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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개정신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nd Review
같은 책의 두 번째 서평이라니. 책을 읽은 세월이 별로 길지 않지만 이런 글쓰기는 처음이다. 처음에는 새 책이라
반질반질하던 책이 몇 년이 지나고 보니 페이지가 누렇고 꼬질꼬질해졌다. 책 속에 내가 넘긴 페이지의 손때가 묻어 있고 중간 중간 적어놓은 메모가
보인다. 그리고 벌써(?)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까지 나와 보니 정말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내가 초판으로 읽었던 이
책은 이젠 절판이라니! 갑자기 내가 나이 먹은 기분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책을 읽었다.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에서. 책의 중반 정도를 읽고 있는데 다시 눈물이 났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울고 있는 것을 들킬까봐 내 긴 머리로 눈을 가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이 책을 읽고 또 다시 울었다는 점에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또 울 것을 알았다는 것처럼. 나 참. 이 책을 몇 번이나 보며 울었으면서 또 눈물샘이 열렸다니.
책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자기 자신을 미워했던 무늬만 교수 문유정과 역시 자신을 미워했던 사형수 정윤수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로 자신을 용서하는 내용이다. 물론 책 위의 소개는 말도 안 되게 추상적이고 완전히 이 책을 읽었던 나만의 줄거리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대외적으로 알려진 큰 주제 ‘사형제 폐지’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폭력. 그 폭력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더 큰
폭력.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자기혐오와 그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과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좋은 소설책이라는 무엇인가. 내 짧은 생각으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진심이 느껴지는 책과 자신을 책에 투영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 작가가 굳이 코멘트를 하지 않아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는 책. 그리고
책을 보고 있으면 내가 느껴지는 책. 즉 몰입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조건은 말은 쉽지만 쉽게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이 때문에
작가는 천재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 눈으로 보자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이 두 조건에 만족한다고 생각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사형의 본질이
왜 복수인지, 무엇이 사람을 괴물로 변하게 만드는지, 왜 사랑은 그토록 위대할 수 있는지 텍스트를 따라가면 저절로 내 마음을 두들겼고
등장인물(특히 문유정)이 너무나 나 같아서.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들, 속마음이 너무 내 자신의 이야기 같아서. 등장인물들을 너무나 이해하게 되는
딱 내 기준에 적합한 소설이었다.
특히 윤수의 사형 집행을 알게 된 유정이 자신이 가장 할 수 없는 것. 엄마를 용서한다는 말을 하려고 엄마의 병실로
들어갔던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 분명히 책을 읽던 중 가장 많이 울었던 부분이었지 않았나 싶다. 자신을 성폭행한 사촌오빠보다 더
용서하기 힘든 사람은 사실 유정의 엄마가 아닐까. 성폭행 당한 직후 엄마에게 아픈 몸으로 고백했을 때 유정은 엄마가 당연히 위로해 주고 당연히
자기편이 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의 반응은 싸늘했고 위로는 커녕 잔인한 말로 유정을 두 번 죽였다. 그 때 유정이 느꼈을 싸늘함,
분노가 나에게도 가슴 깊숙이에서 올라왔다. 그런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엄마를.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마 방에 찾아와서
용서하려고 하는 유정을 보고 말도 안 되는 울분이 내 자신에게 똑똑히 전해졌다. 그렇지만 그런 유정의 기분을 아랑곳하지 않는 엄마는 어이없어
했다. 너무 격양될 수밖에 없는 감정을 가지고 울고불고 하며 엄마를 찾아왔지만 ‘누가 누굴 보고 용서한다고?’의 반응을 보이는 엄마를 보고 아마
유정은 세 번 죽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 혼란스러운 중학교 시절을 조금 더 밝게 비춰준 아주 고마운 책이다. 중학교 때 읽은 이 책은 내 자존감과
사고방식 뿐만 아니라 먼 미래. 그러니까 2012년의 나를 지금의 의식 형태로 만들어준 조물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책이라는 것은, 독서라는
것은 위대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 한 권의 책이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성장 과정의 조물주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조물주.
신神인 것이다. 어째서 유명인사들. 과거의 위인들이 책을 즐겨 읽지 않은 사람이 없고 책벌레가 아니었던 사람이 없었는지를 나는 정확히 통감한다.
딱 한 권의 책인데도 내 평생의 의사소통의 바탕을 만들어 주지 않았는가.
끝으로 이 책을 집필해준 공지영 작가께 감사하다. 또한 이 책을 읽고 울고, 웃고, 괴롭고 힘들어도 여기까지 버텨준
나에게 감사하다. 부끄러운 삶이지만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준 이 책의 주인공 문유정처럼 죽지 않고 살아준 나에게 감사하다.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겠다고 마음 속으로 100번 외친 뒤 이 리뷰를 마친다.
중학교 재학 시절 썼던 첫번째
리뷰
요번 네이버
북카페 정팅주제가 '되고싶은 주인공'이었다. 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줄여서 우행시)의 주인공 유정을 떠올렸고, 서평을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도 울었던 책이었는데 나도 서평으로 보답을 해야지... 뭐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이 책을 가지고 사형제를 운운하는 것은 뭔가 좀 아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 서평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한 말을 일체 안할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의 중요한 핵심은 '구원'이다. 가톨릭, 혹은 개신교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이 아닌 인간들의 구원. 내가 느낀 바로는 이 이야기는 평범한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대해서 볼 수 없다. 그들은 애인이 나누던 사랑을
나눈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과 사람이 나눌 수 있는 가장 진솔한 사랑을 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
해본다.
여기 사람과 세상앞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사형수 윤수와 대학교수 유정. 한 사람은 말못한 중죄를 저질렀고, 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감당치 못한다. 그들은 찌그러지고
일그러져 있었다. 윤수는 조소로 세상을 버텨나가고 있었고, 유정은 위악으로 세상을 버텨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세상이, 혹은 신이 자신들을
철저하게 배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란 이들에게 먼세상 얘기일 뿐...
그런 그들이 만났다. 마음 문을 열고, 소통하기
시작한다.
누가 좀 빨리 들어주었다면, 귀기울였다면
좋았을 진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느낀다.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그들이 아직 위악으로 똘똘 뭉치기 전, 그러니까
상처받은 순수한 영혼일 때 누군가가 들어주었다면, 달래주었다면 더 좋았을, 그런 껴안음을 시작한다.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해 줄 사람은 역시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치료해 줄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공지영 특유의 담백하고 담담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해 주셔서 새삼
감탄했다. 그리고 은근슬쩍 놀랐다. 다른 사람이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게 공격적인 유정이가 나에게 그렇게 와닿는, 나와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인물일지는 몰랐다. 무엇 때문일까, 왜 나만 이리 많이 아플까, 하는 어리석은 마음? 상처때문에 비틀어져 버린 위악? 난 아직도
모르겠다.
엉망이었던 사람. 문유정,
그리고 나.
내가 처음 이 책을 읽고 엉엉 운
이유는
처음으로 내가 나와
맞닿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유정이의 면이 있다는 점을 나는 부정할 수
없다.
책을 읽던중 했던 메모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