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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종친회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2년 9월
평점 :

흑심을 품고 노비 종친회를 세운 남자와 하나 둘 몰려드는 후손들이 빚어내는 예측불허의 코미디
조상 잘 둔 사람은 명절에 해외여행간다 라는 개똥같은 말이 언제부터 퍼졌는지에 대해 봉달은 한쪽 다리를 덜덜 떨며 생각에 잠겼다
봉달은 벽에 붙은 콘센트와 일심동체가 되어 사발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모멸감에 온 몸이 화끈거렸다
엄니한테 내려가 혹시 "우리 일가 중에 뭐,,,누구 잘 사넌 집 얼을까아?"엄니는 혹시 또 사고 치고 내려왔는지 걱정을 하는데 귀가 번쩍 하는 말을 듣게 된다
"국가기록협횐가 무신가, 거서 교수며 학자며 죄 온대데?"
엄니의 못짓 하나하나를 결코 놓치지 않았고 이윽고 첩첩이 쌓여있는 약봉투 옆에 낡디낡은 전국 전화번호부를 촤라락 펼쳤다 그 틈에 박힌 종이를 꺼내 드는 엄니, 순발력있게 얼런 넘겨 받는 봉달, 테두리가 낡고 색이 바랜 고문 서로 크기 A4 용지보다 좀 더 큰 사이였다
"교지"라고 쓰여 있고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헌상규,고조부의 함자가 맞았다
조상 잘 만나 남들 다 노는 평일에 해회여행 갈 팔자는 못 돼도 집에 내려오는 고문서를 팔든,그도 안되면 종친회 어른들을 살살 구슬려서 돈을 꾸든 해서 어떻게 입에 풀칠이라도 해볼까 싶었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이건 임금의 교지가 분명하고 광서 이십년이라 쓰여 있지요?당시 중국의 연호를 사용했기 때문이고 서기로 따지면 1894년 고종임금시절로 판정단으로 온 국학연구원이 돋보기를 거두며 말하자 자리에 함께한 한 젊은 학예연구사가 다소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시종 그는 사회자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렇다면 벼슬을 내린 고지가 맞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예 그런데 여기를 잘 보시면, 납,통,정,첩. 이라고 쓰여 있죠? 납,말 그대로 뭘 냈다는 뜻이고요 통정은 벼슬 품계를 말하는데 그 옆을 보셔야 되는게 뭐냐면, 조,십,이,석,이라 쓰여 있지요? 쌀이 열두 가마라는 뜻인데 쉽게 말해서 이 문서는 공명첩입니다"
공명첩,,,임진왜란 이후 나라 재정이 바닥나기 시작하자 조정에서 머리를 쓴다고 쓴게 백성들에게 말분이지만 그럴싸한 자리 하나 줄테니 뭐라도 내놔라~해서 생긴 제도 비 공,이름 명,,,이름 칸을 비운 채로 무슨 직첩을 준다 ㅇㅇㅇ에게 이런 식으로 대량 남발한 문서, 한마디로 신분 질서 붕괴의 대표적인 물건이 하필 봉달의 집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쌀 열두 가마를 바치고 받은 이 정 3품 통정대라는 허울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양반은 아니다 폐쇄적인 조선시대에서 마을사람, 더 나아가 백리 안에서는 서로가 어떤 집안사람인지 훤히 다 아는 마당에 갑작스런 양반행세란 얼토당토 않다 그럼에도 곡식을 바쳐서까지 양반인 "척"을 하고 싶었을까 어차피 자손에게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는 어직에 불과한 것을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