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의 잭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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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책 읽는 자로서 각 분야, 국가의 대표작들을 읽어보고 싶은 욕심과 추리소설 입문작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 적절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비록 선택이 실패하긴 했지만.

 

  이 책의 사건들은 스키장에서 벌어진다.신게쓰 고원 스키장에 한 통의 협박메일이 왔다. 환경파괴라는 핑계거리로 스키장에 폭탄을 설치했으며 폭탄을 터트리지 않는 조건으로 3천만 엔을 요구한 것이었다. 쿠라타 매니저는 경찰에 알려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높으신 분들의 결정으로 협박범에게 3천만 엔을 넘겼다. 하지만 범인은 추가로 돈을 더 원했고 다시 3천만 엔을 바랬고 이젠 경찰에 섣불리 말하지 못하는 스키장 관계자들은 그들의 요구를 한 번 더 들어준다. 그렇지만 범인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5천만 엔을 더 요구하고 그들에게 돈을 배달하는 과정에서 협박범에 대한 실마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의 추적으로 인해 '관객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거래를 유보한다. 그리고 다음 돈 배달에서 패트롤 요원 네즈와 그를 돕는 치아키에게 덜미를 잡혀 범인이 밝혀진다. 그리고 숨겨진 반전으로 진짜 흑막이 밝혀진다.

 

  '차가운 눈에 둘러싸인 뜨거운 서스펜스!'라고 출판사 측에서는 이 책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완독하고 난 후 전혀 이 문구에 동의하지 못했다. 또한 '협박범과 목숨 걸고 벌이는 레이스가 시작된다!'라는 설명도 동의 불가하다. 서스펜스의 뜻은 줄거리의 전개가 관객이나 독자에게 주는 불안감과 긴박감인데 이 책에서는 그런 면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숨 걸고 벌이는 레이스도 아니다. 애초부터 추격하는 작품 속 인물들도 목숨을 걸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며 독자가 보기에도 목숨까지 걸고 있는 상황과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책에 대한 출판사 소개가 이렇게나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책에 대한 별점을 반 개 밖에 주지 않았는데 책은 물론이고 많은 종류의 리뷰를 쓰면서 별점이 반 개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나는 왠만하면 별점을 후하게 주는 편이다.

 

  그렇다면 이런 초라한 별점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거야 당연히 책이 재미 없이 때문이다. 리뷰이니 만큼 이 책이 왜 재미 없었는지 요모조모 따져보기로 하자.

 

  우선 첫 번째. 스토리가 지루하고 긴장감 제로의 전개다. 이 책의 페이지 수는 439p다. 꽤 긴 소설인데 그 소설의 절반 이상을 작가는 사건 나열만 하고 있다. 스키장에 협박메일이 오고 협박범에게 돈을 지불하고 그치지 않고 또다시 협박해오는 내용. 단지 책의 줄거리만 서술하고 있다. 사건과 얽힌 인물들은 각자의 행동을 취하지만 내용 상에 들어가기 위한 의례적인 반응일 뿐이다. 이 책은 장르는 분명히 '추리'이건만 어떤 등장인물도 추리를 하지 않는다. 좋은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서 캐릭터가 작가의 극 중 의도를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되는데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그저 작품 속 사건에 평면적인 '반응'만 할 뿐이다. 게다가 페이지 절반 이상이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나열만 하고 있으니 긴장감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작품에서의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거나 다른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것이었다면 달랐겠지만 추리소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협박 사건인데 이래저래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수준의 서술을 누가 긴장감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 초라한 반전과 복선은 물론 개연성 없는 스토리. 뜬금없는 결말이다. 이것은 이 책이 추리소설이기 때문에 더 부각되는 문제인데 스토리마저 지루한데 복선이 있을 성 싶긴 하지만 복선과 개연성이 미비한 정도를 넘어서 아예 없다. 복선과 개연성이 없으니 결말은 뜬금없을 수밖에 없고 반전 또한 별 볼 일 없다. 게다가 이 책의 반전과 결말은 책의 후반 단 몇 페이지 안 되는 선에서 작성된다. 마치 "옛다, 결말이다."하고 툭 결말을 던져버린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작가가 "옛다, 결말이다"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쓰진 않았겠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은 나는 작가에게 배신감까지 느꼈다. 스토리가 부실하고 결말이 뜬금없는 것은 상관 없다 치더라도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고 저런 일이 있었는데 해결이 됐어요'라는 추리소설로서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B급도 안 되는 결말. 이런 결말이 기대 만발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니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설가의 다작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작하는 소설가들의 작품을 읽어보면 '깊이'가 덜 느껴진다는 기분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대표적인 다작 소설가다. 상관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추리소설로서의 '깊이'인 거미줄과 같은 쫀쫀한 복선과 놀라운 반전. 그로 말미암은 장르 소설의 재미를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는 주지 못했다. . 다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또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깊이 있는 소설을 써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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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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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박민규
 

 

 

 

  박민규. 그는 한국문단에 이름을 내밀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인기작가가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박민규를 알고 있고 환호하기도 한다. 박민규. 그가 한국 문단에 발을 얹은 것은 고작 2000년대였다. 그렇지만 그는 한참 전부터 활동했던 문인들과 비슷한 대우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2009년에 이 책을 내놓았는데 나는 2012년인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굉장히 반가웠다. 그 이유는 그의 대표작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넘어선 작품이 탄생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작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말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누가 뭐래도 대중들에게 박민규를 각인시키고 그가 지금의 위치에 앉게 해준 걸작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대표작을 넘어서는 작품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대표작에 눌려 자신의 작품 활동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는다. 나는 가수다로 비주얼 가수로 거듭난 김범수 역시 자신의 대표곡 '보고싶다' 때문에 신곡이 나왔지만 KBS 열린음악회에서 '보고싶다'를 불렀던 일화도 있다. 그렇지만 박민규는 <삼미>를 뛰어넘는 작품(물론 모든 분들의 동의를 얻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을 발표했다. 그것도 6년만에!
 

 

 

 

  줄거리
 

 

 

 

  간략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 책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다. 중요한 점은 여자는 그냥 못생긴 정도가 아닌 정~말 못생긴 여자라는 점이다. 누가 봐도 '심하다' 할 수 있는 정도의. 그 여자를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평범한 연애사를 넘은 구조적인 모순과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다. 이렇게 단 세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줄거리는 세 줄 요약의 간략함과는 다른 중량감으로 다가온다.
 

 

 

 

  외모. 미녀. 추녀. 관념. 본능. 폐해.
 

 

 

 

  부끄럽지만 내 외모에 대해 말한다면 '평범'하다고 얘기한다. 키는 작지만 아주 작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평범'하다는 점에 안도하고 '아주 작지는 않다'는 점에 안심한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이냐면 가까스로 평균 안에 들어왔다는 안도감과 가까스로 최하위권까지는 들지 않았다는 안심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나마 그나마 그나마 "엄청 못생기지는 않았으니까 괜찮아"라는 마음속으로 하는 자위인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라는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추악한.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고 세상은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필히 '적립금' 정도는 될 수 있다. 단지 태어나길 '미인'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이미 적립금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무엇을 하던지 그녀들은 자신들의 '적립금'으로 인해 더 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직업, 사랑, 친구 등등 그녀들은 단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언제나 주위 여자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남자들에게는 호감의 대상이 된다.
 

  반대로 못생긴 여자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마이너스 통장? 미인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적립금을 가지고 태어났듯이 못생긴 여자는 마이너스 통장을 입 안에 물고 태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돈을 넣어도 다음 날마다 일정 금액이 차감되는 마이너스 통장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하던지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은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 말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작품에서 말하는 시시한 것에 목숨 거는 '와와'하는 인간들이 절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옆으로 눈 돌릴 필요 없이 나같은 사람 때문에.
 

 이 책은 모두가 예외가 될 수 없는 본성을 사랑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예리하게 일침을 가한다. 모두가 예외가 될 수 없기에 이 소설 앞에서 한순간 모두가 죄인이 된다. 독자 모두가 못생긴 그녀를 바보로 만든 적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독자 모두가 못생긴 그녀가 "아니, 아니에요."라는 말버릇을 가지게 만든 원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무 사랑했지만 한순간 주인공에게서 증발해버린 그녀의 편지 속 그녀를 괴롭힌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사랑이라는 폴더 안에 사랑받을 수 없는 그녀를 파일로 저장한 박민규의 놀라운 연출에 박수를 보낸다. 사랑받을 수 없는 그녀를 소설 속에 저장함으로서 진정한 사랑은 더욱 완성되었고 너무나 숭고해졌다.
 

 

 

 

  사랑을 하자

 

 

 

  저자는 책 속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우리와 타인을 사랑하자고. 412p에 달하는 소설을 통해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사랑 뿐이라고 말한다. 태고부터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가지게 된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내 생각에 좋은 감정보다는 흉악한 감정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투, 교만, 무시 등 다른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감정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모든 감정을 극복할 감정도 딱 하나. 태고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바로 사랑이다.

 

 

  아쉽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감정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잘난 사람을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려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필수불가결이다. 없어서는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행동을 멈출 수 없다. 마치 거대한 고아원과 같은 지구에서 사랑은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어려워도 해야 한다. 사랑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애절하게 말하는 책 속 그녀가 애절하게 말하는 "사랑합니다"처럼. 책 속 그녀는 주인공을 만나면서 예전의 그녀가 아니게 되었다. 그녀의 외모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에 불빛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인해 그녀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변하고 그녀가 소위 잘난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사랑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치

 

 

 

 

  나는 모든 감동과 희망을 주는 책의 내용엔 반드시 절망과 눈물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사랑하는 시간보다 아파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사랑이 있다면 절망과 눈물은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와와"하지 말고 "예예"하자. 이 책으로 인해 숭고한 메시지를 얻었으니 잊지 말도록 하자. 절절한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사랑합니다"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자.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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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 혼돈과 불안의 길목을 지나는 20대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김보일 지음 / 예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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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일의 나를 만나는 스무 살 철학을 읽었다. 스무 살이라니. 20대라니! 평생 꼬꼬마로 살 것이라는 착각을 했었고 스무 살 어쩌고. 20대 어쩌고 하는 책을 사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10대 때 했었나? 안 했던 것 같다. 그런 꼬꼬마였던 내가 갓 스무 살이 된지도 몇 개월이나 지났다. 1, 2월까지도 내가 10대 꼬리표를 뗀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젠 진짜 리얼! 스무 살이다. 20대인 것이다.

 

  나는 10대에는 내 나이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 나이가 불편하고 부담스럽고 싫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내 나이가 내가 느끼기에 무거워졌기 때문인 것 같다. 술을 마실 수 있고 담배도 살 수 있고, 이제 몇 달 뒤에 대통령 선거 투표도 할 수 있다.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릴 수 없고, 더 이상 내가 잘못하면 부모님께서 욕을 먹지 않으며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을 아무 생각 없이 받을 수 없다. 부모님을 방패막이 삼을 수도, 변명을 한다면 구차해진다.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듣는 말.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나이가 된 것이다. 항상 책임감이란 어깨를 무겁게 하지 않는가. 그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내 나이를. 온 세상 어른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라며 부러워하는 나이를 싫어하는 까닭 말이다.

 

  이 책은 나와 같은 20대를 위한 교양철학 도서다. 딱딱하고 마냥 진지하게 장황한 책이 아니라 딱 공감하기 쉽게 영화, , 책 속 구절까지 첨부해가면서 내 마음을 다시 토닥거려줄 수 있는 눈높이 교양철학 도서다. 각 챕터별로 20대에 고민하는 것을 나열하고 욕망, 성공, 사랑, 불안, 선택 등 주제별로 조언해 준다. 20대는 10대 못지않게 배울 게 많은 나이니까.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17p에 저자가 소개해 준 가사. 한국의 유명한 가요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저자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고 이 가사를 인용했다. 노래 가사가 마치 한편의 시 같다. 분명 는 한 사람 뿐인데 역설적으로 나를 복수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책의 전반부부터 탁월한 비유와 예시로 20대를 표현한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자신의 정체성을 간명하게 요약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나다. 그러나 정작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스무 살은 그런 나이다.(19p)라고 말이다.

 

  군대를 간다, 연애를 한다, 대학원에 진학한다, 취업을 한다……. 선택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은 나이가 스무 살 무렵이다.(77p) 이 구절을 보고 책에 밑줄을 치면서 머릿속에 생각난 게 있었다. ‘무엇을 선택하든 빠르지 않은 나이가 스무 살 무렵이 아닐까?’ 남자들은 20대가 되면 군 입대를 목전에 두게 되고 그대로 2년 동안 군 생활을 해야 한다. 2년이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다. 청소년 때처럼 중학교 입학. 3년 후 고등학교 입학. 졸업이라는 모든 대한민국 학생의 교육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직접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청년들은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에 대체로 서툴다. 그렇다고 자신의 선택을 보류하거나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이 나라의 사회가 주지 않는다. 자신의 자격지심과 불안함도 자신을 스스로 벼랑 끝으로 세운다. 그렇지 않다고 위로해주는 사람들도 많지만 무엇이든 빨리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이 사회는 청년들의 등을 떠민다.

 

  그렇다고 이 책이 경고만을 해주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마치 아프니까 청춘이다 도서와 같이 희망을 주는데 다양한 매체를 인용하면서 위로도 해준다. “나는 나의 고통이 의미 없어질 때가 가장 두렵다.”라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다고 한다.(100p)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왜 천재며 대문호인지 단번에 납득하게 되었다. 고통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의미 없어질 때가 두렵다고 한다. 고통도 다 약인 것이다. 그것도 엄청 쓸모 있는 약. 고통이 없다면 나의 성장도 없다.

 

  또 내가 이 책으로 인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 행복의 기준에 대한 것이었다. 저자는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의 행복론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나 또한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 책의 주제는 고통을 참으면 더 큰 행복이 온다.’였다. 마시멜로 실험이라는 걸 했는데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주면서 15분 후까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는다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15분 동안 참은 아이들이 학업 성취도나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그 실험결과를 보며 나도 저렇게 살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저자는 쾌락을 추구하는 현재형 인간들이 반드시 열등한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203p)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몸이 마시멜로를 먹고 싶어 하면 먹으면 그만이라고. 행복은 간단하다고 설명한다. 의심할 바 없이 행복은 결핍의 충족에서 생겨난다고 말이다. 저자의 반박이 나에게 먹혀 들었다. 마시멜로 이야기에서의 행복도 행복의 종류지만 15분 동안의 고통 후 먹을 수 있는 마시멜로를 포기하고 지금 당장 맛있게 먹는 것도 행복인 것이다. 그로 인해 15분 동안의 고통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도 쾌락이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마시멜로를 바로 먹는 쾌락이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정적인 쾌락이라고 설명했다. 정적인 쾌락은 마음에 불안이 없고 몸에 고통이 없는 평정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마시멜로 이야기 속 어린아이들 중 마시멜로를 당장 먹은 아이들은 더 많은 마시멜로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하나의 마시멜로를 취했을 뿐이라고. 내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논리와 논거였다.

 

  이 책은 내 인생에 있어서 알게 모르게 의의를 가져다 줄 것 같다. 무엇이든 공감과 반성. 그리고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것. 어렵게 말하면 성찰은 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20. 앞서 적었듯이 어른들 말처럼 뭘 해도 될 나이다. 그렇지만 막상 당사자들에게는 불안한 나이다. 이 불안을 잘 컨트롤해서 행복한 내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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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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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의 저서 정치의 발견을 읽었다. 사실 가격을 보고 구매 전에 많이 망설였다.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평범한 단행본인데 15000원이나 한다. 확실히 책값이 너무 올랐다. 이래서 요즘 내가 도서관을 자주 찾나보다. 이 책은 저자가 ‘정치바로아카데미’에서 하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고 있으면 저자가 나에게 말을 하면서 내용을 이야기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책 중간 중간에 강의를 들었던 청중들의 분위기나 반응도 나와 있어 흥미로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높은 점수를 매겼고 각 챕터마다 놓칠 부분이 없을 정도의 기분도 들었다. 정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궁금함 정도의 생각만 있었던 나. 그리고 2012년의 큰 정치적 행사(?) 총선과 대선을 앞둬 투표권이 생긴지 얼마 안 된 내가 정치와 관련된 책 한 권쯤은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고른 책인데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한 정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궁금함으로 고른 책인데 이 책은 막연한 환상은 깨지고 더 건설적인 마인드를 갖게끔 연결다리를 놔줬고 궁금함은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었다. 특히 궁금함을 충족시킨 것보다도 환상을 깨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 더 나의 뇌와 정치관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에게 막연한 환상은 소위 ‘진보’와 ‘진보파’에 있었는데, 예를 들면 보수 진영은 모두 무조건 자신들의 이익만을 원하고 상위 계층만을 위한 정책을 펴려고 하며 다수의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생각하면서 막연하게 막상 진보진영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진보진영은 이와는 다를 거야’라고 생각하며 뭔가 더 양심적이고 서민. 혹은 평범한 국민 다수를 위해 정치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흑백논리의 관점으로 본 정치관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었는지 이 책을 보고 정확히 깨달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진보진영의 정치인들도 자신들에 대한 위험한 자부심 또는 환상이 있다는 것을 여러 번의 사례를 통해 깨달았다. 예를 들면 122p에 나왔듯이 마치 자신은 권력과 이해관계에 초연한 역사적 역할자로 정의하거나 자신은 안 그런데 상대가 권력과 이해관계를 다툰다고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또 자신은 원치 않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권력과 이해를 다투게 되었다는 식의 자기 위선과 변명을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말 따라 그들 역시 정치를 하고 권력을 이용하며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위해 다투고 있는데도 말이다.

 

  6강과 7강에서는 정치의 고전 강독을 했는데 6강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소개되었고 7강에서는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소개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막스 베버는 많이 어렵고 버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 책을 구입해 읽고 싶을 정도로 재밌었다. 군주가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하는지가 소개되었는데 아주 냉정하게 군주에게 필요한 것을 가감 없이, 저자 박상훈의 표현대로 무자비하게 소개했다. 그 방식은 기존의 도덕성과 관대함 같은 윤리적 자질이 아닌 때로는 악덕도 짊어져야 하는(신생국가의 군주일수록 더 가혹해져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주장했다) 냉혹한 자질을 요구했다. 마키아벨리는 이렇게도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선한 행동만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파멸은 불가피하다."(209p)

 

  이 책의 가장 장점과 취지는 저자가 우리나라의 진보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는 것이다. 나의 정치성향은 진보주의 쪽이다. 그리고 저자도 ‘우리 사회를 좀 더 인간이 살 만한 사회로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보수파보다 진보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15p)'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정도의 생각에서 정지하지 않고 진보파의 잘못된 생각과 고정관념, 혹은 위선과 자기방어를 콕콕 찍어 알려주고 거기서 또 저자는 정지하지 않고 건전한 진보의 발전에 대해 고민한다. 어쩌면 저자와 같은 태도가 한국의 진보주의 정치가들. 나를 포함한 평범한 진보주의 성향을 가진 시민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가 아닐까?

 

  한국은 비록 투표율이 낮아도 정치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높다. 이 서평 첫 문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다. 저자는 우리나라 정치가 진심으로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을 바란다. 그 바램으로 강의도 하고 이 책을 저술한 것이다. 본인 스스로가 진보 성향에 가깝기 때문에 한국 진보파에게 쓴소리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정치가들이 부디 좋은 정치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다. 나도 진보 성향이기 때문에 특히 진보파 정치가들이 올바른 정치를 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국회의원도 당선되고 대통령으로도 당선됐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앞으로 정진해야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한 줄로 감상평을 적는다면, 이 책의 표제를 정한다면, 나는 이렇게 정하고 싶다. ‘한국 진보파. 보고 있나?’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한 독자 한 명일지라도 한 번쯤 서평에서 내 목소리로 일침을 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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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개정신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nd Review

 

 

  같은 책의 두 번째 서평이라니. 책을 읽은 세월이 별로 길지 않지만 이런 글쓰기는 처음이다. 처음에는 새 책이라 반질반질하던 책이 몇 년이 지나고 보니 페이지가 누렇고 꼬질꼬질해졌다. 책 속에 내가 넘긴 페이지의 손때가 묻어 있고 중간 중간 적어놓은 메모가 보인다. 그리고 벌써(?)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까지 나와 보니 정말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내가 초판으로 읽었던 이 책은 이젠 절판이라니! 갑자기 내가 나이 먹은 기분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책을 읽었다.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에서. 책의 중반 정도를 읽고 있는데 다시 눈물이 났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울고 있는 것을 들킬까봐 내 긴 머리로 눈을 가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이 책을 읽고 또 다시 울었다는 점에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또 울 것을 알았다는 것처럼. 나 참. 이 책을 몇 번이나 보며 울었으면서 또 눈물샘이 열렸다니.

 

  책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자기 자신을 미워했던 무늬만 교수 문유정과 역시 자신을 미워했던 사형수 정윤수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로 자신을 용서하는 내용이다. 물론 책 위의 소개는 말도 안 되게 추상적이고 완전히 이 책을 읽었던 나만의 줄거리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대외적으로 알려진 큰 주제 ‘사형제 폐지’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폭력. 그 폭력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더 큰 폭력.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자기혐오와 그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과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좋은 소설책이라는 무엇인가. 내 짧은 생각으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진심이 느껴지는 책과 자신을 책에 투영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 작가가 굳이 코멘트를 하지 않아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는 책. 그리고 책을 보고 있으면 내가 느껴지는 책. 즉 몰입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조건은 말은 쉽지만 쉽게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이 때문에 작가는 천재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 눈으로 보자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이 두 조건에 만족한다고 생각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사형의 본질이 왜 복수인지, 무엇이 사람을 괴물로 변하게 만드는지, 왜 사랑은 그토록 위대할 수 있는지 텍스트를 따라가면 저절로 내 마음을 두들겼고 등장인물(특히 문유정)이 너무나 나 같아서.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들, 속마음이 너무 내 자신의 이야기 같아서. 등장인물들을 너무나 이해하게 되는 딱 내 기준에 적합한 소설이었다.

 

  특히 윤수의 사형 집행을 알게 된 유정이 자신이 가장 할 수 없는 것. 엄마를 용서한다는 말을 하려고 엄마의 병실로 들어갔던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 분명히 책을 읽던 중 가장 많이 울었던 부분이었지 않았나 싶다. 자신을 성폭행한 사촌오빠보다 더 용서하기 힘든 사람은 사실 유정의 엄마가 아닐까. 성폭행 당한 직후 엄마에게 아픈 몸으로 고백했을 때 유정은 엄마가 당연히 위로해 주고 당연히 자기편이 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의 반응은 싸늘했고 위로는 커녕 잔인한 말로 유정을 두 번 죽였다. 그 때 유정이 느꼈을 싸늘함, 분노가 나에게도 가슴 깊숙이에서 올라왔다. 그런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엄마를.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마 방에 찾아와서 용서하려고 하는 유정을 보고 말도 안 되는 울분이 내 자신에게 똑똑히 전해졌다. 그렇지만 그런 유정의 기분을 아랑곳하지 않는 엄마는 어이없어 했다. 너무 격양될 수밖에 없는 감정을 가지고 울고불고 하며 엄마를 찾아왔지만 ‘누가 누굴 보고 용서한다고?’의 반응을 보이는 엄마를 보고 아마 유정은 세 번 죽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 혼란스러운 중학교 시절을 조금 더 밝게 비춰준 아주 고마운 책이다. 중학교 때 읽은 이 책은 내 자존감과 사고방식 뿐만 아니라 먼 미래. 그러니까 2012년의 나를 지금의 의식 형태로 만들어준 조물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책이라는 것은, 독서라는 것은 위대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 한 권의 책이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성장 과정의 조물주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조물주. 신神인 것이다. 어째서 유명인사들. 과거의 위인들이 책을 즐겨 읽지 않은 사람이 없고 책벌레가 아니었던 사람이 없었는지를 나는 정확히 통감한다. 딱 한 권의 책인데도 내 평생의 의사소통의 바탕을 만들어 주지 않았는가.

 

  끝으로 이 책을 집필해준 공지영 작가께 감사하다. 또한 이 책을 읽고 울고, 웃고, 괴롭고 힘들어도 여기까지 버텨준 나에게 감사하다. 부끄러운 삶이지만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준 이 책의 주인공 문유정처럼 죽지 않고 살아준 나에게 감사하다.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겠다고 마음 속으로 100번 외친 뒤 이 리뷰를 마친다.

 

 

 

 

 

 

 

 중학교 재학 시절 썼던 첫번째 리뷰

 

 

 

 

 

 

 

  요번 네이버 북카페 정팅주제가 '되고싶은 주인공'이었다. 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줄여서 우행시)의 주인공 유정을 떠올렸고, 서평을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도 울었던 책이었는데 나도 서평으로 보답을 해야지... 뭐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이 책을 가지고 사형제를 운운하는 것은 뭔가 좀 아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 서평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한 말을 일체 안할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의 중요한 핵심은 '구원'이다. 가톨릭, 혹은 개신교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이 아닌 인간들의 구원. 내가 느낀 바로는 이 이야기는 평범한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대해서 볼 수 없다. 그들은 애인이 나누던 사랑을 나눈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과 사람이 나눌 수 있는 가장 진솔한 사랑을 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 해본다.

  여기 사람과 세상앞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사형수 윤수와 대학교수 유정. 한 사람은 말못한 중죄를 저질렀고, 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감당치 못한다. 그들은 찌그러지고 일그러져 있었다. 윤수는 조소로 세상을 버텨나가고 있었고, 유정은 위악으로 세상을 버텨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세상이, 혹은 신이 자신들을 철저하게 배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란 이들에게 먼세상 얘기일 뿐...

  그런 그들이 만났다. 마음 문을 열고, 소통하기 시작한다.

  누가 좀 빨리 들어주었다면, 귀기울였다면 좋았을 진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느낀다.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그들이 아직 위악으로 똘똘 뭉치기 전, 그러니까 상처받은 순수한 영혼일 때 누군가가 들어주었다면, 달래주었다면 더 좋았을, 그런 껴안음을 시작한다.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해 줄 사람은 역시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치료해 줄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공지영 특유의 담백하고 담담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해 주셔서 새삼 감탄했다. 그리고 은근슬쩍 놀랐다. 다른 사람이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게 공격적인 유정이가 나에게 그렇게 와닿는, 나와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인물일지는 몰랐다. 무엇 때문일까, 왜 나만 이리 많이 아플까, 하는 어리석은 마음? 상처때문에 비틀어져 버린 위악? 난 아직도 모르겠다.



엉망이었던 사람. 문유정, 그리고 나.
내가 처음 이 책을 읽고 엉엉 운 이유는
처음으로 내가 나와 맞닿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유정이의 면이 있다는 점을 나는 부정할 수 없다.

책을 읽던중 했던 메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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