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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악마의 헌신
사이카와 토오 지음, 나지수 옮김, 아시하라 모카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5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느긋하게 우려내야 할 더치 커피를 인스턴트로 뽑아 마신 기분입니다. 이 작가분은 단권이 아닌 2권 이상의 장편이 어울려요. 긴 호흡으로 하나하나 풀어나갔어야 할 이야기를 단숨에 내뱉다 보니 마치 시놉시스처럼 되어 이 글이 줄 수 있었던 장점들을 많이 놓쳐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작가분을 붙들고 다시 쓰세욧! ... ...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성실하게 완성도를 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사랑골동감정서'에서도 그렇지만, 사이카와 토오님은 글 하나하나 충실히 구성하기 위해 애쓴다는 정성이 보여 좋습니다.
여주가 가장 불행했던 시기에 연락도 없이 사라져버린 약혼자가, 3년 후 다른 이름의 고위 귀족이 되어 나타났다. 어째서 이 남자는 신분과 이름이 바뀌었고, 3년 전 그렇게 사라져버려놓고 이제 와서 사랑한다며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여 주인공의 주위에서만 일어나는 상해 사건들은 왜?
서스펜스 추리물이 가미된 만큼 작품 내에서는 끊임없이 의문이 이어지고, 이는 과거가 드러나지 않는 남주의 상황과 맞물려 여주로 하여금 그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때때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남주, 남주에 대한 경계를 강요하는 남조, 오래 전 사라진 기억과 언제든 또 다시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신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사랑에 빠진 마음은 그를 쉬이 떨쳐내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따져보면 정말 많은 비밀이 있고, 그걸 단권 내에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냈다는 건 작가분의 실력이 좋다는 걸 반증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설정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독자가 받아들일 만한 시간 여유를 두지 못 했습니다. 촉박하게 설명을 다 마치다보니 주마간산격.
너무너무 아쉽단 말이에요. TL에서 스토리에 치중한, 거기에 쉽지 않은 장르를 더한 작품이라.
적어도 남조를 이용해 여주에게 충분히 남주에 대한 두려움을 조성해주었더라면. 빈센트, 세스, 잭으로 이어지는 세 인물들의 특징을 짧은 대사가 아닌 긴 텀을 두고 드러내줄 수 있었더라면. 여주가 자신 외의 주변 인물들 모두에 대한 의문을 가지도록 몰아세웠더라면... ...아흐... ...
장편은 못 쓰더라도, 단권에 맞도록 적절히 설정을 잘라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비슷한 류의 야마노베 리리님이 쓰신 '수면 밑의 신부'를 비교해 보면 딱 아실 겁니다. '수면 밑의 신부'는 해소해야 할 의문이 많지 않잖아요.
... ...이런 걸 소위 작가의 욕심이라고 합니다만[웃음]
작가로서의 욕심을 다듬고 다듬어서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글을 만들어 내는 게 능력이고 연륜이죠.
그리고 아쉽다고 칭얼거리는 건 독자의 욕심입니다[...]
"지키기 위해서였어. 언젠가 반드시 이 손으로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맹세했다. 그걸 위해서 몇 번이나 죄를 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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