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팝 리턴즈 VS 이미지네이터 Part 2 - 부기팝 시리즈 3, NT Novel
카도노 코우헤이 지음, 김지현 옮김, 오가타 코우지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그렇기에 더욱 짙은 향기를 뿜어낸다.
 세상에 아름다운 동화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처럼.
 환상이라 이름지어진 모든 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누군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동경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가 그런 불완전함이라면,
 때문에 인간은 완전해지기 위해 더욱 더 많은 것들을 동경해간다.
 하지만 욕망이란 끝없는 늪은 인간이 신으로 있을 수 없는 가장 완전한 이유.
 동경이란 아슬아슬한 흔들 다리 위에서,
 인간은 나락이 아닌 빛을 향하기 위해서 그 작은 손을 내밀어 외친다.
 ―부디 누군가 나를 구원해 줘.
 라고.

 

 인간이기 때문에.

 이것은 꽤나 쓸모 있는 변명 중에 하나이다. 어설픈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때에도,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할 자신을 감쌀 때에도, 뒤늦은 후회에 괴로워할 때에도,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기 위한 적절한 보호막 중 하나이다.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라고 말해버린다면, 그러니까 나는 불완전한 게 당연한 거야-라고 대답할 수 있다.

 왜 불완전한 건데? 라고 물어버리면,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신이 아닌 걸-이라고 해버리면 그걸로 납득해버리는.

 그걸 알면서도 인간은 때때로 자신을 회피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수단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메마를수록 더욱 더 많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인간이란 메마른 토양은 끝없이 자신을 채우기 위한 무언가들을 요구한다. 완전해지기 위한 갈망. 그로 인해서 인간은 발전할 수 있다, 라고 혹자들은 말한다. 조금이라도 틈이 있기 때문에, 그 틈은 '무언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고.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아니, 조금은 다른 의미가 아닐까? 부족하다-란 것은 다시 채워질 수 있는, 그러니까 완전하게 차오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결여-라는 말은 처음부터 그렇게 있는 상태, 앞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게 당연하단 그런 느낌이 든다.

 부기팝-기분 나쁜 거품.

 가끔은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그를 기분 나쁜이란 단어로 지칭하는 것일까. 그러다 다시 생각해본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혐오감이나 두려움, 무언가 회피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다, 라고. 그리고 그것처럼 부기팝은 인간이 숨기고 싶어하는 것들 속에서 떠오른다.

 어둠, 추악함, 살의와 욕망. 허울과 거짓들.

 언제나 이야기들은 현실에서 도피(어떤 의미에서)되어 있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마음 속에 기생하는 벌레를 볼 수 있고, 인간들의 내면을 형상화한 '식물'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인간들. 현실의 혹독함을 견디지 못해 도피하는 아이들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두려워하는 아이들. 언제나 한 단계 뒤로 물러서 덮어버리고 있던 현실의 또 다른 일면들이 부기팝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위로 떠올라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기분 나쁜 거품.

 손이 닿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그런 거품.

 재미있는 점은 이 기분 나쁜 거품은 인간이 자신이 있는 곳을 (일종의 경고처럼) 피해갈 수 있게 만들지만, 인간은 거품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없다. 일방적인 관계라면 일방적이지만, 분명 인간으로 인해 이 기분 나쁜 거품이 생겨났다는 것만은 틀림없으리라. 공존이라 부르기엔 그렇지만 뭔가 기묘한 그런 관계랄까.

 부기팝은 작품 내에 실재하지만 인간들 속에 섞일 수 없는 '환상'과 같다. 여자들-부기팝이 여자애의 몸 안에 있어서?-만이 공유하고 있는 괴담 속에서 그는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나타나 더 이상 추악해지지 않도록 죽여버리는' 사신이다. 다른 의미에서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이기도 한데. 아마도 그들이 현실이 아닌 '이상적인' 자신 안에 갇혀버릴 때, 그것을 깨트려 버리는 게 그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혹은 인간이 가진 변화의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순간이 아닐까)

 부기팝 리턴즈vs 이미지네이터 내에서 그가 죽이려 한 것은 바로 '완전함'을 꿈꾸는 가능성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실체인지는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아직 한 번 밖에 읽지 않은 상태에서 파악하기엔 뭔가 심오한 대사들이 오고 갔다-_-;; 부기팝 1권이 이리저리 이야기를 섞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면, 2, 3권은 챕터마다 쓰여진 글귀들이 하나의 의미를 떠올리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은데.)

 단지 작품 내에 반복되어있는 4월에 내리는 눈만이 인상 깊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4월에 내리는 눈, 그것은 허공 중에 떠있는 이상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생각'에서 '있을 수 없는' 존재. 그래서 가능성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그것은 땅 위에 닿는 순간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가능성은 그것이 끝에 닿기 전에만 있을 수 있는, 말 그대로의 '가능성'일 뿐이다.

 '미래' 또한 그 시간에 도달하기 전에 있을 수 있는 '가능성'-다르게 말해 미래는 그 가능성들의 집결체, 혹은 도달점인지도 모르겠다-들 중에 하나이며, '완전한 인간'이란 말 또한 불완전함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태어난 것을 달리기의 출발선이라고 한다면, 결말에 도달하기 전까지를 수 많은 가능성들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달리는 동안 인간은 달리기를 포기할 수도 있고, 혹은 더 빨리 달리기 위한 힘을 얻을 수 있으며, 행로를 이탈하여 다른 길로 달려갈 수도 있다. 즉, 끝에 도달하기 전까지 있을 수 있는 모든 변화들이 바로 가능성이다.

 '가능성'이란 수많은 '변화'이며, 어떤 식으로 튀어갈지 모르는 공과 같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불완전한 상태-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무언가 완전하지 않기에 부족한 것. 때문에 이미지네이터는 미래를 뚫을 수 있는 힘을 인간의 결여됨에서 찾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가능성을 바로 '힘'이라고 생각했기에. 수많은 도달점과 출발점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먼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이 완전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거리이기 때문에 그는 거기에서 가장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은 처음부터 결여된 존재이기 때문에, 미래 또한 이 결여됨으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바라던 미래가 코앞에 도달하는 순간 현재가 되어 버리는 것처럼, 4월에 내리는 눈은 '이상'이 아닌 '실재'가 되어버리는 순간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한다. 그녀가 '실재'해버린 미래에 도달해도 그 시간은 단지 과거가 되어버릴 현재일 뿐, 아무런 일도 생겨나지 않았다.

 있어선 안될 시간 속에 내린 눈은 아름답지 않은, 그저 물기 어린 얼룩일 뿐이었다. 그저 무시해버리고 지나칠, 누구에게도 감흥을 주지 못할 흔적. 4월에 내리는 눈이 아름다울 거라 여길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환상 속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현재가 되면 다시 또 다른 미래가 생겨난다. 그리고 현재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가능성들이 사라지고 다시 또 다른 가능성이 생겨난다. 좁혀진 거리가 사라지면 다시 또 새로운 거리가 생겨나고, 사라진 변화를 대신해 또 다른 변화가 생겨난다. 인간이 결여됨을 채우는 순간 또 다시 '채우고 싶은' 결여가 생겨난다. 끝없는 공허감과 결여됨, 거리와 공간들. 그것들이 있음으로써 인간이란 멸망하지 않고 끝없는 달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부기팝이 인간이 멸망하지 않기 위해 있는 존재라면 이미지네이터가 그의 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걸까. 세계의 완전함을 바란다면 그것은 세계의 멸망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음은 더 이상이 시간이 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될 테니까.

 어쩌면 부기팝이 4월에 내리는 눈을 내버려두었던 것은 그녀가 곧 사라져버릴 '미래'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결여된 것을 채우려했던 그를 죽일 가치가 없다고 말한 것도, 완전해지지 않는 것을 완전하게 만들었다 믿고 있는 그의 '사라져버릴 가능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있을 수 없는 가능성들은 그 가능성이 사라져버릴 시간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

 결국 자신이 있을 수 있는 것도 그 불완전함 속이란 것을 그녀는 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틈이 있기에 인간은 그 사이로 손을 내밀어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불완전함이 사람을 기울어지게 만든다면, 기울어질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기댈 수가 있다. 그리고 미래가 있는 한 인간은 꿈 꿀 것이다.

 언젠가 4월의 하늘 위에 떨어질 새하얀 눈을.

 ―결코 현실 속에서 아름답지 않을 꿈을. 

 

 

 

 *1999년 - 2003년 경 시리즈로 작성했던 글 중 하나입니다. 개인 홈과 블로그에 올렸던 걸 옮겼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