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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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연금술사'이후로 처음이네요. 파울로 코엘료의 명성이나 작품 수에 비한다면 이렇게 안 읽을 수가 없는 것인데...ㅠ.ㅠ.

'연금술사'는 뭐... 전세계인의 필독서이자 세계인의 심리적 각성을 일깨운 책이니까 굳이 첨언이 필요없지만... 이번에 만난 '스파이'는 제 기대치에는 많이 모자라네요...

소설은 이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감옥에 수감중인 마타 하리의 최후의 순간을 묘사합니다. 담담하고도 당당한 죽음... 그리고 소설은 그녀를 변호했던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합니다. 마타 하리는 이 편지가 자신이 죽고 난 후 홀로 남겨질 딸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그녀의 인생과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결혼을 위해 이국적인 인도네시아 자바 섬으로 떠난 마타 하리. 그러나 낯선 문화, 남편의 방탕한 생활, 아들의 죽음 등 평탄하지 않았던 결혼 생활을 이혼으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그녀는 파리로 향합니다. 그리고 천둥벌거숭이와 다름없는 처지에서 그녀는 이국적이고 신비한 동양적 춤으로 파리문화계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뒤이에 따라오는 명성과 부...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그녀와 가까이 하고자 노력합니다. 파블로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 파리에서의  화려한 성공... 하지만 화려한 불꽃은 사그라지고 파리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던 그녀는 독일로 향합니다.

 

마타 하리(여명의 눈동자 혹은 새벽의 눈의 의미를 가진 인도네시아어입니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영화로도 뮤지컬로도 그리고 책으로도 그녀의 생애가 많이 조명됐기 때문입니다. 스파이 혹은 이중 스파이의 대명사, 치명적인 팜므 파탈 등 그녀를 가리키는 말도 많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마가레타 거트루이다 젤러

(Margaretha Geertruida Zelle). 네덜란드 출신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로, 다시 파리로 그리고 독일로... 파란만장한 인생입니다.

그녀는 암호명 'H21'이라고 불리는 독일 스파이로 프랑스 정관계의 고급정보를 독일 측에 팔아 넘겼다는 혐의로 체포되고 결국 사형에 처해집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는 스파이였는지 시대의 희생양이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1999년 비밀 해제된 영국의 제1차 세계대전 관련문서에는 마타 하리가 군사 정보를 독일에 넘겼다는 어떤 결정적 증거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합니다. 그러나 마타하리는 여전히 스파이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을 뿐이죠.

파울로 코엘료가 마타 하리에 주목한 것은 삶의 어느 순간에도 자유롭고 독립적이고자 노력한 여성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이고, 무엇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훗날 내 이름이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 치러야 할 대가를 당당히 치른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29쪽) 이 문장에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소설을 읽는 내내 (최소한 저에게는) 시대를 앞서간 용기있는 여성의 모습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도... 제 독해력의 부족이 큰 이유이겠지만 작가가 마타 하리를 선택한 이유가 제게는 와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본 마타 하리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알고 이를 지극히 잘 활용한 여성일 뿐입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당시 사회에(특히 남성들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최대 무기는 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실천한 인물이었습니다. 특유의 관능미와 신비함(여기에는 그녀의 거짓말도 한몫했으리라 생각됩니다.)으로 파리문화계를 주름잡던 그녀가 니진스키를 비롯한 신진들에게 밀려나고 그 화려함을 다시 찾기 위해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을 찾아 떠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녀와 관계를 맺던 수많은 남성들은 결코 그녀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녀의 마지막에 가서 어떤 남성도 그녀를 편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볼 때 말이죠. 결국 육체와 육체가 얽힌 관계였을 뿐이겠죠. 이런 점을 볼 때 작가가 생각한 '용기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이란 판단에 동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책은 마타 하리와 그녀의 변호사 클뤼네의 편지 형식으로 진행됩니다.(1, 2부-마타 하리, 3부-클뤼네) 편지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속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것이 상황이든 생각이든. 즉 사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서술되는 편지 형태의 글은 독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타 하리의 글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개인적 변명으로만 생각됩니다. 내가 무죄이다를 말하면서 그 타당한 근거가 희박합니다. 물론 전쟁의 광기 속에서 희생된 가녀린 여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인생을 살다 좌절된 한 개인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그리고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라면 그닥 할 말이 없지만...

어쩌면 편지 형식이 아닌 장면 중심의, 대화 중심의 내용 전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 더 상상의 여지가 크지 않았을까 읽기의 흥미가 배가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극히 사념적인 전개 위주의 글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명성에도 다소 미치지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

그럼에도 눈길을 머물게 한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잠시 읽기를 멈추고 머릿속 잔상도 잠시 흩어 뿌리는 그런 문장들...

 

사랑은 범죄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우리를 갑자기 앗아갑니다.(82쪽)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는 길을 잃는 법도 없습니다.(86쪽)

인생은 왜 나로 하여금 그토록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일을 겪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힘든 순간들을 견딜 수 있는지 보기 위하여.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기 위하여. 내가 무언가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지만 그러기 위해 다른 방법, 다른 길이 있었을 것입니다.(125쪽)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무리 공포스럽다 해도 이 숲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고 나는 저편에 다다르려 한다는 것이지요. 승리가 왔을 때 나는 관대할 것이고 나에 대해 온갖 거짓말을 한 이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126쪽)

 

나는 행복을 찾았던 게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이 말하는 ‘라 브레 비La vraie vie’, 진정한 삶을 원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깊은 상심의 순간들이 함께 있고, 충성과 배신, 두려움과 평화의 순간들이 공존하는 진정한 삶. (157쪽)

'... 당신은 사랑을 철저히 불신하고 굴복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아무게게도 복종하지 않고 그 신비를 해독하려는 사람을 배신할 뿐입니다.'(208쪽)


파울로 코엘료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미 읽었을, 그리고 상대적으로 만족도도 높았을 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작품이나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다만 저에게는 많이 아쉬운 작품, '스파이'였습니다.

 



나는 내가 언제나 전사였으며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 나의 전투를 치러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전투들은 삶의 일부였습니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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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개정증보판 달인 시리즈 1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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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유명하신 분이지만(특히 '열하일기' 연구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고미숙 선생님의 글을 처음 읽어봅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선생님의 주분야인 고전 관련 책이 아니라 달인 3종세트라 칭하는 책 가운데 한 권입니다. 교육 현장에 있다보니 아프게 다가오는 내용들이 꽤 됐습니다.

 

책은 프롤로그, 1부-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2부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3부-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 에필로그로 구성됐습니다.

 

개정판의 머리말로 글을 시작합니다.

'헛된 꿈에서 깨어나는 것, 그것이 공부다... 매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존재, 어디서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 언제든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존재, 그것이 곧 청춘이다. 고로 공부하니까 청춘이다!' 청춘이기 때문에 공부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기에 청춘입니다. 책에서도 계속 언급하지만 공부하는 삶에는 나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고 언제 누구에게서나 배울 수 있는 용기. 이것이 청춘의 특권이자 공부의 특권입니다. 이렇게 따지면 우리의 인생 모든 장면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될 것입니다.

 

저자는 공부는 '자유에의 도정(40쪽)'이라고 합니다. 인식의 프레임에 갇히는 지식이 아니라 그 인식의 틀을 벗어나는 공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발판이 바로 공부가 될 것입니다. 자본과 권력이 요구하는 틀, 무엇보다 자신의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공부가 진정한 공부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자본과 권력이 요구하는 틀이란 뻔한 것입니다. 기존의 제도의 습속의 굳건한 유지지요. 이를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공부를 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결국 현 상황, 현 체제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회의, 이를 통한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바로 공부의 길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던지는 문제 제기는 충분히 의미가 있고 특히 학교교육에 던지는 비판은 통렬합니다. 공부에는 때가 있으니 학창시절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 독서와 공부는 결코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 그렇기 때문에 자율학습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을 금지하는 전국의 수많은 학교들. 그리고 창의성 진작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실시되는 시설 개선과 서비스. 구체적인 내용과 철학없이 시행되는 전시행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교사와 정부 사이에 이미 신뢰라는 단어가 무너진 현실의 풍경일 뿐입니다. 현장에 근무하고 있기에 이런 지적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암송과 구술을 바람직한 공부법으로 제시합니다. 낭송이란 '일상적으로 자기안의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이며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을 터득하는 방법이고 사람에 대한 입체적'(102쪽)인 관점이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나 문맥을 서사적으로 재현하는 능력'(107쪽)인 구술은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지평을 넓힐 수 있'(107쪽)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지식과 몸의 소외가 극복'(102쪽)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결국 귀결점은 고전으로 향합니다. 고전을 바탕으로 한 읽기와 쓰기. 거기에 더하는 자유로운 사고. 이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공부의 핵심입니다. 또한 '생각의 지도를 변경하고 삶의 행로를 바꿀 수 있는'(143쪽) 글쓰기를 주장합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비우고 체력과 끈기, 오기와 집요함이 있다면 진정한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결국 공부는 몸이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몸보다 더 확실한 실존의 현장은 없다'(153쪽)고 저자는 단언합니다.

 

'자신이 평생 뭔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평생 공부의 즐거움을 누려야 마땅하다.'(191쪽)

흠... 절로 자기반성을 이끄는 문장입니다. 과연 나는 공부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름 책을 읽고 공부한다고 하지만 그 바탕에 즐거움이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의무적으로 때로는 시간 때우기식의 독서 혹은 공부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즐거워야 배우는 학생이 즐거울 것입니다. '배움의 열정을 촉발하고 전염시키는 배움의 헤르메스'(194쪽)가 되어야 하는 스승.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앎이란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213쪽)이라고 합니다. 공부를 하는 것은 결국 현실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일상을 주체적으로 영위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일치 여부를 떠나서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앎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부란 것은 당연히 끝없이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인간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고 공부를 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 그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은 지가 한참 지나서 내용이 가물가물합니다. 요즘의 독서가 이렇습니다. 찔끔찔끔 읽어나가니 시간은 오래 걸리고 앞의 내용은 망각의 늪에 빠집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글읽기가 안 되고 당연히 글쓰기도 요모양 요꼴입니다. 내 머리 속에서 뭔가 글의 전체적인 틀이 마련되고 그 틀을 채우고 틀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글쓰기기 되어야 하는데 요새의 글쓰기는 너무 먼 얘기입니다. 각성해야 하는데 여전히 몸 따로 마음 따로의 삶입니다. 몸의 피곤함은 분명하지만 그 피곤함을 변명삼아 너무나 안일하게 살아가는 일상... ㅠ.ㅠ.

 

무척 잘 쓴 책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일단 저자가 제시하는 문제점은 분명 공감하지만 그 속에서 제시하는 공부의 방법은 현실과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몸을 통한 공부, 평생을 통한 공부란 주장은 당연하고도 당연합니다. 어쩌면 제도 교육 외곽에서 들려온 작은 외침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큰 반향을 가지지 못하는...

 

‘앎이란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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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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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가장 오래 걸려 읽은 책은 분명합니다. 책의 두께도 장난아니거니와(무려 554쪽에 이릅니다.) 무엇보다 같은 듯 다른 내용이 연속되어서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내용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전쟁에 참여했던) 여자들이 말하는 전쟁을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니 책의 내용은 대부분 저자와 여군(이었던)과의 인터뷰입니다.

 

책에서 언급하는 전쟁은 2차 세계대전입니다. 그 전쟁에 참여했던 200여 명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아직은 모르는, 친구와의 수다나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에도 부족했던 그 청춘의 시기에 전장에서 전투를 치른 이들의 목소리. 더구나 여인의 목소리. 쉽게 만날 수 없는 장면입니다. 그들의 육성을 듣다보면 가슴 먹먹한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두려움없이 적과 맞서고 동료를 챙기고 부모와 가족을 그리워하고 사랑도 합니다. 당연히 가장 많이 만나는 장면은 죽음입니다. 그 죽음을 서술하면서 인터뷰어도 울고 독자는 눈물을 머금게 됩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거의 대부분의 여성(소녀가 맞는 표현입니다.)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오히려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입대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발적 애국심인지 이념의 영향인지 군중심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애국심이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많은 여인들이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일상적인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입대를 거부하는 정치위원회에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거나 제 발로 찾아가서 입대를 간청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의 입대에는 뭔가 신비로운 느낌도 강하게 듭니다.

 

인간 역사는 승리자의 역사, 남성의 역사입니다. 그 역사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책.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단 전쟁에 참여했던 여성들로부터 그들의 목소리를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의 전쟁을 당국은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 책에서도 저자는 책 발간에 대한 압력과 협박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인터뷰 내용을 거르고 걸러서 탄생한 책. 노벨문학상 수상(2015년)은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1940년대는 이념의 광기가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무차별적인 전쟁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는 뒤로 밀려났습니다. 그것이 파시즘이든 나치즘이든 군국주의든 간에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기만의 언어 아래 인간 개체는 어디에도 설 수 없었습니다. 이는 전쟁의 또다른 축이었던 연합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고 패자는 정치, 경제적으로 수모를 당했습니다. 승자는 잔치를 베풀고 저마다의 무용담을 나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여자는 당연히 설 자리가 없었을 테구요. 승리자의 역사, 남성의 역사에서 사라진, 아니 이전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여인들의 목소리를 지상으로 끌어내 활자화했다는 것 자체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일 것입니다. 알면서도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았던, 숨 죽였던 여인들의 목소리가 이제 활자 속에서 큰 울림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전쟁이란 폭력의 상황에서 여성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일단 육체적 역량에서 남성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을 떠올려보면 여성의 자리는 없는 것이 타당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2차 대전에서 그녀들은 적군을 죽이고 동료가 죽는 장면을 수없이 보게 됩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입대를 했기 때문에 전쟁 도중 여인의 징후를 만나기도 하고 키도 훌쩍 자랍니다. 거칠고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상황의 연속이기에 여성의 징후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죽은 동료를 제대로 매장도 하지 못하고 혹독한 추위 속에서 행군도 해야 합니다. 배급받은 전투복과 전투화는 너무 크고 머리도 짧게 잘라야 합니다. 전쟁이라는 아수라장 속에서 더이상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체적으로 여성이지만 정신적, 현실적으로는 남성으로서 그 억압과 폭력의 현실을 견디고 이겨낸 여성들. 하지만 전쟁 후에는 전쟁에 참여했다 떳떳하게 말할 수도 없는 현실입니다. 어떤 남자가 나같은 여자를 신부로 맞아 들일 것이며 내 이웃들과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탄식하는 그녀들의 목소리... 마음을 울립니다. 그녀들은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전장에서 전투를 치르고 여전히 약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포성이 울리는 곳만이 전쟁터가 아니고 사람과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근들은 여전히, 아직도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상당히 더뎠습니다. 꼼꼼히 읽어서이기보다는 같은 듯 다른 내용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의 전쟁과 일화, 분명히 다른 내용이지만 그 본질적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분명 다양한 상황, 다양한 시선으로 전쟁을 이야기하지만, 그렇기에 분명히 다른 내용이지만 반복되는 인터뷰 속에서의 기시감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니 집중도도 떨어집니다. 정말 오랫동안 책을 읽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꽤 읽은 것 같은데 제자리...ㅠ.ㅠ. 상당한 인내와 집중력을 가지고 읽어야 할 책입니다.

 

수많은 전쟁참전 여인들의 육성... 그렇기에 가슴에 다가온 문장들이 참 많습니다. 그 문장들로 마무리합니다.


전쟁의 세상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세상이었고, 전쟁의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른 세상이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세상, 다른 세상 사람들은 정말 존재하기나 했던 걸까?(14쪽)


회상이란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 현실에 대한 열정적인, 혹은 심드렁한 서술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과거의 새로운 탄생이다.(19쪽)


죽음은 비밀은 그 어떤 것보다 우위에 있다. 전쟁은 지나치게 내밀한 체험이다. 우리네 인생살이만큼이나 그 끝을 알 수가 없다...(22쪽)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劇化)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31쪽)


나는 내가 겪은 일만 기억나. 내가 겪은 전쟁만. 주위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결국 사람은 혼자야.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나 홀로 죽음을 대면해야 하거든(65쪽)


나는 감정의 역사를 쓴다... 영혼의 역사를 쓴다... 전쟁이나 한 나라의 역사, 영웅들의 인생역정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삶을 살다가 거대한 사건의 깊은 서사 속으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작은 사람의 역사를 쓴다.(90쪽)


행복... 그건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적처럼 산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야(145쪽)


역사는 만들어졌지만, 낮뿐이 삶이었으며 기억도 짧았다.(192쪽)


내겐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인 많은 반면, 집사람에겐 전쟁에 대한 감정이 더 많아요.(198쪽)

전쟁도 우리에게 앙갚음을 했소... 우린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지만... 전쟁이 우리를 쫓아와 우리와 나란히 가고 있어요...(198쪽)


하느님은 총을 쏘라고 사람을 창조하신 게 아니야. 서로 사랑하라고 만드셨지. 어떻게 생각해?(224쪽)


그 일을 떠올리는 건 끔찍하지만 그 일을 기억하지 않는 게 더 끔찍하거든(225쪽)


난 들꽃을 보면 전쟁이 떠올라. 전쟁때 우리는 꽃을 꺾지 않았어. 꽃을 꺾는다면 그건 누군가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서였지... 작별을 고하려고...(252쪽)


그리 넓지 않은 이 작은 영토-한 사람의 영혼의 공간-가 역사보다 더 난해하다...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268쪽)


한편으로 고통은 앎의 특별한 형태는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삶에는, 특히나 우리네 삶에는 고통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전달할 수도 지켜낼 수도 없는 뭔가가 있다.(374쪽)


이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악은 끝이 없어 보인다. 나는 이제 더이상 악을 역사의 문제로서만 대할 수가 없다. 누가 나에게 대답해 줄 것인가... 무한정 되풀이되는 삶의 반복성에 대해 생각해본다.(479쪽)

 

 



또다시 두 개의 다른 세상, 두개의 다른 삶이다. 기껏 증오하는 법을 익혔는데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오래 전에 잊힌 감정들을, 잊힌 말들을 다시 떠올리야 했다. (511쪽)


지금 녹음되고 있는 거지? 역사를 위해, 그렇지?(5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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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마지막 그림 - 삶의 마지막 순간, 손끝에서 피어난 한 점의 그림
이유리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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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임박한 순간, 그들은 무얼 예감했고 무얼 그렸나?'

 

그림에 조예가 없지만(아니 조예가 없기에!)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림에 관련된 책도 좋아하고요.

오직 제목에 끌려서 산 책입니다. 화가가 남긴 마지막 그림에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떤 사연들이 숨어 있을까가 궁금해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은 4부로 구성됐습니다.

1 사랑, 그토록 간절했던 : 이중섭, 잔 에뷔테른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에곤 실레, 에드워드 호퍼, 나혜석 
2 부상당한 희망 : 빈센트 반 고흐, 프리다 칼로, 케테 콜비츠, 펠릭스 누스바움 
3 예민한 영혼에 드리워진 덫 : 폴 고갱,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마크 로스코, 장 미셸 바스키아, 잭슨 폴록
4 화려한 성공, 뜻밖의 최후 : 카라바조, 렘브란트,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당연히 알고 있던 내용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있었습니다.(새로운 것이 훨씬 많았지만...)

책은 화가의 마지막 그림을 소개하고 화가의 전반적인 생애와 몇 작품을 소개하는 식으로 구성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파란만장했던 19명 화가의 삶의 순간들을 만납니다.

이중섭의 '돌아오지 않는 강'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생각케 하고 에드워드 호퍼의 '두 코미디언'에서는 마지막을 함께 하는 부부를 떠올립니다. 한 사람은 평생을 아내와 아들들을 그리워하다 객사를 하고 한 사람은 아내의 희생을 바판으로 성공한 삶을 살다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화가의 그림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인생입니다.

 

최초의 근대여성화가이지 작가였던 나혜석은 한 사람(최린)을 잘못 만나 나락으로 떨어지고 한 사람은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캐롤 앤 라우리와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인생 최대의 후원자이자 멘토를 만나 인생역전을 이룹니다. 이렇듯 우리의 인생은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희비를 가르기도 합니다.

 

한편 장 미셸 바스키아나 잭슨 폴록처럼 자본주의의 탐욕에 의해 그 재능이 일찌감치 소진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화가들도 만납니다. 젊은 날의 감당키 어려운, 예측하기도 쉽지 않은 성공은 그들의 능력과 꿈을 소진시켰습니다. 알콜과 마약에 찌들은 그들의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너무나 짧고 강렬한 삶과 죽음이었기에 아쉬움만 가득합니다. 개인적으로 추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받아들일 그릇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다음과 같은 잭슨 폴록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내 그림은 중심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이 똑같은 양의 관심에 기초해 있다'(238쪽) 결국 그림의 형태에 상관없이 '자신의 느낌에 따라' 그림을 감상하면 되는 것입니다. 화가의 말과 생각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림이 전하는 그 느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책의 마지막에는 이름만으로도 그 존재감이 큰 화가들의 마지막을 소개합니다.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을 억제하지 못하고 도피생활끝에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카라바조, 재능만큼이나 낭비벽이 심했던, 화려한 젊은 날을 보내 묘비 하나 남기지 못하고 빈 손으로 떠난 렘브란트, 사랑과 미의 완벽한 모습을 형상화하다 종교화를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한, 부와 명예를 누리다 가난과 고독으로 스러져간 보티첼리,

동성애자이면서도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미켈란젤로. 외모콤플렉스를 가져기에(사소한 다툼으로 코가 무너져버린...ㅠ.ㅠ.) 이를 극복하고자  정확한 인체 비례와 대칭 구도로 조각된 작품들로 균형과 조화를 완벽하게 구현한 미켈란 젤로. 하지만 그는 20대 때 조각한 이상미의 극치 '피에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기시키는 '론다니니 피에타'를 통해서 다시 종교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19명의 화가와 그들의 마지막 그림... 그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나 빈센트 반 고흐였습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그의 유작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그의 마지막 작품은 생명력이 넘치는 '나무뿌리(미완성 유작)'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명력 넘치는 그림을 그리던 화가가 자살을 택한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반 고흐를 놀리기 좋아하던 세크레탕이라는 인물에 의한 타살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책에 소개된 그림 '나무뿌리'는 상당히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생명에의 예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림만 보면 그의 자살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점에서 프리다 칼로의 그림도 많은 생각을 안겨줍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붉은(핏빛의) 수박을 그린 그녀. 그리고 그림에 쓴 'VIVA LA VIDA(인생 만세)'. 평생 고통과 싸우며 산 그녀가 남긴 말이기에 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어떤 시련과 고통이 있어도 살아있기에 삶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삶이라도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고통을 견디기에는 쉽지 않았나 봅니다. 그녀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131쪽)'이라고 남긴 것을 보면 말이지요.

 

마지막이란 말은 언제나 아련한 슬픔을 줍니다. 끝은 또다른 시작이란 낭만적인 언사는 나이가 들수록 멀게만 느껴집니다. 책에 소개된 화가들 중 생전에 부와 명예를 누린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가 세속적 성공을 하지 못하고 죽었거나 성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혹은 성공을 목전에 두고 생을 마감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애잔함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뒤에도 그들의 그림은 남아 그들의 뛰어난 능력과 삶을 추억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흔히 '불꽃같은 삶'이란 표현을 씁니다. 이 책에 실린 화가들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이 아닐까 합니다. 남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추구하는 그림을 묵묵히 그린 사람들... 때론 세파에 꺾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예술혼은 그 자체로 불꽃입니다. 흐르는 물은 언제나 흐름을 지속하지만 타오르는 불꽃은 언젠가 사위어집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밝게 타올랐다. 그리고 불은 꺼졌다. 하지만 남은 불씨는 아직도 뜨겁다'(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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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견만리 : 미래의 기회 편 - 윤리, 기술, 중국, 교육 편 명견만리 시리즈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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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과 다큐를 결합한 KBS의 렉처멘터리 '명견만리'를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워낙 화제가 된 방송이다 보니...

실제 TV 시청은 한 번도 안했지만 책 내용만 보더라도 상당히 유익한 방송인 것 같습니다.

 

책은 전체 4부로 구성됐습니다.


1부 인구(Population)에서는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의 현실, 22세기,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의 인구쇼크, 모든 세대를 살리기 위해 젊은 청년층에 투자를 한 독일의 성공모델이 제시됩니다.

2부 경제(Economy)에서는 노동의 종말을 몰고오는 듯한 로봇의 공격(?)으로 인한 일자리의 소멸, 기업은 성장하나 고용은 늘지 않는 현실에서 자본주의는 어떤 진화의 모습을 보이는가? 그리고 저성장 시대의 소비와 정치 형태의 변화는 어떠한지를 소개합니다.

3부 북한(North Korea)에서는 북ㆍ중ㆍ러 기회의 삼각지대라 불리는 라선, 훈춘, 블라디보스토크를 소개합니다. 열강의 각축장이 된 이 이 기회의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얻을 수 있을까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새로이 등장한 북한의 신인류(장마당 세대, 돈주)를 주목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스펀지에 잉크가 스미듯 북한에 자리잡고 있는 시장경제의 상황이 상당히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4부_의료(Healthcare)에서는 유전자 혁명으로 인한 산업사회의 재편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령화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질병 중의 하나인 치매에 대한 각국의 대응책을 소개하며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을 소개하더라도 구체적인 통계 수치와 전문가의 의견, 세계 다른 나라들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이해가 잘 됩니다. 그리고 내용 자체가 -특히 인구 부분에서- 충격적인 내용도 종종 있어서 더욱 집중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현재의 출산율 1.19명이 유지될 경우 대한민국은 2500년 혹은 2750년이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국내 연구소(삼성경제연구소, 국회입법조사처)의 예측은 충격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인구 문제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이 사라지는 구조(65쪽)라는 지적과 아울러 독일의 성공적인 청년 세대에의 투자는 많은 시사점을 주는 대목입니다. 12년 공교육과 대학 4년을 보내고서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우리의 청년 세대, 취업을 하더라도 1/3은 비정규직인 세대, 신규 실업자의 70%가 20대 후반이라는 뼈아픈 현실은 우리의 미래가 그만큼 어둡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꺼리는 사회 세태에서 미래의 희망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조금씩 세대간의 양보와 타협을 통해서(특히 기성세대의 희생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보다 나은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성장률과 고용률의 격차가 점점 커지는 '뱀의 입(Jaws of the Snake)'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률은 여전히 상승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고용률은 갈수록 떨어지는 시기. 결국 기술의 발전이 고용의 불평등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소비자 자신이 지불하는 운동화 가격 속에 한 사람이 노동이 들어있다는 것은 보여주는 '뉴발란스'의 실험, 제3세계로 이전했던 공장들이 다시금 본국으로 돌아오는 미국 사회, 코닥이 망했어도 여전히 번성하고 있는 로체스터 등의 사례를 보면서 인류의 진화는 결국 공존의 틀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알 수 있습니다.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를 잇는 장치이며, 나와 타인이 하나의 공동체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증명하는 시스템(151쪽)이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의 6시간 노동과 구글의 4일 근무(40시간 노동) 등의 실험은 일자리의 나눔과 여가의 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자구책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스웨덴의 실험은 예산 문제로 2년간의 실험에만 그쳤다고 하지만 바로 이런 시도야말로 공존의 묘리를 일깨우는 대책입니다. 우리 역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철폐, 고용률을 늘리기위한 사회전체의 논의구조 정립 등이 시급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훈춘,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북한 역시 라선의 개방에 적극적인 현실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도 문제입니다. 여전히 동북아의 주변국으로만 머물면서 우물 안 개구리의 형상을 할 것인지 유라시아 발전의 중심축으로 도약할 것인지가 기회의 삼각지대에 있다고 합니다. 독일의 통일이(물론 통일의 순간은 매우 급작스럽긴 했지만...) 단계를 밟아가며 양국의 교류협력을 증진시켰듯이 기회의 삼각지대를 통한 남북의 경제 교류는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양 국간의 상호이해와 신뢰가 더해진다면 남북 통일의 길도 불가능한 꿈만은 아닐 것입니다. 언제나 인간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그 변화의 시작이 기회가 삼각지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제 신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람이 어쩌면 유전자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게놈 연구를 통해 자신의 병을 예견하고 천재유전자를 찾을 수 있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보된 과학이 풍성한 열매만을 가져올 것이라고 속단하기에는 이릅니다. 분명 인간생활에 이로움을 줄 수 있지만 이런 신기술은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낼 것이며 인류 멸망의 단초를 제공할 여지도 충분합니다. 유전자 기술이 과학만의 영역에 국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사회의 전영역에서 이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유전자 기술의 효율적 사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유전자 기술이 가져오는 미래에 대한 책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입니다. 가까이 나치즘의 출발도 우월한 유전자 찾기 혹은 계승이 아니었나요? 또다시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갈 여지가 충분한 유전자 기술에 대한 사회의, 전지구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입니다.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닫혀 있던 시야가 열리는 느낌도 받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당혹스러운 사실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의 내용이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닿는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나 그 해결방안은 두루무실하거나 추상적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인구, 경제, 북한 등의 문제에 어찌 명확한 해법이 있겠습니까? 다만 사회적 중지를 모으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이 책은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그 심층적 원인과 상황의 실태를 제시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넌지시 제시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 인류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들이 물밀듯이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현상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밑에 흐르는 근본원리와 이치를 파악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아무생각없이 자본과 기술의 거대한 해일에 방향을 잃고 표류하다 낙오될 것만 같은 요즘입니다. 오리무중의 사회... 그 속에서 자신의 지식과 시야를 한 단계 넓히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명견만리'는 정말 소중한 책이 될 것입니다. 천천히 책의 내용을 곱씹으며 읽어야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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