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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황정은의 첫번째 소설집이라고 한다. 여러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내게는 크게 두 개의 범주로 다가온다. <문>, <모자>, <곡도와 살고 있다>, <오뚝이와 지빠귀>가 하나의 범주이고,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마더>, <소년>이 또다른 하나의 범주이다.
구체적으로 전자는 환상의 세계이고, 후자는 척박한 현실 세계이다.
황정은의 '환상'의 세계는 판타지라고 말하는 상상의 세계, 나의 욕망이 실현되는 세계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물론 M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등 뒤에 남이 볼 수 없는 문이 하나 있어서 때때로 이 문이 열리게 된다는 설정, 자주 '모자'가 되어버리는 아버지, 지빠귀로 변해서 미운 말을 하는 사람들을 쪼아버리고 싶지만 '오뚝이'로 변해버리는 이야기처럼, 현실의 고통을 피해 사물로 변해버리기는 하지만, 이 주인공들은 '변신'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망각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쩐지 이런 환상의 세계는 도저히 변신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도달하게 되는 상태여서 척박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과 구분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황정은의 개성은 이런 변신 혹은 환상의 세계를 너무나 능청스럽게 드러냄으로써 어쩐지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린다고나 할까
그래서 지금은 척박한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후자의 주인공들이 조만간 환상의 세계로 건너가 물병으로 에어컨으로 변신해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마더>의 '오'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지만, '마더'라는 아주 늙은 개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어느 누구보다 진지하다. 그를 낳은 여자는 코끼리와 오리가 그려진 종이가방에 그를 담아 전철에 버렸고, 수업 중에 볼펜을 시끄럽게 딸각거렸다는 이유로 수차례 뺨을 때린 고등학고 시절 독일어선생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다. 자살 사이트의 회원이기도 한 그는 불안하고 고독하다. 그리고 <소년>속의 소년까지...
도대체 왜 이런 끔찍한 세상이 존재하지는지, 왜 세상은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 것인지...
m의 등 뒤에는 남이 볼 수 없는 문이 하나 있었다. 때때로 이 문이 열렸다. - P9
세 남매의 아버지는 자주 모자가 되었다. 일단 모자가 되면 언제 아버지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 P39
외삼촌은, 자기를 괴롭힌 사람의 다트를 응시하느라 자기 속의 다트를 보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외삼촌이 우리에게 한 일에 대한 몫은 완전히 외삼촌 한 사람만의, 자발적인 몫인 거야.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다트를 계속 지켜보자, 나는 생각했어.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 내가 하려고만 하면 뭘 할 수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했어.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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