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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전문 산악인 창해 정란 - 조선의 산야를 누비다
이재원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2년 10월
평점 :

남이 가지 않는 길을 평생 걸어온 사람에게 달리 어떤 찬사가 필요하겠는가?
창해일사(창해는 넓고 푸른 바다 "일사"는 세상 뒤에 숨어 사는 선비를 뜻함)란 호를 가진 정란은 관직에 뜻을 접고 조선 팔도 오악산과 명산대천에 발자국을 남기겠다며 평생 주유했다 좌의정 채제공은 그를"자네야 말로 썩어 없어지지 않는 존재"라 평가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그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릴때 "수백 년이 흐른 후 과연 누구의 이름이 남겨지는지 보자"는 이용휴의 글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수백 년 전의 정란이란 인물이 숙명처럼 다가왔다 선구자적 의지로 이뤄낸 그의 발자취가 주목받지 못하고 무가지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정란이 남긴 발자국과 기록들을 쫓아 다시 이백오십여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위에 백두대간.정맥표시
정란이 다녀간 곳(추정)을 포함한 우리나라 주요 산 지도
나름 지역의 근처 산을 탔다고 생각하는데 정란이 다녀간 곳을 추정하는 산도 몇 곳은 탄 기억이 난다
조선최초의 전문 산악인을 통해 그때의 조선의 산야를 누비보려 한다
수많은 사람이 길 위에서 스승을 만난다
이황이 이르길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와 같고, 산을 오르는 과정을 도의 절정을 찾아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조선 선비들은 산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자는 산을 좋아한다,
영,정조 시대에 조선 팔도를 주유했던 양반들이 있었다
명문가 집안의 권섭과 양반가문의 이중환,신광하가 그들이다
권섭은 가마와 식솔을 대동하고 명산을 유람하며 기록으로 남겼고
이중환은 과거에 염증을 느껴 산하를 누비며 <택리지>를 저술했다
신광하는 삼십년 넘게 과거를 본 백년 서생이면서도 불현듯 산청 유람을 나서고 백두산까지 올랐다가 뒤늦게 벼슬길에 오른 인물이었다
창해일사,,,(창해,,,넓고 푸른바다, 일사,,,세상 뒤에 숨어사는 선비를 뜻함)란 호를 가진 정란은 관직에 뜻을 접고 조선팔도 오악산과 명산대천에 발자국을 남기겠다며 평생 주유했다
좌의정 체제공은 그를 "자네야 말로 썩어 없어지지 않는 존재"라 평가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그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릴때 "수백 년이 흐른 후 과연 누구의 이름이 남겨지는지 보자"는 이용휴의 글귀
수백년 전의 정란이란 인물이 숙명처럼 다가오고 선구자적 의지로 이뤄낸 그의 발자취가 주목받지 못하고 무가치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두렵고 안타까웠는데 그런 이유로 저자는 정란이 남긴 발자국과 기록들을 쫓아 다시 이백오십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정란은 조선팔도 명산에 오르고 역사적 현장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보람되고 흥에 겨웠다,삼십년간 조선 팔도를 함께 유람했던 살붙이 같은 청노새와교감하며 이별여행을 떠났고 설악산을 산행하다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 수행동자는 발 뻗고 울음을 터트리고 청노새는 얼굴을 비비며 껑충껑충 뛰었다 애꾸 수탉의 예지력으로 목숨을 부지한 적도 있었고 고집스럽게 산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교유했던 수많은 지식인과 예인의 진심 어린 격려때문이었다.
정란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지만 그가 만들고자 했던 <동국산수보>와<방어도>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유람기와 <붙후첩>을 남겨 후세에 디딤돌이 되고자 했다
정란을 통해 산악인들이 자유로이 조선 산야들을 누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앞서간 모습이 후손들은 편하게 산을 오르게 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