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에게 주는 요리책 - 친정엄마와 딸이 함께 쓴 별난 부엌 이야기
박형옥, 박이은경 지음 / 이프(if)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친정 엄마의 손맛을 이어가자고 하는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모녀의 ‘요리’와 관련된 생각과 여자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남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제안들을 수록한 요리책이다.
딸보다 더 급진적이고 개방적이며 태생적인 페미니스트인 친정 엄마 박형옥씨는 딸 박이은경씨가 자기 자신을 잃지 않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학업을 마치고 결혼 때문에 진로를 망설일 때 ‘남자는 많으니 결혼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다’면서 딸을 격려했다.
딸이 결혼하면서 묘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는 친정 엄마는 딸이 시집 생활에 휘둘리지 않도록, 혼자서만 종종거리지 않도록 딸과 사위의 생활에 개입했다. 출가외인이라는 명목 하에 시집간 딸을 내치지 말고, 인생의 대선배로서 딸을 지지해주는 울타리, 친구가 되어 주자고 말한다.
옛날처럼 부엌이 따로 독립되어 있어서 남자들이 들어오면 ** 떨어진다고 겁을 주던 상황에서, 부엌이 집 안에 들어오고서도 가족들을 등지고 구석에서 혼자 일해야 했던 상황에서, 이제는 주방이 집의 중심부로 진입하고 조리대가 거실 쪽을 향하는 개방형으로 바뀌면서 부엌과 요리의 위치가 많이 격상되었다. 그렇지만 그런 하드웨어적 현실이 좋아졌어도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여자 뿐이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나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원래 어릴 때부터 가사 노동의 불공평함에 대해 반발이 강했다. 엄마가 굳이 공부하는 나더러 남동생 라면을 끓여주라고 할 때부터, 3녀 1남 중에서 아들만 유난히 챙길 때부터 우리 집에서는 가사의 평등은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내가 시댁에 가면 부엌에서 떠날 수 없는 것과는 반대로 남편은 처가에 가도 거실에서만 머물렀다. 같이 일하는 입장인데도 주말이 되면 남편은 TV를 보면서 비스듬히 누워있고, 나는 못하는 요리에 스트레스를 받고 부엌에서 종종거리며 남편에게 짜증을 내기 일쑤이다.
이런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 모녀에 대해서, 인간 평등과 자매애를 강조하는 이들의 생각에 대해 나는 전폭적으로 동감하고 찬성하면서 책 한 권을 읽어나갔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지만, 요리와 음식에 대해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남편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야 할 책이 되었다.
소개된 요리들은 다른 요리책처럼 간장 한 큰술, 소금 한 줌 등의 자세한 내용은 없다. 글을 쓴 이들이 그렇게 요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해진 입맛은 없으므로 이런 대략적인 레시피로도 각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요리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부부가 같이 만든다면 공동 노동의 맛이 더해진 멋진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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