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 강남 성형외과 참여관찰기
임소연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평점 :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을 읽고 관심이 생겨 찾아 읽은 같은 저자의 책인데, 오히려 더 흥미진진한 책을 발견한 기분이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이 "과학기술이 사회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과 그 의미를 인문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살피는 학문"(15쪽)인 '과학기술학'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면 이 책의 성격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성형과 과학기술의 관계 및 사회적 의미를 다루고 있으니 역시 과학기술학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저자 자신이 직접 성형외과에서 벌어지는 성형수술의 참관자이자 체험자가 된다는 측면에서는 사회인류학적 성격도 있는 것 같다. 또한 개인의 경험과 몸(신체)에 대한 사유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아주 독특한 에세이로 볼 수도 있는 것 같다. 이 글의 성격을 규정할 능력은 없지만, '성형'이라는 연구 주제를 이론적, 사회문화적으로 다루는 것을 넘어 개인의 경험을 통해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저자가 말하는 성형을 통해 얻게 되는 '사이보그'라는 몸은 단순히 기술과 몸이 결합하는 순간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성형 후 오랫동안 몸과 타협하고 협상하며 몸을 돌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에 저자는 "성형 수술을 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성형외과의 코디네이터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관찰한 의사,간호사,코디네이터와 환자로 구성되는 '성형외과'라는 공간과 한국 사회라는 더 큰 맥락 속에서 '성형(경험)'과 '성형한 여자'의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과학기술, 가부장제라는 이데올로기, 페미니즘과 자본주의(성형의료산업), 몸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트랜스휴먼은 이 책의 주요 키워드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성형' 세계의 내부로 들어간 느낌이다. 이전에 성형의 경험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성형의 욕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형의 세계에 예뻐지고 젊어지기 위한 성형 혹은 성형 전과 후의 놀라운 변화를 떠올리게 하는 성형 패러다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형 전후의 '조정'과정이 필수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바로 저자가 "성형수술의 문제는 치료와 치유의 문제이자, 인간 향상의 문제이기도 하다."(224쪽)고 강조하는 이유이다. '성형대국' 한국에는 다양한 성형의 경험을 진지하게 다룬 "기술과 몸의 결합에 대한 이야기"(231쪽)가 더 많이 필요하다.
건강과 젊음 혹은 정상성의 정의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하는 실증적인 연구와 담론이 필요하다. 개개의 몸은 모두 다르고 다양하기에 몸을 하나의 잣대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규정 자체를 그만두자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치료받고 개선되어야 할 몸들이 있고, 그 몸들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상성‘의 기준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정의, 더 많은 자료와 설득 방법이 있어야 한다. - P39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형수술의 결과는 대부분 성공이나 실패가 아닌, 그사이의 넓은 스펙트럼 어딘가에 속한다. 성형미인이 모두 똑같이 생겼다고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러한가? 이론적으로 100퍼센트 예쁜 얼굴과 0퍼센트 예쁜 얼굴(못생긴 얼굴)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예쁜) 얼굴이 존재할 것이고, 성형 후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다. - P188
몸의 보편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몸을 가지고 있으며 21세기 현대사회에서는 그 어떤 몸도 순수할 수 없기에 우리는 모두 포스트휴먼이다. 그러니 포스트휴먼 시대의 에티켓은 자기와 다른 몸을 가진 타자, 다양한 이유로 과학기술과 결합한 포스트휴먼 타자에 대한 시혜적인 존중이나 배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역시 포스트휴먼이라는 자각과 연대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 P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