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광수생각
박광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신문에 ‘광수생각’이 연재될 때 나는 그림을 저장하여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쓰기도 하고, 블로그의 메인으로 올리기도 했고, 그냥 그림들을 죽 넘기면서 하나하나 감상하기도 했다. 신뽀리가 나오든 아니면 한 컷의 정물화처럼 나오든 그 컬러풀하고 따뜻한 색감과 산돌광수체 폰트, 그림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맨 밑의 한 줄을 정말 좋아했다.
그러다가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인한 잡음, 이혼과 재혼 등을 거쳐서 이제는 그의 작품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던 차에 어찌어찌하다가 ‘나쁜 광수생각’을 사게 되었다. 이 책이 발간된 지는 꽤 오래 되었으나 지금에서야 읽게 된 것은, 그가 주류에서 벗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성에 관한 담론과 에피소드, 기성 체제에 대한 반론 등이 많기 때문인지 19세 미만 구독 불가로 되어 있는데, 30대도 훌쩍 넘은 내가 읽기에는 그다지 강도가 세지 않다. 2장과 4장은 이전의 ‘광수 생각’과 마찬가지로 한쪽에는 그의 카툰, 한쪽에는 그에 얽힌 글이 나오는 형식이고, 3장은 한글 자음마다 선택한 그의 낱말 사전이 수록되어 있다.
‘광수생각’의 주인공이 신뽀리였다면 ‘나쁜 광수생각’의 주인공은 가운데 머리가 벗겨지고 초등학생 수준으로 가슴이 나온 퉁퉁한 중년 남자이다. 이 중년 남자는 여학교 앞에서 바바리맨이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부인과의 잠자리에서 잠이 들어서 혼나기도 하며, 틈만 나면 부인에게 들키지 않고 바람을 피우고자 하는 사람으로, 박광수 작가를 대변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착하고 감성적인 생각을 주로 하는 신뽀리에서 벗어나 이제는 현실로 돌아온 박광수씨는 이제서야 ‘나쁜 생각’이자 ‘현실에 맞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순정만화에서 이제는 현실 만화를 읽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다 보니 신뽀리를 좋아했던 독자들은, 그의 사생활을 작품에까지 중첩하여 나쁘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이 야하다거나 더럽다고까지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작품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박광수 씨가 가정학 강사였다거나 도덕적인 인물로 추앙받던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이 책을 통해 현실에서 작가를 다시 만나서 기분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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