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을 다시 묻다 - 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 비아 제안들 시리즈
후카이 토모아키 지음, 홍이표 옮김 / 비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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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이 연구를 시작했다. 조금 더 상세하게 질문을 생각해보자면, “신학은 교회만을 위한 학문인가?”라는 것이다.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신학이 무의미한 것일까? 저자는 오랜 신학사에서 사회적 맥락과 서로 연결되며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을 언급한다. 이는 분명하다. 그래서 저자는 신학이 비그리스도교적으로 사유하는 이들에게도 일정한 의미를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많은 학자들이 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로 시도했던 것은 ‘신학 제 분야 해제’다. 이는 성서학, 교회사, 조직신학, 실천신학으로 나누고 이 분야에 대한 개론적 설명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독특한 접근으로 신학을 접근하려고 했던 사람이 칼 바르트였다. 그는 신학의 대상인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세계와 사건 ‘그 자체’로 들어가는 것이 신학이 의미하는 바라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을 마친 뒤, 저자는 신학이라는 학문은 현대의 사람들에게 별다른 매력이 없다는 현실을 마주함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신학에 대한 접근은 과거 시대에 있었던 신학의 필요성과 의미를 설명하고 오늘날에도 신학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신학의 사회적 기능’을 시도한다. 


 신학의 탄생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그의 죽음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들과 관련이 있었으며, 또한 로마의 정치 사회와 관련이 있었다. 당시 그리스도교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틀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며, 다른 이들에게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 신학을 탄생하게 만들었다. 최초의 신학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자신들이 믿고 있는 바를 동시대 문화 환경에 맡게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후에도 교부, 변증가들에 의해 자신들이 속한 문화속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학문적, 정치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슬람교의 패권을 피해 북쪽으로 퍼져나간 그리스도교는 유럽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하된 중세 서유럽에서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세상의 지배 원리로 그리스도교가 작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구조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신학을 필요로하게 되었고, 이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던지는 질문과 비판에 대한 응답을 위해서도 신학이 필요했다. 또한 그리스도교를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중세 시기 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 성서과 교부들의 가르침에 대한 주석으로 그 결과가 나타났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중세 신학은 초월적 세계에 대한 관심을 설명했고, 현실 문제에 대해 답을 하려고 애썼다. 현실 세계에서 중세 신학은 철학, 자연 과학, 정치 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종교개혁시기의 신학은 이미 많아 알려진 것처럼 정치와 종교가 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중세신학은 국제적인 가치와 연결되었고, 종교개혁 이후의 신학은 민족적, 국자적인 가치와 결합되었다. 그리고 당시 신학은 중세 신학자들처럼 세계의 진리, 신의 보편성에 관한 문제 규명 등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당시 신학은 자신이 속한 종파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교회가 정한 교리를 신학이 옹호했고, 개신교회에서는 신학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신조를 새롭게 했다. 


 17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들에 의해 신학은 사회를 변혁하는 이론으로 작용하였다. 이전까지 신학은 교회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러나 청교도들에 의해 일어난 혁명은 기존 교회 제도를 비판했고, 종교 체제를 혁신하려고 했다. 교회에 존재하고 있는 교리, 신조, 신학은 교회의 합리화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성서로 돌아가자고 외쳤으며, 현실 세계에서의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세상과의 선을 긋고 교회와 세상을 향해 비판을 가했던 것이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은 ‘교회’라는 제도는 약화시켰지만, 종교성과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자체를 약화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신자들의 신앙은 교회의 권위와 제도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문제로 여겨졌다. 신앙을 기초로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교회로부터의 자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교회와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신앙에 집중했기 때문에 신비주의라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당시 신비주의란 황홀경 현상과 관련있던 것이 아니라, 어떤 매개도 거치지 않는 종교성을 의미했다. 또한 신학이 종교학 안으로 편승됨으로써 하나의 역사적 연구로 여겨졌다. 더불어 신학은 종교심리학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과거 신학의 중요한 요소였던 계시나 기적이 신학의 비학문성과 비현실을 증명하는 요소로 변화되었다. 혁명의 최종점에서는 두 개의 신학으로 분리되는 일이 일어났다. 하나는 전통적 교회와 관련 있는 교회의 신학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교회는 싫지만 신앙은 소중히 여기고, 교회 비판이 크게 작용하는 교회 밖의 신학이다. 


 실용주의적 신학은 미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국의 상황과 달리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 신앙은 구성원이 되기 위해 절차를 밟아야 함을 의미했다. 그리고 한 단체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그의 정체성을 말해주게 되었다. 국가의 통제보다는 자유와 경쟁을 통한 상태가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청교도가 종교 체제를 혁신하고자 했던 맥락과 유사하다.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 신학은 종류도 다양했으며, 쉽게 사라지기도 했다(예, 해방신학, 세속화 신학, 흑인신학 등). 당시 나타난 여러 현상들에 대해 저자는 ‘신학의 시장화’라고 불렀다. 이는 자신의 상황에 적절한 답을 줄 수 있는 소비적 신학의 모습을 보게 한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신학은 현실 사회와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현실을 다루었다. 사회나 교회는 신학을 필요로 했고, 신학은 사회와 교회에 기여했다. 현실 세계에서 신학은 당연함과 낯섬을 마주할 때 시작한다. 신학은 상대를 이해하게하며, 나를 보게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신학이 과거의 신학을 오늘날에 다시 살리거나, 유행에 매몰됨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학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내며 각 교회가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학은 교회 안에서도 교회 밖에서도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한줄평이다. 

신학은 교회 안에서도 교회 밖에서도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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