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불행, 슬픈 불행, 두려움, 슬픈 두려움...

불행과 슬픔이 그림자처럼 내 몸에, 삶에 붙어서 아픔이 된다. 이 그림자는 어느 순간 일어서서 내게 다가오고, 내버려두면 나를 덮칠 것이다. 그러나 "그림자가 일어서더라도,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면" 된다고, 소설은 말한다. 그런데 일어선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으려면 어쩐지 꼭 같이 걸어줄 동반자가, 사랑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혼자라면 아무래도 너무 외로워서 그림자라도 따라가려 할 것만 같다.

 

슬프고, 서글프고, 서늘하면서도 배가 따뜻해지는 그런 소설,

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사려깊은 상징들과 잊을 수 없는 문장들이 만들어 낸 일곱 개의 절(節)로 된 장시(長詩)"같은 소설이다. 그래서 사실은 이 짧은 장편 소설 전체가 다 하나의 문장 같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어딘가에서 다름없는 자신의 모습을 목격했다면 그것은 그림자, 그림자라는 것은 한번 일어서기 시작하면 참으로 집요하기 때문에 그 몸은 만사 끝장, 일단 일어선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고는 배겨 낼 수 없으니 살 수가 없다, 는 등의 이야기를 아무 곳에서나 불쑥 말하곤 하다가 그는 귀신 같은 모습이 되어 죽고 맙니다.
죽나요.
죽어요.
그렇게 간단하게.
간단하게 죽기도 하는 거예요, 사람은.
...... 내 그림자도 그토록 위협적인 것일까요? - P20

따라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완만한 고개에 올라서자 멀리 떨어진 곳에 가로등이 보였다. 세 개의 가로등이 또 다른 모퉁이를 향해 점점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로 내려갔다. 불빛의 조그만 언저리 바깥은 대부분 어둠에 잠겨서 공중에 떠있는 길을 둥실둥실 가는 듯했다. 귀신일까요, 우리는, 귀신일지도 모르죠, 이 밤에, 또 다른 귀신을 만나고자 하는 귀신. 하고 말을 나누며 탁하게 번진 달의 밑을 걸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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