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열두 번의 대전환
김태수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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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수 작가의 [세계사를 바꾼 열두 번의 대전환]

"사상은 한 사상가의 머릿속에서 시작되지만,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는 그 사상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세상에 퍼진 사상이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거나 급진화되는 현상은 역사 속에서 줄곧 반복되어 왔다." (138쪽)

김태수 작가가 역사의 작동방식을 함축한 이 멋진 문장에서 '사상'은 오늘날 현대의 질서를 선도하는 '기술'로 바꿔쓸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누군가의 선택이 훗날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라는 질문은 인간사에서 '개인의 행동이 미래의 나 자신과 주변인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라는 물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선택은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이 질문의 방점은 선택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 선택과 해석 사이에 놓인 결과에 있다. 역사적 사건의 결과가 반드시 선택의 의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사는 선택에 대한 윤리적 평가를 넘어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대해 사회적 책임까지 함께 요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역사는 하나의 거대한 '진화의 과정'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역사는 단순히 독립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라 선택과 결과가 반복적으로 맞물리며 특정한 의미를 형성해 온 과정이기 때문이다. 생물의 진화가 환경에 적응한 형질만을 남기듯 사건 역시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살아남았기에 기록되었고 우리는 그러한 결과들을 기준 삼아 다음 단계를 설계한다. 문제는 그 선택이 언제나 윤리적으로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지속가능했기 때문에 유효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내리고 있는 결정 역시 언젠가는 하나의 결과로서 해석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김태수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세계사를 바꾼 열 두 번의 대전환'을 다룬다.

각 장에서 제시되는 역사적 사례들은 사건에 얽힌 인물의 업적과 시대상을 조명한다는 데서 일반 역사서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넓히면 시대적 맥락 속에서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사회 속에 흡수되고 정당화되었는지를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개인(집단)의 논리와 선택이 당대의 제도, 관행, 그리고 다수의 이해관계 속에서 원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선택의 의도는 점차 희미해지고 결과가 다시 다음 선택의 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선택의 완성은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어떻게 감당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김태수 작가는 열 두 번의 사건을 통해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기 보다 그 시대의 인물들의 목소리와 선택이 어떻게 사회적 표준을 만들어 나갔는지를 집요하고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합법이라는 이름, 효율이라는 명분, 불가피했다는 설명 아래에서 어떤 선택들이 어떤 세계를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파장을 떠올려 보면 이것을 단순히 역사 속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전례 없는 풍요를 가져오는 동시에 노동 착취, 환경 파괴, 구조적 불평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그때의 선택들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지만 그 결과는 지금도 우리가 감당해야할 숙제로 남아있다. 오늘날 AI를 둘러싼 논쟁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효율과 혁신을 위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위험을 떠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는 결국 산업혁명 이후 기술과 시스템은 줄곧 빠르게 진화했지만 그 진화를 이끄는 선택의 책임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김태수 작가가 보여준 열두 번의 대전환은 특정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반복해 온 '선택의 패턴'에 관한 기록이었다. 우리는 늘 제한된 정보 속에서, 욕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그리고 시대의 압박 속에서 선택해 왔다. 그 선택은 의도와 다르게 흘러갔고 결과는 또 다른 선택을 강제했으며 해석은 언제나 현재의 필요에 따라 달라졌다.

같은 맥락에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과거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선택을 더 깊이 사유하는 일에 가깝다. 따라서 지금처럼 빠른 기술과 강력한 힘을 손에 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 편리함이 책임을 대체할 수 없고, 효율이 윤리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결한 선택이 아니라 책임 있는 선택을 하라는 요구일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우리의 의도만이 아니라 그것이 파생시킨 결과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덧붙이는 말>

만약 역사의 수많은 선택들이 반복적으로 특정 집단, 즉 기득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귀결되어 왔다면 우리는 선택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의 위치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지금 나는 그 결과의 수혜자인가 아니면 감내하는 쪽인가.'

이것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택의 의미'를 정확히 가늠하기 위해 선행해야 할 의무다. 같은 선택이라도 선택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기득권의 선택은 종종 질서와 안정, 합리라는 언어로 포장되어 비기득권에게 침묵과 인내를 요구하곤 한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내리는 결정이 기존의 결과를 연장하는 선택인지 아니면 문제를 인식한 상태에서 내린 선택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나의 판단이 공정해 보이는 이유가 다수의 이익에 부합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이미 안전한 위치에 있기 때문인지를 먼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을 옳바르게 해석하고 그것을 현재에 '잘' 적용해 나가는 첫 걸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사를바꾼열두번의대전환 #프런트페이지 #김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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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의 재판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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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 작가의 [4의 재판]

"사람들의 큰 착각. 왜 법이 정의를 찾아줄 거라고 기대하는가. 법은 정의를 위해 있지 않다. 이 사회의 유지에 더 관심이 많다. 주먹이 아니라 신호등에 가깝다고나 할까." (292쪽_서찬휴 변호사의 글 중에서)

법은 악을 뿌리뽑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악이 마음껏 날뛰지 못하도록 도덕적 경계를 나누고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폭력을 제도적 장치로 여과해 사회 질서와 국민의 안녕을 보장한다. 다시 말해, 법은 최소한의 규제로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어떤 판결은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을 남긴다. 그 이유는 법의 안전망이 '선'을 위해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악'이라는 사회 이면의 질서까지 포괄하고 있다. 가령 피의자의 신변보호, 묵비권 행사, 변호사 선임 권리, 무죄추정의 원칙, 공소시효 등이 그렇다. [4의 재판]에서는 배영길이 혐의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는 데 결정적인 기준이 되었던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이란 '이 사람이 무죄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면 유죄판결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심이 들지 않는 수준까지 입증이 이루어져야 유죄로 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이는 사건의 진실을 가르는 과정에서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자'는 취지인데, 문제는 그 따뜻한 배려의 대상이 '피해자'가 아니라 '피. 의. 자'라는 데 있다. 도진기 작가의 [4의 재판] 은 바로 그 불편한 현실을 허심탄회하게 고발한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단순히 '법이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 한선재의 남자친구, 송지훈의 죽음과 관련하여 모든 법적 절차는 규칙에 따라 진행되었고 법리는 충실히 적용되었다. 문제는 그 결과가 '정의'가 아니라 '사회 질서'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악인 배영길은 처벌받지 않았고 사건은 종결되었으며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이제 더 이상 누구도 이 사건을 입에 올릴 수 없게 되었다.
...
사건은 사회의 질서를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깨끗이 종결되었다.


"재판은 악인을 단죄하지 못했지만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271쪽)


우리는 이 판결이 담고 있는 뒤틀린 현실에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을 느낀다. 정의를 구현하지 못한 재판도 어이없지만 악을 향해 더이상 어떠한 문제제기도 할 수 없다는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그것을 감히 '사회 질서의 정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찬휴> 변호사는 이 질문의 한가운데 있다. 그는 법의 탄생 배경이 본래 왕권을 위한 질서유지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회적 인프라의 한 형태로 매끄러운 국가 운영에 초점을 맞춘다. 애초에 '정의 실현'이라는 이상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중에게 '누구나 처벌받을 가능성'을 인식시키는 것이 법의 존재 이유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뿌리가 같은 현행 사법 체계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진범이 활개치는 사회를 상상하며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에서 대상을 잃고 방황하는 피해자의 응보를 애석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시각은 법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법을 활용하는 법률가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자의 한계가 진범을 석방시키는 기이한 행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역시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법의 필요성을 통감하는 법조인이라는 점이다. 그런 그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SNS에 글을 올리는 것 뿐이다.

[4의 재판]은 그 '냉소(冷笑)' 터져 나오는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법은 수없이 많은 정황증거에도 단 하나의 오류 가능성을 우선시한다. 혹시나 발생할 억울함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충돌하는 기묘한 우연을 일상의 파편으로 취급한다. 판사의 방어적인 해석은 피의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 결국 살인죄의 무게는 고스란히 유가족이 짊어지게 되는 구조다. 피해자와 피의자가 정확히 뒤바뀐 구조.

여기서 '혹시나 발생할 오류 가능성'이란 신성한 판결에 흠이 될 잠재적 위험요소였을까? '무고할지도 모를' 피의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행위는 그 신성함을 잃지 않으려는 법원의 구태의연한 자구책은 아니었을까? 를 상상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보호'인가?!

이 질문은 한선재를 통해 더욱 날카로워진다.
그녀는 희생자 송지훈의 여자친구다. 그녀는 송지훈을 죽인 살인자 배영길의 무죄판결을 목격한 목격자다. 동시에 사법 시스템의 구멍을 목격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상식을 파괴하는 판결은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사건기록물을 훔치고, (서찬휴)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고, 보험회사에 훔친 자료를 넘긴다. 법은 더이상 그녀에게 신뢰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아니라 알 수 없는 원칙과 절차로 작동하는 자동판매기다.

사실 그녀는 이 소설을 통틀어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절차를 무시하고, 관례를 깨며 상식대로 행동한다. 법의 출현 이전에 규범으로 삼았을 법한 인간의 도리와 상식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어쩌면 한선재는 서찬휴의 이상적인 생각을 실천에 옮긴 행동대장이며, 이 시대에 꺼져가는 불꽃을 살릴 정의라는 작은 불씨였을 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현실의 사법체계가 갖고 있는 불합리에 경종을 울리는 알람 장치일수도 있겠다.

반대로 배양길은 이 체계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다.
그는 살인자이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한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법을 잘 이해하고 있다. 경직된 체계의 허술한 틈, 인간 판단의 오류 가능성, 절차가 진실보다 우선시되는 순간을 정확히 알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타인을 지배하고 조종해온 그는 법이라는 질서 안에서도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한다. 그의 세계에서 법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악을 실현하는 도구이다.

흥미로운 것은 배양길의 모습이 묘하게 법정의 절대자(판사)와 닮아 있다는 점이다. 자기 세계에 갇혀 있고,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으며 맥락보다 형식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사회에서 두 인물은 정확히 대척점에 위치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법정에서 판사는 신성불가침 영역의 절대자다. 그러나 그(녀)의 권위는 대중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출현했던 원시적 집단에 뿌리를 둔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이러한 허구 집단은 초기에 일상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다가 어느 순간 조직이 커지고 관료화되자 원래의 목적보다는 관료체계의 관성과 관례들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고 밝힌다. 과정과 절차가 복잡해지면서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고 대중이 접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법조인은 대중의 권리를 대신하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판사의 신성한 권위도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더욱 높고 두터워졌음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법이 가진 권위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체계의 복잡한 절차와 과정이 대중의 상식과 단절되고 정보의 장막 뒤에서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게 문제다. 특히 법을 실행하는 주체자-판사, 검사, 변호사-가 정보를 독점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성역화하기 때문에 대중은 법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고 결국 이것이 대중과 법조인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같은 맥락에서 [4의 재판]이 말하는 법의 문제는 제도 그 자체라기보다 제도를 활용하는 '인간의 한계'에 더 가깝다. 법은 악을 뿌리뽑지는 않지만 효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통제 장치가 지나치게 형식화되고, 관료화되며, 신격화될수록 체제는 경직되고 악은 그 틈을 파고든다. 그곳에서 착함은 약함으로 오인되고 상식은 폭력에 침묵한다.

도진기 작가의 [4의 재판]은 인간의 불완전함 위에 세워진 신성한 법의 영역을 형식주의적 '질서 지향'이라는 측면에서 냉철하게 바라본다. 법은 정의 구현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억울한 사람 없이 분쟁을 해결하려 한다. 따라서 판결은 정황 보다는 직접적인 증거에 입각해서 내려진다. 직접적인 증거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심증이나 감정, 맥락을 배제한다. 그것은 단 1%, 아니 0.1%의 오류 가능성도 용납하지 않는다. 여기서 오류 가능성은 신성한 법정의 권위를 날려버릴 정도의 섬뜩한 가능성과 일치하므로 모든 정황이 범인을 지목하더라도 법의 권위 앞에서 상식은 무시된다. 그것이 법이 추구하는 정의 구현 방법이다. 그러나 법이 정의의 중심에서 판결의 무오류성을 입증하는 데만 집중하다보니 진실을 왜곡하게 되고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범죄의 무게를 전가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작가 도진기는 [4의 재판]을 통해 '과연 우리 사회는 법을 정의롭게 작동시키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법의 형식과 절차가 무엇을 위해 수립되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더불어 치열한 법리다툼에 매몰된 진실을 상식의 시선에 맞추기를 희망한다.

법원은 국민을 위한 공공기관으로서 신성한 장벽을 깨고 과정의 투명성을 갖추어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고 원래의 목적인 공익과 정의 실현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법조인과 대중이 동등한 관계 속에서 공통의 언어를 찾게 된다면, 지금의 반쪽짜리 정의에 나머지 반쪽을 이어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기득권의 생리를 고려한다면 어려울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번 기대해 보자.

#4의재판 #도진기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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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온도 : 혼자여도 괜찮은 나
린결 지음 / 도서출판 새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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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결의 [존재의 온도]

"선택과 감당"

인생(人生)을 이보다 더 함축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있을까?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자신만의 선택으로 유일무이한 세계를 만든다. 동시대를 함께 하는 수많은 동지(同志)들조차 같은 시간과 환경을 살아내고 있지만 단 하나의 인생도 결코 같은 색깔이나 모양을 하고 있지 않다.

아니, 단언컨데 "그럴 수가 없다."

작가 린결의 "무한한 기회 앞에 옳은 선택만 하는 사람은 없다."는 문장은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선택자가 가진 잠재적 변수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성격, 성별, 출신, 가치관, 관계, 취미 등등의 수십 수백 가지의 내외부적 요인들이 무작위적인 조합으로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불확실한 가능성에 자신을 걸고 하는 도박과도 같다. 이길 것인가 질 것인가, 잃을 것인가, 얻을 것인가에 대한 일말의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결과를 모른 채 참가하는 멈출 수 없는 게임, 그것이 인생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이뤘는가?', 혹은 '무엇을 소유했는가?'와 같은 결과론적 성과가 아니라 '매 순간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 냈는가?'하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먼저 작가 린결의 '선택과 감당'에 대한 멋진 문장을 감상해 보자.

꿈은 품을수록
현실의 안락은 그늘지고
사랑에 머물수록
자유의 날개는 짧아진다.

높이 오를수록
시간의 여유는 좁아지고,
쉼이 길어질수록
야망은 속절없이 녹는다.

모험에 발을 디딜수록
안온함은 뒷걸음질치고,
편안한 둥지에 머물수록
성장의 문은 닫힌다.

그렇다
삶은 무수한 가능성 속에
감당할 수 있는 하나를 선택하는 용기로 시작되고
그렇게 선택한 무게를
끝까지 품는 태도로 완성된다.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담긴 위대한 문장이다.
지난 40여 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셀 수 없이 반복했던 그 불완전한 선택의 그늘에는 후회와 깨달음, 다짐과 용기가 짙게 깃들었다.
결국 인생은 매 단계마다 선택이 나은 결과를 감당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은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이며,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 가는 결정적 요소이다.

작가 린결은 [존재의 온도]를 통해 '우리가 그 선택의 과정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녀)는 [소신, 자존감, 자아 성찰, 감당 가능한 대응]의 네 가지 '삶의 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재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고 인생에서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지를 생각해 봄으로써 내 인생의 주인인 내가 스스로 내린 선택을 믿고 존중하면서 자신만의 가치를 쌓아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특히 린결은 '스스로에게 질문하라!'고 강조한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인생의 주체로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사유하고 설계함으로써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나'를 만들어 나가기를 희망한다. 린결은 이런 상태를 가리켜 '절대적 충족'이라고 표현했는데, 다른 것과의 비교를 거부한 상태, 자신만의 속도로 자기 계발에 몰입한 상태를 의미한다. 온전한 나로서 느끼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일의 성패에 좌우되지 않으며, 실패와 결핍조차도 삶의 자양분으로 활용하는 궁극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도 인간관계의 거리조절, 실패에 대응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삶의 면역력, 꿈의 의미, 어른이 된다는 것, 불안 등의 확장된 주제를 통해 인생에서 꼭 익혀야 할 핵심적인 개념들을 조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개인의 유일무이함을 삶의 무기로 장착하고 성장시키는 태도가 앞으로 다가올 시대변화에 더욱 적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거에는 집단에 대한 충성과 위계 질서에 대한 복종이 집단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른바 '답정너'가 통하던 시대였다. 모두가 정해진 답에 근접하기 위해 삶의 양식을 가다듬었던 시대. 상대적 충족을 좇아 결핍의 무한 굴레에서 발버둥치던 시대.

작가 린결은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를 가리켜 예측 불가능을 넘어 정답이 부재한 시대라고 표현했다. 시대의 빠른 변화가 집단의 대응 속도를 추월하고 조직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시대의 뒤안길로 모습을 감췄다. 개인의 고유함이 빛을 발하고 '옳다'는 기준을 스스로 창조하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그(녀)는 이런 시대일수록 정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과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귀띔한다.

린결의 [존재의 온도]는 우리 모두가 충분히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 준다. 더불어 나에게 주어진 삶은 오롯이 나를 향하고 있으며 오직 나로부터 세상 밖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의 모든 도전은 자신의 선택으로 말미암으며 그 역시 감당가능한 모습으로 결을 드러낸다. 같은 맥락에서 그(녀)가 말하는 36.5도는 인간이 본연의 모습으로 빛날 때 비로서 가질 수 있는 체온으로 조급하지 않으며,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절대 충족의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존재의 온도라는 것이다.

인생 정답이 없다. 저마다의 생각과 방법으로 마주치는 문제를 풀어갈 뿐이다. 컨닝도 정답이 있어야 하는데 정답 없는 인생 살면서 남의 집 곁눈질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정진해 나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린결의 말처럼 인생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다음 세대를 비추는 빛이 된다면 자신으로 살아가는 연습은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인생의 통찰이 담긴 린결의 또 다른 문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무한을 꿈꾸던 손길을
자연스레 멈출 줄 아는 건,
뒤로 물러나는 게 아니라
삶을 고르는 안목일지도 모른다.

꽃은 스러짐을 품을 때
비로서 하나의 계절로 완성되고,
바다는 물러날 여운을 머금을 때
그 깊이를 다한다.

그렇기에,
남김없이 태워
더 환하게 사라지는 불처럼

그렇게 언젠가를 안고
지금을 온전히 살아갈 때,

그 유한함 속에서
비로서 영원을 배워갈 때,

존재의온도는
모자람이 아니라
스스로 고른 소소한 넉넉함을 품으며
담담히,
그러나 분명히,
빛난다.

**본 리뷰는 출판사 새얀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존재의온도 #린결 #새얀 #독서 #독서록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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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완성하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 (공식 워크북)
제임스 클리어 지음, 신솔잎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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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중학교 1학년 아들이 내게 말한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읽어 봤어? 선생님께서 아주 좋은 책이라고 한 번 읽어보래."

책이라면 라면 받치는 용도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지난 47년의 부끄러운 과거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시기였다.

아들 때문에 읽었던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덕분에 제목이 지닌 진정한 힘을 나의 생활 속에서 실감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내가 이룬 것>
1) 1년간 책 100권 읽기
2) 서울 ~ 부산 633km 자전거 국토종주
3) 일기 쓰기
4) 독후감 쓰기

작은 습관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것이다. 가령 내가 되고 싶은 모습, 즉 정체성이 그렇다. "( ~~ )하는 사람"의 빈 칸에 넣고 싶은 단어가 바로 나의 정체성이 된다.

둘째, 목표한 정체성이 나의 실제 삶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파악한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마치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새로운 시작의 의지를 불태울 불씨를 마련할 수 있다.

셋째, 그 간극을 매우기 위한 실천전략을 짠다.
정체성은 한 두 번의 실행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몇 번의 등산으로 산 타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기 어렵고, 무턱대고 찍은 시험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공부 잘 하는 사람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따라서 목표한 지점으로 가는데 필요한 하위 단계의 작은 실천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자신의 현실에서 실행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작은 실천들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하는 정체정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덕분에 나는 '책 읽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산 타는 사람'이 되었다.

제임스 클리어가 이번에 펴낸 [쓰면서 완성하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_워크북]은 위 세 가지 원리를 바탕으로 독자들이 원하는 정체성을 만드는 여정을 함께 하고자 한다.
좋은 습관을 만들었던 경험이 없거나, 원하는 습관이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 지 몰라서 막막한 분들이 있다면, [쓰면서 완성하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_워크북]의 순서에 맞게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고민함으로써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혔듯 워크북을 실행하는 데 반드시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읽을 필요는 없다. 매 챕터별로 핵심개념을 따로 정리하고 있어서 독자가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지를 꼼꼼히 체크해 놓았다.

저자는 말한다.
"매 순간 당신은 하나의 좋은 선택으로 훨씬 의미 있는 삶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이다.

인생은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씩 고치고 보태며 만들어가는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출간 된 [쓰면서 완성하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_워크북]이 그 지난한 여정을 함께 해줄 것이다.

#비즈니스북스 #제임스클리어 #쓰면서완성하는아주작은습관의힘 #샘플북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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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얼굴 - 김재원 힐링 에세이
김재원 지음 / 달먹는토끼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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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작가의 [엄마의 얼굴]

'삶과 죽음'은 인간과 뗄 수 없는 화두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죽음의 유한성을 통해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소설과 드라마, 영화에서는 죽음을 소재로 엮은 이야기가 소비자들의 감성 버튼을 자극합니다.

이렇듯 삶과 죽음은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 있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죽음이 내 주변으로 특정되면 당혹스럽고 황망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첫째, 그 죽음이 당사자에게 가져올 고통과 아픔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며, 둘째,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위로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김재원 작가의 [엄마의 얼굴]을 읽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과연 내가 어린 재원이에게 어떤 위로를 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 쉰을 넘긴 작가 김재원이 엄마에게 이 책을 바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를 조심스럽게 짐작해 볼 따름입니다.

열세 살의 어린 재원이는 '엄마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합니다. 엄마의 죽음 보다는 그 죽음이 가져올 불안정한 자신의 현실이 더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재원이는 이러한 모순 속에서 엄마의 죽음을 가슴 속에 묻게 됩니다. 제대로 슬퍼하지도 마음의 짐을 털어내지도 못한 채로 말입니다. 심지어 아내를 잃은 아버지와 엄마를 잃은 재원이가 힘겨운 현실을 살아내며 '엄마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저는 그날 운 기억이 없습니다. 아버지도 울고 목사님도 울고 이모들도 우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울 줄을 몰랐습니다. 그저 종잡을 수 없는 미안함이 슬픔을 삼켜버렸습니다.감기에 걸려 엄마 방에 들어가지 못한 일주일. 이틀 전, 엄마를 두고 시내에 놀러나간 일, 엄마를 배웅하는 시간에 꾸벅꾸벅 졸았던 아들. 그 한심한 미안함이 저에게 슬퍼할 자격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김재원 작가는 과거를 회상하며, 이기적이었던 어린 재원이의 행동을 반성하고 지금은 오히려 엄마에게 "자신을 두고 떠나야 했던 당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아니 이미 엄마를 이해했다"고 전하고 싶어합니다. 당신의 13년간의 보살핌이 쉰을 훌쩍 넘긴 자신을 이토록 굳건히 지탱해 주었으며, 그런 엄마의 깊고 큰 사랑에 응답하고 싶어합니다.

작가는 질문합니다 .
"사람에게 부모는 몇 년쯤 필요할까요?"

10여 년의 짧은 기간동안 받았던 어머니의 충만한 사랑을 기억하며 저자는 40여 년을 살아왔습니다.

아침마당의 진행자이자 KBS 간판 아나운서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말하고, 쓰고, 걷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키다리 아저씨'로 자사을 소개합니다.

한 나절의 태양빛이 세상의 모든 생명에 양분을 제공하듯 부모님의 사랑은 김재원 작가의 몸과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을 것입니다.

작가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재원이가 바르게 성장하고 자신의 현실을 이겨내며 성숙한 어른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늘 재원이 옆에 계셨을 겁니다.

저자는 책에서 이를 가리켜 "마음의 길을 잃지 않는 힘"이라고 표현했는데, 인생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부모님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남보다 일찍 부모님과 헤어진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 충만한 기억을 가지고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죠. 어쩌면 사랑은 완전무결한 것으로 줄거나 느는 것이 아니라 '충만함'으로 태어나 고스란히 전달되는 감정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고 간직하며 평생을 살아갑니다.

저자는 서두에서 이 책을 "천국에 계시는 엄마께 바칩니다." 고 밝혔는데, 그래서인지 엄마에게 들려 드리고 싶었던 그간의 밀린 이야기들을 수다스러운 아이처럼 빼곡히 적었습니다.

그는 개인과 사회, 다름과 닮음, 오해와 이해, 소통과 배려, 실수와 성장, 용기와 감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 속에서 누구나 고민하는 여러 가치와 기준에 대한 단상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합니다.
마치 어머니께 당신의 아들이 이렇게 밝고 올곧게 성장했다고 말씀드리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충만한 사랑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그는 말(언어)의 중요성과 쓰임에 대해 강조합니다. 따뜻하고 정겨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주변인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관계 속에서 소통의 도구인 말의 중심이 '나'인지 아니면, '당신'인지에 따라 대화의 양상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또한 양날의 검처럼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또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의 양면성과 한계를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 말은 철저히 듣는 사람의 반응과 해석에 의존하는 경향성이 있으므로 상대에게 말을 할 때는 항상 수위조절에 신중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는 꼼꼼한 충고, 넘치는 사랑, 성공을 향한 욕망, 폭넓은 감정표현, 소리 없는 관찰, 염려와 질문, 호기심어린 재미, 정당한 명령처럼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닌 일상의 말들조차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둡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언어가 백김치 같이 강하지 않고 도전적이지 않으며 시원하고 깨끗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합니다.

제 주변에도 슴슴한 말투를 쓰면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 줄 알며,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풀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여전히 노력해야 닿을 수 있는 높은 경지지만, 인간관계의 기본이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의 사용은 '나'라는 관점을 뛰어넘어 '우리'라는 출발선에서 시작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김재원 작가의 [엄마의 얼굴]을 읽고 나면 우리는 긍정적 에너지와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하나의 성숙한 인간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이 책을 통해 증명하고 자기 스스로가 살아있는 증거가 됨으로써 열세 살에 미처 하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도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그 크신 사랑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그리움은 오래된 애도입니다."(5)

이제 그 애도는 하늘로 띄울 두꺼운 편지가 되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먼저 가신 어머님을 애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의 아들로서 그리고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으로서 김재원 작가의 어머님께 깊은 애도를 표하고 싶습니다.


김재원 작가의 [엄마의 얼굴]은 엄마를 잃은 열세 살 소년의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쉰 아홉 중년의 가장이 속깊은 고백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채워 넣은 삶에 대한 다양한 단상은 우리로하여금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단서가 되며 동시에 '엄마의 사랑'으로 만들어낸 기적임을 증명합니다.

이 책은 작가가 서두에 언급했듯이 부모님을 오래전 떠나보내고 미처 애도하지 못한 분들, 아픈 부모님을 돌보고 있는 분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가까이 모시지 못해 늘 미안한 분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도 살가운 말 한마디 못 건네는 분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 달먹는토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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