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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골드러시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3년 10월
평점 :

평안남도가 고향인 할머니는 1930년, 만석꾼 집안의 3남 1년 중 막내딸로 태어나섰다. 세 오빠인 일억,이억,삼억에 뒤 이은 김 ,사자, 끝 자, 김사끝이시다. 처음엔 태동이 잦고 헛구역질이 심해서 아들인가 싶어 사억'으로 지으려고 했으나 막상 딸이었다고 이에 상심한 증조부께서는 아침부터 불러 모은 친척들의 등을 떠밀었다고 한다. 서른 말이나 지져 놓은 녹두지짐도 모두 마을 거지들에게 나눠주고 말이다. 수모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오라비들을 이겨먹어봤자 계집애 팔자만 드세다며 사억 대신에 '사끝'으로 이름 지어졌다. 딸은 그걸로 끝이라는 뜻이다.
각설하고 할머니의 집은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고 한다.
그 부자인 할머니 열일곱에 증조부께서 버선발로 끌려가셔 결국 숨을 거두셨고 평안도 제일 가는 부자가 아랫것들에게 두들겨 맞아 죽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장례는 커녕 멍석에 둘둘 말아 뒷산 어딘가에 묻었는데 위치가 어디인지 이제 와서 기억이 날리는 만무하고 그로부터 두 달 뒤, 증조모까지도 화병으로 숨을 거두셨다고 했다. 딱히 지병이 없으셨던 분이 댓돌에서 신을 신다가 갑자기 쓰러져 가셨으니 화병이 아니면 뭐냐는 한탄,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천만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에도 나갔지만 헛수고하신 할머니, 시간이 좀 더 흐른 이산가족상봉이 한창이라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할머니는 북한이 반공, 반공 거리던 사람을 살려둘 리가 없지 않겠냐면서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고 이래봬도 왕년에 부잣집 딸이었다고 하신다.

'가서 금괴 찾아오너라 금괴'
일급기밀인 양 소곤소곤 '그 후로 아주 그냥 집구석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지작 한 몫 챙겨 야반도주 한 첩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절구와 담뱃걸이는 어린 머슴이, 일제 전축과 붉은 칠을 한 오동나무 탁자장은 행랑아범이, 괘종시계와 비녀와 노리개등 온갖 금은 패물들은 부엌데기들끼리 작당하고 나눠 가진 뒤에 도망갔다고 한다. 그러니 해코지 당할까봐 차마 무서워서 내다보지도 못하셨다고 하는데 그 때 그 분위기는 정말 살벌했을 것이다.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놈들이 끝내 건들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앞서 말한 금괴,

사람은 살면서 난을 세번 겪는다고,
천지가 바뀌는 일? 윗물과 아랫물이 서로 팔자가 바뀔 일만 남았다. 이말이지
식구들 다 자는 야삼경에 혼자 땀 뻘뻘 흘리면서 마당에 금괴를 묻고 있지
오줌이 마려워서 일어났다가 봤는데 짱짱한 고물로 된 가방에다가 금덩이를 이만큼 쑤셔 넣고는 그 위에다 시뻘건 황토 흙을 척하니 얹더라고 딴딴하게 묻을라 그랬나 어쨌나, 왜 하필 종이돈이 아니구 금괴였느냐? 종이돈은 언제구간에 화폐가 저기(개혁)되면 그래 버리니까(휴짓조작되니까)그런거지(금을 묻은 거지) 니 증조부가 아주 머리가 비상한 분이셨다고, 니가 경찰에 떠억하고 붙은 것두 다아 증조부 머릴 닮아서 그런거야 이러시면서 계속 말씀을 이어가신다.
할머니는 통일만 돼 봐라, 우리 아버지가 묻어둔 금괴 찾으러 갈거다고 외친다.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인심도 쓰고 금괴를 찾으면 주겠다고 한다.
백살을 채워 청려장을 받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무색하게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 결국 돌아가신다.
리앤프리를 통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