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화제의 드라마 추적자 더 체이서를 기억한다. 권력과 욕망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딸을 원조교제와 마약복용을 하는 불량학생으로 만들어 버린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여 결국 딸의 무죄를 밝히는 내용이었다. 전 국민의 혈압을 상승시킨 드라마며, 손현주를 이견 없이 그 해의 SBS 연기대상 수상자로 만들어 준 드라마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를 나도 흥미진진하게 봤는데 3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두 장면이 있다.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극 중 백홍석이 PK준의 재판현장에 난입하여 PK준과 몸싸움 끝에 살해하는 장면이었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회 때 “제 죄를 알고 처벌 받겠습니다. 이 모든 일이 죄를 짓고 벌을 받지 않으려다가 발생한 일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심신미약으로 인해서 형이 감형될 수 있는 기회를 자발적으로 거부한 장면이었다.
가장 강렬했던 장면. “지금부터 내가 검사고 이 총이 판사다.”라며 총을 발사하고 PK준을 압박하던 씬을 보고 있던 중에는 아마 옆에서 불이 났다 해도 화재가 발생하였는지 모르고 계속 TV를 시청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손현주의 연기, 재판장의 분위기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다른 어떤 것에도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장면은 인상적인 장면인 마지막회 장면일 것이다. 심신미약, 판단력이 흐려진 상황이라는 유리한 변론을 한다면 많이 감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홍석은 내가 원한 것은 자신의 무죄가 아닌 딸의 명예회복이었다면서 오히려 판사에게 진실에 입각한 정확한 판결을 맡겼다. 그 결과 백홍석의 딸 수정이는 명예회복은 물론 사법 피해자구원 법의 명칭을 ‘백수정법’으로 제정했다. 살인과 같은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인간의 정의와 올바름을 위한 교훈을 주는 장면이 내 가슴 속에 더 오래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리뷰하고자 하는 펀치는 바로 이 추적자 더 체이서의 작가 박경수 작가가 차기작 드라마 황금의 제국 이후에 집필한 권력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부패검사였던 대검찰청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장 박정환이 뇌종양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자신이 없을 미래를 살 가족을 위해 자신보다 더 나쁜 놈들과 싸운다는 이야기다.
언뜻 보면 짧은 줄거리지만 자신이 없을 미래를 살 가족이 더 나은 세상을 살 수 있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나쁜 놈들을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19부작의 여정은 결코 짧지 않았다. 박정환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더 높이 있는 이태준. 특히 윤지숙은 박정환의 계획을 막고 박정환을 힐난하고 조롱했다. 조롱하는 이들을 보며 좌절하는 박정환을 보면서(박정환도 원래 부패검사였지만) 정의가 지켜지는 사회가 얼마나 힘든지. 정의나 도덕을 조금만 포기하면 얻어지는 달콤한 누리는 소득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눈을 감는지를 생각했다.
중학교 때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따돌림이나 왕따 같이 무리에서 소외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1학년에 입학하고 친해진 친구가 뚱뚱하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속적으로 왕따를 당하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선택한 행동은 그 친구와 같이 다니지 않고 멀리 하는 것이었다. 학기가 진행된 후 국어 시간에 생각발표를 했는데 그 때는 이미 같은 반 모두가 그 친구를 놀리고, 왕따 시키고 놀지 않게 된 때였다. 아이가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 그 내용이 친구를 갖고 싶다고, 어울리고 싶다고, 특히 내 이름을 말하며 나와 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친구가 왕따라는 사실을 알고 바로 그 친구를 내쳤는데, 내친 후에는 내 거짓말에 그 친구를 이용해서 억울한 일을 당하게까지 했는데 놀아주는 동무 하나 없는 아이는 나와 놀고 싶다고,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 울며 고백했다. 하지만 나는 이후에도 그 친구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1년 쯤 뒤 거짓말에 널 이용해서 미안했었다고 사과한 것이 다였다.
사람은 모두 크기는 다르지만 권력은 갖고 있다. 중학생 신분의 여자아이에게는 무리, 그룹에 들게 해주고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일종의 권력인 것이다. 교실에서 오후 4시가 넘는 시간 동안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고 오히려 비웃고 무시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권력으로 찍어 누른 것과 같다. 극 중 윤지숙과 이태준도 그런 행위를 한 것이다. 게다가 윤지숙은 법무부장관, 이태준은 검찰총장이기에 그 권력의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다치는 내상이며 외상이 엄청나다. 단지 드라마 한 작품을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완벽한 대본과 신중한 연출이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당신, 마지막까지 내 남편으로 살아. 난 당신 부인으로 싸울게."
드라마 막바지 전남편이었던 박정환의 혼인신고서에 다시 자신의 이름을 올린 신하경이 한 말이다. 박정환과 이혼 전에 신하경은 이혼서류와 이태준 압수수색 영장 둘 중 하나의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요구했다. 박정환은 압수수색 영장에 도장을 찍으려 했으나 비리 조사 중 이태준이 보여준 의리에 감동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끝없는 비리를 저지른다. 일종의 선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몇 년 후 박정환이 뇌종양에 걸리고 싸움을 시작하면서 신하경이 박정환과 상징일 뿐이지만 재혼을 한 것도 선택이었다. 박정환이 싸움을 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결과다.
이처럼 우리는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윤지숙이 아무리 없애려 해도 증거물들이 기어 나왔던 것처럼 선택의 결과는 삶으로, 증거로 남는다. 박정환은 물론 신하경도 완벽한 성인군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투가 쉽지 않았기를 알기에. 무엇보다 싸우기로 마음먹고 행동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모든 것이 밝혀지고 단죄되기 전에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박수 보내고 싶다.
"법은 하나입니다. 나한테도, 당신한테도.“
나만 빼고 모든 사람에게 법은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들의 병역비리를 축소시키고 결국 뺑소니까지 낸 윤지숙에게 한 박정환의 명대사가 귓가를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