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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평점 :
<은유의 힘>은 40년 시인 인생을 살아온 장석주 시인이 풀어나가는 시와 시인의 삶에 대한 고찰이 담긴 책이었다.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시인이 되는 건 별로 좋은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p.13 <그림자들의 노래>
첫 장, 첫 문장이다. 40년 시인의 삶을 걸어온 시인의 첫마디는 다소 쓸쓸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다보면 시인이랑 가장 고귀한 업이면서도 가장 낮은 곳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관조하는 관찰자 같다는 생각들이 많이 들고는 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길이란 것을 알지만, 그 길을 걸어온 자신의 사명에 대한 자부심과 그간의 고뇌가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시인이 되려면 저보다 앞선 시인들의 시를 과식하고 폭식을 일삼더라도 너끈히 소화해 낼 수 있는 튼튼한 위장을 가져야 한다. ........ 시는 단지 의미의 수사학적인 응고물이 아니다. 시는 말의 춤, 사유의 무늬, 생명의 약동이다. 시는 수천 밤의 고독과 술병을 집약하고, 세계를 향해 뻗치는 감각의 촉수들은 천지 만물의 생리와 섭리를 더듬는다. - p.15 <그림자들의 노래>
화자는 계속해서 한 편의 시를 직조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고, 끊임없이 고뇌하며, 그렇게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몸에서 뻗어나오는 시를 쓰라고 한다. 시와 은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이기 때문에 다소 비유적인 문장들이 많이 나와서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하나의 대상을 보더라도 그것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 꾸준히 고뇌하고, 그 응고 끝에 나오는 글이라야 된다는 말로 이해되었다.
은유는 다른 무엇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함이 아니라, 즉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것 자체로 온전하게 있기 위함이다. 은유는 맥락이 아니라 끊김이고, 그냥 끊김이 아니라 맥락의 찰나적 출현이다. 이것이야말로 "의미의 창조적 생산"이다.
한마디로 은유는 시적인 것의 번뜩임, 시적인 것의 불꽃이다. -p.36 <은유의 깊이, 은유의 광휘>
은유란 '실제의 본질'에 관찰자 혹은 창조자의 직관을 덧댄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은유는 대상의 삼킴이고, 거울이 아닌 거울에 비친 상이라고 했다. 은유는 본체와 똑 닮은 것을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현상하는 표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플라톤의 이데아가 떠올랐다. 시인이 은유라는 연금술을 통해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본체를 모사해내는 연금술사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은유의 힘은 본체와 가장 가깝고도 먼 모사 대상 사이 공백에 시인의 철학이 채워져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이육사의 「절정」이라는 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쓰인 단락 중 일부이다.
칼날이나 강철은 무른 마음에 견줘 얼마나 단단한 강밀도를 가진 것들인가! 이 광물성 이미지의 연쇄는 강밀도와 더불어 시적인 것이 뿜어내는 날카로운 번뜩임, 바로 은유의 광휘를 보여준다. 이것은 구체적 실재를 가리키기보다는 은유의 맥락에서 그 의미가 도렷해진다. -p.35~36 <은유의 깊이, 은유의 광휘>
언어에 담긴 함축성과 그로 인해 연상되는 이미지의 연쇄작용, 그리고 잘 직조된 맥락이 은유가 가진 힘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시인과 은유가 발굴해낸 '언어'라는 원석의 위대함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시에서 말들은 감각들의 통역관이다. 말은 이 세계에 대한 모호한 느낌들을 자명한 것으로 통역한다. -p. 99
말은 거울이다. 그것은 삶을, 삶의 세부 항목들을 빠짐없이 비춘다. -p.100
사람의 기억은 말의 집적이다. 그 세계에서는 삶의 궤적, 경험한 모든 것들, 어떤 찰나의 풍경, 심지어는 이미지조차 말이다. -p.101 <말은 감각들의 통역관>
그 말은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이름 붙은 존재들로 둘러싸인 세상에 살면서 시인들 혹은 우리들은 대상을 조망하고, 때로는 세심하게 관찰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문장을 직조해낸다.
'말의 가장 원초적인 존재 형태는 '이름들'이다.-p.117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를 환대함이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p.128 <이름들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시 쓰기로 살기 힘든 시대에서 시인이란 직업은 고된 일이지만, 숭고한 일처럼 보인다. 시인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책 곳곳에 묻어났다.
시든, 산문이든, 어떤 형태의 글이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세상을 언어로 바라보고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뛰어난 '관찰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의 대상도, 평범한 현상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그것이 담고 있는 본질을 연구하는 사람, 초승달이 반달이되고 다시 보름달이 되는 그 과정들 하나하나를 눈에 스캔하는 사람. 그렇게 인고의 끝에 오는 직관과 통찰에서 결실을 맺어내는 세심한 관찰자.
언어와 상징의 힘을 빌어 인간의 다양한 감성부터 삶, 그리고 고된 역사 속에서 투철한 희생정신과 투지를 노래한 숱한 문장들이 떠올랐다.
비유적 문장들 때문에 다소 난해하고 어려운 문장들도 많았지만, 시인에 대한 꿈이 있는 사람,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6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