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개정증보판 달인 시리즈 1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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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유명하신 분이지만(특히 '열하일기' 연구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고미숙 선생님의 글을 처음 읽어봅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선생님의 주분야인 고전 관련 책이 아니라 달인 3종세트라 칭하는 책 가운데 한 권입니다. 교육 현장에 있다보니 아프게 다가오는 내용들이 꽤 됐습니다.

 

책은 프롤로그, 1부-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2부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3부-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 에필로그로 구성됐습니다.

 

개정판의 머리말로 글을 시작합니다.

'헛된 꿈에서 깨어나는 것, 그것이 공부다... 매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존재, 어디서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 언제든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존재, 그것이 곧 청춘이다. 고로 공부하니까 청춘이다!' 청춘이기 때문에 공부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기에 청춘입니다. 책에서도 계속 언급하지만 공부하는 삶에는 나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고 언제 누구에게서나 배울 수 있는 용기. 이것이 청춘의 특권이자 공부의 특권입니다. 이렇게 따지면 우리의 인생 모든 장면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될 것입니다.

 

저자는 공부는 '자유에의 도정(40쪽)'이라고 합니다. 인식의 프레임에 갇히는 지식이 아니라 그 인식의 틀을 벗어나는 공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발판이 바로 공부가 될 것입니다. 자본과 권력이 요구하는 틀, 무엇보다 자신의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공부가 진정한 공부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자본과 권력이 요구하는 틀이란 뻔한 것입니다. 기존의 제도의 습속의 굳건한 유지지요. 이를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공부를 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결국 현 상황, 현 체제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회의, 이를 통한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바로 공부의 길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던지는 문제 제기는 충분히 의미가 있고 특히 학교교육에 던지는 비판은 통렬합니다. 공부에는 때가 있으니 학창시절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 독서와 공부는 결코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 그렇기 때문에 자율학습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을 금지하는 전국의 수많은 학교들. 그리고 창의성 진작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실시되는 시설 개선과 서비스. 구체적인 내용과 철학없이 시행되는 전시행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교사와 정부 사이에 이미 신뢰라는 단어가 무너진 현실의 풍경일 뿐입니다. 현장에 근무하고 있기에 이런 지적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암송과 구술을 바람직한 공부법으로 제시합니다. 낭송이란 '일상적으로 자기안의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이며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을 터득하는 방법이고 사람에 대한 입체적'(102쪽)인 관점이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나 문맥을 서사적으로 재현하는 능력'(107쪽)인 구술은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지평을 넓힐 수 있'(107쪽)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지식과 몸의 소외가 극복'(102쪽)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결국 귀결점은 고전으로 향합니다. 고전을 바탕으로 한 읽기와 쓰기. 거기에 더하는 자유로운 사고. 이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공부의 핵심입니다. 또한 '생각의 지도를 변경하고 삶의 행로를 바꿀 수 있는'(143쪽) 글쓰기를 주장합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비우고 체력과 끈기, 오기와 집요함이 있다면 진정한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결국 공부는 몸이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몸보다 더 확실한 실존의 현장은 없다'(153쪽)고 저자는 단언합니다.

 

'자신이 평생 뭔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평생 공부의 즐거움을 누려야 마땅하다.'(191쪽)

흠... 절로 자기반성을 이끄는 문장입니다. 과연 나는 공부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름 책을 읽고 공부한다고 하지만 그 바탕에 즐거움이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의무적으로 때로는 시간 때우기식의 독서 혹은 공부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즐거워야 배우는 학생이 즐거울 것입니다. '배움의 열정을 촉발하고 전염시키는 배움의 헤르메스'(194쪽)가 되어야 하는 스승.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앎이란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213쪽)이라고 합니다. 공부를 하는 것은 결국 현실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일상을 주체적으로 영위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일치 여부를 떠나서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앎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부란 것은 당연히 끝없이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인간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고 공부를 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 그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은 지가 한참 지나서 내용이 가물가물합니다. 요즘의 독서가 이렇습니다. 찔끔찔끔 읽어나가니 시간은 오래 걸리고 앞의 내용은 망각의 늪에 빠집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글읽기가 안 되고 당연히 글쓰기도 요모양 요꼴입니다. 내 머리 속에서 뭔가 글의 전체적인 틀이 마련되고 그 틀을 채우고 틀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글쓰기기 되어야 하는데 요새의 글쓰기는 너무 먼 얘기입니다. 각성해야 하는데 여전히 몸 따로 마음 따로의 삶입니다. 몸의 피곤함은 분명하지만 그 피곤함을 변명삼아 너무나 안일하게 살아가는 일상... ㅠ.ㅠ.

 

무척 잘 쓴 책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일단 저자가 제시하는 문제점은 분명 공감하지만 그 속에서 제시하는 공부의 방법은 현실과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몸을 통한 공부, 평생을 통한 공부란 주장은 당연하고도 당연합니다. 어쩌면 제도 교육 외곽에서 들려온 작은 외침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큰 반향을 가지지 못하는...

 

‘앎이란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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