언니 채너리의 죽음을 기점으로 이는 더욱 심화된다. 정당한 왕위 계승자인 자신의 조카를 없애고 왕비가 되고자 했던 욕구는 지구에 대한 지배야욕으로 물들어간다. 지구인들을 굴복시킬 바이러스와 항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한편, 새로운 반인반수의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하기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 십대 시절 사랑의 열병이 만든 껍데기를 자신이 부서버렸다.


 
사랑은 정복이야. 사랑은 전쟁이라고.
'이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야.'


레바나의 이야기는 뒤틀린 애정 욕구가 물리적 힘을 지녔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비극이었다. 또, 이 악녀의 탄생 비화에는 애정 결핍과 언니로부터의 멸시와 학대, 흉측하게 변해버린 외모가 가져온 일종의 열등이 언뜻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일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잔혹한 성정과 무의식중에 잠식하고 있던 야망이 없었다면, 혹은 그것을 실현할 힘이 없었다면, 어쩌면 갑자기 찾아온 첫사랑에 설레며 울먹이고 당황하는 순수한 열여섯 소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은 나쁜 건 아니니까.


레바나는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한 소녀를 위해 울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직도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는 소녀를 위해. 에브렛이 자신을,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확신했지만 그 확신이 어떤 느낌이었는지조차 이제는 기억할 수 없는 그 소녀를 위해.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악행은 용서받을 수 없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강요해서는 안 됐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건 더더욱 안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항상 마법으로 가리고 본 모습을 가리고 다니는 모습에서 일종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대한 자기방어적 모습이 보여 약간 불쌍하기도 했다. 본 시리즈에서는 어떻게 그려지는 지 모르겠지만, 10대 레바나의 마법이 내게 준 메시지는 '불신과 열등감, 공포'였다.


어렸을 때의 그 상처와 주변의 수군거림 때문에 가리는 것에 더 익숙해져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외관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그 때문인지, 끝끝내 사랑은 주지 못했지만, 그녀에게 '우정'은 주고 싶었던 에브렛이라는 캐릭터가 더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 같다. 레바나가 잘못된 마음으로 방황할 때, 공주라는 지위와 어쩌면 그가 얻었을지도 모를 권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마음을 간직하고 레바나가 그녀 자신의 감정을 마주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 물론 끝까지 전해지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었어도, 그녀의 마법 때문에 함께 잠들고 말았던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사랑을 지켰던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브렛은 레바나에게 진실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게 해줄 소중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닿지 않은 마음은 그들을 잔혹 동화로 이끌어갔다. 레바나는 결국 다른 모양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명명했다.
'정복과 전쟁'이라고 일축한 한마디에서 그녀가 어떤 사랑을 했는지, 어떤 사랑을 할 것인지에 대한 암시가 느껴진다. 죽은 에브렛의 아내 솔스티스의 모습으로 이미 고인을 능욕하고 그의 사랑을 짓밟았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잔인하면서도 가여운 말이었다.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다.


*
권선징악이 소재의 일부인 이야기에서 악인의 탄생 비화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지금까지는 주인공의 행태에 집중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왔다. 그게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뱉는 대사는 멋지다, 시련을 이겨내는 모습을 통해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그리고 악인이 처벌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감동을 느낀다.

하지만, 요즘에는 매력적인 악역이 주는 메시지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신을 돌아볼 때에도 나는 항상 착한 생각만 했나? 정말 한번도 나쁜 욕심을 내본 적이 없어? 라는 생각들.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는 욕심, 사랑받고 싶은 마음, 하필 연인이 있는 상대에게 빠져서는 우울하다가도, 저 사람이 헤어지고 나한테 오면 안되나?하는 그런 나쁜 마음들.


악행은 당연히 나쁘다. 그런데 그들 만큼이나 또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모습에는 한번쯤 인간이라면 가져볼 법한 온갖 욕망 덩어리가 응축되어 있다. 그래서 잔혹하지만 한편으로는 매혹적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레바나에서는 '매혹'적인 것보다는 약간의 연민이 느껴져서 지금도 당혹스럽지만.... (이건 10대 레바나 한정). 그렇기 때문에 본 시리즈의 레바나가 어떻게 그려져있는지 더욱 궁금하다.

거기서는 완전 잔인한 폭군으로만 나오려나.
무튼 언제나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참 슬프다.

일반 주인공과 악인의 차이는 껍데기라도 가지나 안가지냐의 차이인가.....라는 헛생각도 살짝 들고. 레바나가 만약 짝사랑으로 끝내고 에브렛에 대한 마음을 접었으면 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책은 얇기도 얇았지만, 가독성이 좋아 술술 읽혀들어갔다. 웃기게도 외전을 보고 본 시리즈를 읽어보려고 생각했는데, 포인트 야금야금 모아서 한 편씩 볼 것 같다. 프리퀄 작품이었지만 본 편에 나올 소재들이 약간 상상되서랄까. '바이러스, 항체, 반인반수 군대, 언뜻 보이는 첨단 기기들과 루나인들의 마법, 지구 연맹' ......거기에 로맨스까지!


약간 스포당한 느낌이지만, 책도 잘 읽히고, 동화를 모티프로 이렇게 구성했다는 것도 너무너무 신기해서 엄청난 자극이 될 것 같다. 달에 한 권 정도씩 선물주는 셈 치고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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