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 지금은 사라졌지만 꼭 기억해야 하는 우리의 역사
은동진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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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졌지만 꼭 기억해야 하는 우리의 역사,,,

은동진 선생님이 들려주는 임정 로드 27년의 기록

 

상하이에서 이동 시기를 거쳐 충칭까지

찬란하고 비장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발자취

초.중.고 총 12년 동안 교과서를 통해 임시정부를 만나왔지만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그저 시험에 나오는 이봉창,윤봉길의사의 의거만 기억할 뿐 임시 정부 예하에서 활동한 한인 애국단원이 80명이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1910년 국권 피탈 시기부터 1945년 광복이 되기꺄지의 잔혹 했던 일본 식민 통치라는 큰 틀 속에서 임시 정부의상하이 시기(1919~1932),이동시기(1932~1940),충칭시기(1940~1945),광복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시기(1945~1948)를 함께 따라갈 것이다

 

3.1운동을 통해 독립국임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민족 대표 33인이 함께하지 못했고 구심점이 되는 정부나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열망과 의지를 한 곳에 결집 시킬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 결과 3~4월에 국내외 각지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3.1 운동에  가졌던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다

 

위 사진 1920년 상하이 와이탄 전경

아래 사진 상하이 와이탄의 현재 모습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3.1 독립 선언의 대표인 손병희를 대통령으로 추대

향후 미국 지역이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미국에서 인망이 높은 이승만과 안창호를 국무총리와 내무총장에 각각 선입했다

이들은 연해주에서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권은 군무총장 이동휘,탁지총장 윤현진,

산업총장 남형우,참모총장 유동열등이 주도했다

독립의지를 분출했던 3.1운동은 상하이 독립운동가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정부수립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했다

 

 

우여곡적 끝에 임시 정부 개조안 합의된 후 1919년 6월 6일 통랍 임시 정부의 개정 헌법 탄생

9월 11일에는 신헌법 공포하고 내각을 발표하면서 "상하이 통합 임시 정부"시대가 시작

상하이 통합 임시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성 정부의 "집정관총재"라는 명칭이 "대통령"으로 바뀐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이 부분은 이승만과 깉은 관련이 있다

이승만은 상하이 임시정부에서는 국무총리로, 한성정부에서는 집정관 총재로 임명되었던

오늘날로 치면 이승만은 여러 집단과 단체에서 사랑받는 "핵인싸"였던 것이다

이승만은 두 정부로부터 핵심 직책에 임명되자 한성 정부의 집정관 총재만 받아들여 미국 워싱턴에

"대한공화국 임시 사무소" 라는 한성 정부 간판을 내걸고 활동했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910년 국권을 피탈당한지 9년 만에 3.1운동 정신을 계승하여 단절되었던 한 민족 정권을 다시 세웠다는 것이다

정치 체계에 있어서는 오랜 기간 이어온 군주제가 폐지되고, 한국 역사상 최초로 헌법에 기초한 민주 공화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것은 황제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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