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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맨의 재즈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액스맨의 재즈 (The Axeman's Jazz)
1918년 5월부터 1919년 10월까지 미국의 뉴올리언스 지역에서 동일 인물에 의한 것이라 여겨지는 일련의 살인/살인기도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끝내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이 연쇄살인마는 도끼를 주로 사용해 흉악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1919년 지역 신문사엔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일종의 범행성명과 같은 편지를 보냅니다. 해당 신문사 지면을 통해 공개된 편지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시간을 예고하는 내용과 함께 재즈가 연주되는 곳이라면 자신의 손길이 피해갈 것이란 장난스런 공언이 담겨 있었지요. 그리고 마지막 서명란에 범인은 자신을 The Axeman, 즉 도끼 살인마라고 스스로 지칭하게 됩니다.
바로 뉴올리언스 지역에서 모두 6명의 사망자를 낸 미스터리한 연쇄살인마 액스맨 사건입니다. 이 끔찍한 범행은 처음의 갑작스런 시작처럼 그 끝도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뚜렷한 용의자도 없는 상태에서 더 이상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영구미제로 남음으로서 더더욱 기괴함을 더하는 사건이 되어버렸지요.
레이 셀레스틴의 ‘액스맨의 재즈(The Axeman's Jazz)’는 바로 이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실재 신문에 실린 기사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작가는 1919년 여름 초입의 눅눅하고 어딘가 불안한 뉴올리언스 거리로 독자를 끌어당깁니다.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마지오 부부는 도끼에 난자당한 채 자신들의 집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몇 개월간 액스맨의 공포가 도시를 야금야금 물들여가는 가운데 경찰들은 범인의 윤곽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시민들에게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형편이지요. 범행의 대상이 연달아 이탈리아계 이주민이란 점에서 경찰 내부에서도 액스맨의 정체가 인종적 갈등 속에 증오를 품은 유색인이란 추측과, 이탈리아 마피아가 관련된 커뮤니티 내부의 사건이란 의심이 충동하고 있지요.
본래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는 범인에 대한 명확한 인상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 범인을 추적하는 서로 다른 세 명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하나는 액스맨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경찰 '마이클'입니다. 얼핏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책임자처럼 보이는 그이지만 일전에 동료 경찰의 부패를 밀고하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평을 듣고 있는 가운데 이번 액스맨 사건이 지지부진 하면서 그 자리마저 위태한 상황이지요. 동료들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고 상부의 압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시체의 수만 늘어나고 있지요.
더불어 여전히 인종차별이 만연한 가운데 백인과 유색인종의 결혼 자체가 불법인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그는 흑인 여성과 몰래 결혼을 하고서 두 아이를 두고 있습니다. 주위에선 이를 의심하면서도 쉬쉬하고 있지만 이 역시도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인 셈이고 마이클은 가정을 위해서 그리고 직장에서 자신의 지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도끼 살인마를 잡아야 할 형편입니다.
또 한 명의 추적자는 이제 막 형을 마치고 교도소에서 출감한 전직 경찰 '루카'입니다. 그는 한때 마이클의 동료 형사였고 이탈리아 마피아와 얽혀 뒷배를 봐주는 부패경찰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그런 비위를 마이클이 고발하면서 체포되어 범죄자가 되어버린 겁니다.
열악한 옥중 생활 가운데 만성 위장질환을 얻고 나온 루카는 잡혀 들어가기 전 모아두었던 돈이 불법자금으로 환수되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었고 처지가 이러하니 당연히 전 직장인 경찰 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미국 이민자의 삶에 넌더리가 나버린 듯, 출감한 루카의 소원은 자신의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가 촌부의 삶을 사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를 도와주고 대가로 부리던 마피아 보스 카를로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합니다. 일만 잘 처리해 준다면 넉넉하게 돈을 쥐어주고 이탈리아로 돌아갈 배편도 마련해주겠다는 카를로의 ‘절대로 거절 못할’ 부탁 또한 도끼 살인마를 잡는 것인데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연달아 살해되면서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마피아 보스로서 위치가 의심받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함이 이유입니다. 루카는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카를로의 제안을 가장한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기에 결국 형사시절 실력을 발휘하여 범인 잡는 일에 나서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핑커튼 탐정 사무소의 조수로 일하고 있는 젊은 흑인 여성 '아이다'입니다. 새파랗게 젊은 이 여성은 어려서부터 탐정소설에 심취했고 그를 쫓아 핑커튼 사무소에 취직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북부와 달리 남부에선 핑커튼의 이름값이 고만고만했고 사무소라고 해봤자 상관과 그녀 단 둘이서 운영하는 가운데 시시껄렁한 심부름이나 하는 상황이지요. 이런 가운데 희대의 살인범 액스맨의 등장은 강렬한 자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다는 상관 몰래 독자적으로 사건을 수사하며 액스맨의 정체를 밝혀냄으로서 탐정으로 실력을 인정받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에서 동료이자 조수 역을 하는 죽마고우인 청년이 등장하는데요. 아이다의 친구이자 코넷 연주자인 친구의 이름은 루이스 암스트롱,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재즈 트럼펫 연주자 겸 가수 루이 암스트롱입니다. 실재 1919년 18살의 루이 암스트롱은 뉴올리언즈에서 재즈 밴드 활동을 하며 유명 뮤지션들의 실력을 어깨 너머로 배우고 있었으니 실존인물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시절을 이야기에 접목하는 상상력은 매우 기발하면서 적절해 보입니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소년원 시절이나 밴드 활동 묘사 등은 진짜 루이 암스트롱의 일대기를 적절히 차용한 역사들이라 픽션 속 캐릭터 루이스에 무게감을 실어주기도 합니다.
마이클, 루카, 아이다. 경찰, 전직경찰, 탐정 지망생 이란 세 명의 캐릭터를 번갈아 비춰가며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1차 대전이 끝나 군인들이 대거 고향으로 돌아오고 군항으로 번창했던 지역 경제가 침체하고 금주법 시대가 예고되는 가운데 불안한 경제 상황. 경찰, 지역 행정기구의 부패. 마피아와의 결탁, 범죄조직 내부의 음모. 인종차별과 이민자들 사이 갈등처럼 당시 시대상을 실감나게 묘사하면서도 이야기에 감쪽같이 녹여내는 솜씨 역시 뛰어납니다. 덕분에 20세기 초반 미국 남부의 분위기와 시대상을 체험하면서 동시에 잔인한 연쇄 살인마를 추적하는 탐정물을 보는 재미도 동시에 즐길 수 있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원전이 된 실재 살인사건은 끝내 범인이 잡히지 않고 미제로 남아버렸습니다. 덕분에 범인의 정체에 대해선 여러 가지 추측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이야기는 그런 가능성들을 토대로 작가적 상상력을 덧붙여서 매우 구체적으로 도끼 살인마의 정체를 그려내는데요. 그에 얽힌 드라마에 조금 과하게 극적 장치들이 배치된 느낌은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범인의 정체도 그리고 실체에 다다르는 세 탐정들의 과정도 모두 잘 설계된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범인은 그 존재나 살인 동기가 앞서 묘사한 시대적 부조리와 얽혀져 있어서 전체적인 그림이 마지막 반전의 트릭과 아귀가 들어맞는 것 같은 쾌감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세세하게 잘 설계된 구조물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스포일링이 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책을 읽을 분이라면 후반부의 재미를 두 배로 즐기기 위해서 책갈피 대신 작은 메모장 하나 정도는 준비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봅니다. 일단 탐정 역할만 세 명인데다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막판에 하나로 묶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소소한 재미들을 놓치거나 치밀하게 구성된 사건의 진상과 관계를 온전히 읽어 내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액스맨의 재즈>는 실재 사건을 토대로 재구성하고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진상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허구의 공간에서 밝혀내는 쏠쏠한 재미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아이디어나 구상에서 한국영화 <살인의 추억>이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두 작품 모두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사건을 통해 그 시대의 부조리를 들춰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고, 도한 이야기의 클라이막스에선 엄청난 비가 내리는 가운데 모든 인물들의 갈등이 폭발한다는 지점도 유사합니다.
다른 부분이라면 결말이겠지요. 실재 사건의 아쉬움을 가져와 끝내 범인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하고서 보는 이의 뒷골을 잡아당기는 것 같은 찜찜함을 남기는 <살인의 추억> 속 결말과 달리 <액스맨의 재즈>는 나름의 명확한 결말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울하고 절망적으로만 보이던 캐릭터들을 향한 작가의 애정이 얼핏 엿보이는 마지막 에필로그 역시도 좋은 여운을 남기는 책이었네요.
- 나는 재즈 음악을 좋아해. 지옥의 모든 악마를 틀어 맹세컨대 내가 말한 시간에 집에서 재즈 밴드가 한창 연주 중이라면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사할 거야.
- 뉴올리언스는 달랐다. 이곳은 미국의 어두운 면이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구수가 많았고, 인종의 경계가 희미하고, 기후마저 열대 기후였다.
- 뉴올리언스가 미국에 마피아들이 처음 들어온 도시라는 사실을 아나?
- 루이스는 뉴올리언스에서 검둥이로 사는 가혹한 현실이 싫은 만큼, 뉴올리언스가 다른 사람의 권위나 다른 세상에 무관심한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 뉴올리언스에 있는 모든 것이 음악과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회부터 장례 행진, 홍보하는 마차, 길모퉁이 물건 행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악과 함께였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마치 아무 노래라도 부르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도끼 살인마, 당신을 5월의 꽃처럼 환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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