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풍경들
김원일 지음 / 작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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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작품이 쓰여지던 시대의 상황과 작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한다고 하지만, 단편적인 독자의 눈으로는 한단계 필터를 거치고 소설적 상상이 들어간 작품 안에서 작가의 숨결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육성이 고스란히 들어간 이런 책이 반갑게 다가온다.
김원일 선생님은 느낌표 추천도서로도 유명해진 ‘마당 깊은 집’에서 한국전쟁 이후 가난했던 시절을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세세한 묘사와 더불어 시절의 간난함을 느끼게 해 준 묘사는, 그의 삶이 바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생명력이 있었음을 다시 알게 되었다.

‘기억의 풍경들’의 초반은 뚜렷한 경향이 없이 날씨 이야기도 나왔다가 정치 이야기도 나왔다가 여자 이야기도 나오고, 제목에 충실하게 그의 기억 속의 풍경들을 이야기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들도 상당하고 세대 차이도 조금은 느껴진다. 접속사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건조한 문장 때문에 말이 턱턱 막히는 듯도 하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후반부, 그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 슬슬 사라지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좌익으로 사상운동을 하다가 한국전쟁 이후 단신월북하고, 어머니와 4남매는 가난으로 어렵게 살아갔다. 고학으로 학업을 마쳐야 했고 건강도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던 작가의 삶은 이념과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토로하도록 만들었으니, 그런 주제의 편향성을 아쉬워할 수 없었다.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써야만 하기 때문에 쓰는 사람들이 바로 작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작품과 연계하여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40여년의 문학 생활을 조용히 돌아보는, 일종의 짧은 자서전이 된 듯하다. 전쟁과 빈곤 외에 장애와 그림까지, 어찌 보면 천편일률적인 사랑보다 읽을 거리가 풍부하다. 가벼운 내용과 여성적인 필체를 선호하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잘 읽히지 않을 수도 있음이 아쉽다.

예순을 넘긴 작가의 음성은 차분하고 낮았으며 깊이가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김원일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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