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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책의 표지에 등장한 변호사 서혜진변호사님은 내가 좋아했던 알쓸범잡2와 스모킹건에 출연하셔서 친숙한 분이다. 여리여리한 외모시지만 영상에서는 매우 강단있는 분으로 느껴져서 저런 분이니 변호사를 하시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특히나 여성관련 범죄에 대해서 강단있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셔서 더욱 관심있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 분이 책을 쓰셨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쉽사리 접하게 되진 않는다. 변호사를 만나지 않고 살았다면 그만큼 평탄하게 살아왔다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책은 서혜진변호사님이 경험하신 사건들을 도태로 해서 범죄와 판결, 그리고 피해자들의 이야기이다.

총 4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침묵을 여는 법에서는 피해자들의 자신의 피해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 경험해보지 못한 나같은 사람들이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생각의 관점을 바꿀 수 있었다. 나도 여성으로서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니 스스로가 놀라기도 했다.
2부는 그 피해자들이 겪었던 범죄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기까지 얼마나 우리나라의 사법체계가 문턱이 높은지에 대해서 알려주고 남존여비사상이 뿌리깊게 남아있어서 법률속에서도 여성이 불리한 구조임을 알 수 있어서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3부는 이런 법률적인 불리함을 현대에서는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방법론적인 고민이 있다.
4부는 이런 범죄피해자들과 함께 하면서 변호사로서 느낀점에 대해서 적으신 듯하다.


1부에서 성범죄의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뉴스를 보다보면 성범죄관련 뉴스나 범죄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전해진다. 예전에는 충격도 받았지만 늘 그런 뉴스를 접하다보니 무관심하게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딸아이들이 점점 성장할수록 그런 뉴스들이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좀 과잉보호라고 할 지라도 내 딸은 내가 지킨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저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범죄피해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성폭력 피해는 살인행위이라 생각한다. 일평생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그런 범죄사실과 다르게 성폭력피해자들은 우울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나의 편견이라는 사실을 이 책속 수미의 사례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피해자는 범죄피해를 당한 것일 뿐인데 우울해야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대부분이 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닌가.
이것도 나의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해야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성폭력피해도 다른 범죄피해와 같이 동일한 범죄피해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2부에서는 우리나라의 남존여비사상이 법률속에서도 뿌리깊게 존재함을 느낀다. 이것은 아직 우리나라의 사회 곳곳에서도 있는 일이다.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보다 낫고 여성임원이 상대적으로 적고 여성국회의원도 적다. 법률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육아와 가사의 부담은 여성이 더 많이 가지고 있다. 21세기 현재도 그러한데 1960년대에는 오죽했을까.
2부에서는 최말자씨 사건을 통하여 이런 사실을 보여준다. 이 내용을 읽고 마지막 부분의 판결내용을 읽어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였다. 아직 완전한 확정판결이 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심 승소가 확정되어 최말자씨의 억울함이 풀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3부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내용이었다. 가끔 뉴스에서 국민참여재판에 대해서 나오긴 하지만 정확히 알지 못하였는데 사례를 들어서 설명이 되어있어서 다소 이해가 쉬웠다. 그리고 3부에서는 가정폭력에 대한 내용이 나왔는데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부분의 가정폭력은 남편이 아내나 아이들을 폭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술을 마시고 하는 주폭도 많은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는 동네에 이런 가정 한 두가정쯤은 본 적도 있는 듯하다. 자녀가 있으니 참고 사신 어르신들도 많으셨던 것 같다. 지금은 남편의 경제력 때문에 참고 사는 여성들도 간혹 있을 것 같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가정폭력은 근절되어야 함을 느꼈다. 가정폭력이 있는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바르게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로 맺어진 집단이다보니 법적인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은 것이 문제점인 것 같다. 이것도 우리나라의 사범의 체계가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4부에는 서혜진변호사님의 변호사로서의 고뇌도 엿볼 수 있었다. 일반인 나같은 사람이 보기엔 변호사 소위 "사"자 직업 아닌가. 돈도 잘벌 것이며 사회적으로도 지위를 인정받을 것이니 부러운 직업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자식을 가진 부모들이 내자식이 변호사라고 하면 자랑스러워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들어나보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서혜진변호사님처럼 주로 여성피해자들의 범죄를 변호하다보면 매번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의 범죄피해사실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들어야야하니 이또한 어려운 일일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범죄피해자들을 만나면서도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면서도 피해자가 오늘 여기까지 오기 위해 감당했을 감정의 무게를 느끼고 피해자의 말을 법의 언어로 옮겨 정당한 판결을 받아 조금이나마 피해자들의 고통을 해소해주는 아주 막중한 직업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도 알쓸범잡이나 스모킹건 같은 프로그램 말미에 나오는 판결과 판결문을 읽을 때 울분을 참지 못하는 부분이 전혀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지만 본인의 감형을 위해서 반성문을 쓰면 그것이 감형의 이유가 된다는 점이다.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은 누가보아도 알 수 있는데 왜 판결에서는 감형의 이유가 되는 것인지.
이 책은 서혜진 변호사님의 실제 사건을 토대로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나 피해자들을 주로 변호하시다보니 알게되는 개인의 고뇌도 실려있어서 나 또한 많은 새로운 부분을 느끼고 알게 되었다. 변호사님 말씀처럼 이 책은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독자로서 결말이 "사이다"인 사건만 나왔다면 더 통쾌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사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히려 책을 읽고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답답함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도 또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변호사님이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피해자가 법정 안팎에서 겪는 침묵과 기다림, 그리고 존엄을 찾기 위한 노력들. 그리고 그런 노력들에 법률과 제도가 응답하기까지의 거리감을 이해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소 어려운 법률용어와 판결결과문을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특히 성폭력과 가정폭력 등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사건들에서 같은 여성이 그 피해자들과 사건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하는지를 새롭게 느낄 수 있었던 뜻깊은 기회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