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끼 키우기
클로이 달튼 지음, 이진 옮김 / 바람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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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끼키우기 #클로이달튼 #바람북스 #서평 #책추천

산토끼 키우기. 클로이 달튼 지음/이진 옮김. 바람북스. 2026.
_평화로운 산토끼의 삶이라는 것은
햇볕을 쬐고, 뒹굴고, 쉬고, 졸거나 꿈꾸며,
매 순간 충실한 삶이다.

토끼와 산토끼가 다른 줄도 몰랐다. 그저 토끼면 토끼지, 하는 생각으로 지금껏 토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특히 토끼라는 존재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흔하게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토끼가 생소했다. 물론 옛 이야기 속에서는 자주 접하는 동물이지만. 별주부전이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라든지, 달에서 떡방아 찧는 토끼라든지. 하지만 산토끼, 야생에서의 동물을 키운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의아했다. 인간은 정말 뭐든, 인간 중심적으로 동물을 키우려고 드는 건가 하는 살짝 삐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토끼든 산토끼든 그 구분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이 모든 동물들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 수 있어야 한다는 그 생각과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 저자의 경우도 산토끼를 오래 키우며 당연히 산토끼에게 향하는 마음이 생기다보니 모든 동물을 공평하게 대할 수 없었음을 인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랜 시간이 쌓여 형성된 관계는 쉽게 다른 관계에서 밀릴 수 없으니까. 특히 산토끼를 사냥할 수 있는 족제비라면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어쨌든 저자도 나도 관계 속에서 존재적 의미를 찾게 되는 인간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끊임없이 산토끼의 삶과 야생의 생태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흔히 '키우기'라고 하면 응당 인간의 손과 힘이 동물에게 가해질 수밖에 없고 또한 그것으로 인한 동물의 삶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하는가에 달려있고 또 얼마나 그 대상에 대해 알고 공부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느꼈다. 언젠가 지인들과 이야기하며 왜 인간들은 아직도 여전히 그들 중심으로 이 지구가 움직여야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러면서 지구에 해를 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긴 이야기 끝에, 몰라서, 알려고 하는 마음조차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이와 같은 마음인 것이다.

솔직히, 정말 저자가 산토끼를 키운 것이 맞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오히려 산토끼가 저자를 키운 것은 아닐까. 우리가 키운다는 의미를 양육의 의미로만 말하지 않는다면 분명 저자는 산토끼로부터 성장했고 성숙했고 시야가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또 인간이 어떤 마음을 갖고 주변을 바라볼 줄 알아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함께 하고 있었다. 동물들이 인간의 이기심 내지는 경제적 논리에 따라 수많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며 감정적으로만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세계가 무엇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 안에서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은 각각 어떤 위치에서 움직여나가야할 것인가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산토끼로부터 비롯된 관심이 처음 보는 아주 작은 풀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나아가는 그 과정이 진짜 저자가 커나가는 모습인 게 아닐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동물을 공부할 이유가 생겼고, 그들에게 길을 내어준다고 해서 결코 우리의 삶이 축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공생은 우리 삶에 더 깊은 통찰을 주고 어쩌면 우리 삶을 더 근사하게 만든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산토끼와 이 땅의 생명들이 어디에서든 더욱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216쪽)

사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결론일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말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 식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는 늘, 그 뻔한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문제가 되곤 하니까. 이런 두말이 필요 없는 이야기가 그래서 더 감동이 있고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런 이야기가 소중한 이유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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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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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완벽한장례식 #조현선 #북로망스 #서평 #책추천

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장편소설. 북로망스. 2026.

궁금했다. 과연, 완벽한 장례식이 되려면 어떤 장례식이어야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제일 첫 번째 든 생각이었다. 한 번도 나의 장례식이 어땠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간혹 읽었던 책에서 장례식을 미리 열어 지인들을 초대해본다거나 혹은 검은색의 장례식 복장이 아닌 무지개색의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접한 적은 있었지만, 정작 '나'의 장례식을 떠올려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제목이 주는 궁금증이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더 궁금했다. 장례식에 대한 얘기는 언제 나오는 거지? 내가 잘못 읽고 있나? 싶어 계속 표지를 다시 보고 또 보면서 이야기를 읽어 나갔다. 그러면서도 내용이 재밌어서 또 금방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좀 무서웠다. 나희가 느꼈던 감정을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공교롭게도 소설을 밤에 혼자 읽어 더욱 살짝 주변의 어둠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에는 나도 자꾸만 벽시계 쪽으로 시선을 두기 부담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오싹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너무 무서우면 딴 데 보지 말고 그 할머니 눈을 봐. 조금 덜 무서워질 거야."(217쪽)
나희는 이제 밤 근무가 특별히 무섭지 않았다. 수영의 충고대로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면 두려움보다 연민이 커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259-60쪽)

어쩌면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의 변화가, '두려움보다 연민'으로 가던 나희의 감정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었다. 나희가 가졌던 공포와 무서움이 결국은 연민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 역시도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연민, 안타까움, 슬픔 혹은 안도 등의 감정에 더 휩싸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주고 또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하고 말이다. 나희나 수영의 태도가 사실은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이런 오지랖이라면 기꺼이 그리고 너무나 감사한 오지랖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런 오지랖을 부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인물들이 갖고 있는 타인에 대한 애정과 배려, 존중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눈 감고 귀 닫고, 보고 듣지 않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나희에게 당부했던 것처럼 그렇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럴 수 있었다는, 이와 같은 선택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하고 용기있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왜 이 소설이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점점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그건 바로 나희나 수영이 갖고 있는 마음에 있었다. 이 인물들이 보여준 마음이 덩달아 나의 마음에 영향을 준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제목을 봤다. '완벽한'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장례식이란 죽은 이를 기억하고 떠올리며 평안하기를 비는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평안. 그렇다면 나희가 그들에게 해준 것은 어떤 장례식보다도 훨씬 더 '완벽한 장례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장례지도사와 함께 가는 모습을 나희 역시도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덧-
왠지 <나의 완벽한 장례식 2>가 빨리 나와야할 것 같다. 그냥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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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 - 초가공식품과 식품산업이 만들어낸 게걸스러운 인류의 탄생
헨리 딤블비.제미마 루이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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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어떻게지구를먹어치우는가 #헨리딤블비 #제미마루이스 #어크로스 #서평

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 헨리 딤블비, 제미마 루이스 지음/김선영 옮김. 어크로스. 2026.
_초가공식품과 식품산업이 만들어낸 게걸스러운 인류의 탄생

인간이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도 인간이 문제인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중심으로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은, 어떻게 지구를 망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여전히 지구는 언제나 인간에게 모든 것을 희생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희생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당연히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떠한 반성도 후회도 없이, 이제는 미래도 없이 지금만을 생각하며 욕심껏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이 언제나 늘 화가 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반성했다. 결국 이 모든 인간의 삶조차도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 아는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부나 지역, 환경의 차이가 결국 어떤 생활을 할 수 있는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을, 지금껏 막연하게만 생각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가끔 속으로 생각했었다. 빈민층이나 낙후된 곳의 사람들의 비만에 대해서.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혹은 오해하기도 했다. 사실은, 그들이 적절한 영양 갖춘 식사가 불가능하다는 것, 식품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그래서 정부나 학교에서 공적으로 제공해주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을 얻기 힘들다는 것, 가장 어려울 때 제일 먼저 줄이게 되는 것이 식비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제대로 인식하게 됐다.
그래서 꾸준히 정부의 변화, 정치인들의 각성, 국가나 사회가 어떤 정책과 경향을 따라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를 계속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이전에도 환경이나 동물, 기후와 관련한 책을 읽다보면 늘 결론은, 정치나 법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기업과 같은 영향력이 강한 곳에서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도 결국은, 개인의 문제나 변화로 지금의 위기를 설명하지 않고 있었다. 역시,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작은 힘만으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지점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아쉽게도 영국 정부에서는 이렇게 단호한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 가지 이유는 영국이 정치철학의 근본 질문 중 하나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국가가 시민의 사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다.(113쪽)

'유모국가'라는 말도 이 책에서 처음 들었다. 아, 그렇기도 하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자는 국가의 관여를 강조하고 있었다. 개인의 의지 문제로만 넘기려고 하는 식품회사, 제약회사의 꼼수를 가만 놔줄 수 없고, 또 국민들의 건강이 망가지는 것을 두고볼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이 정도의 방대한 연구와 보고서라면, 영국 사회가 움직여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호주와의 협상 이야기를 보면 아직도 여전히, 이쪽으로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구나 싶기도 했다. 저자가 왜 이토록 영국 사회에 답답해하고 있는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인간은 자연 안에 있을 때, 야생 공간에 접근할 수 있을 때, 정신이 풍요로워지고 삶의 질도 향상된다. 인간을 완전히 배제하더라도 자연계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정확한 동기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자연의 파괴를 멈추고 자연을 풍요롭게 되돌리는 것을 공통의 의무로 삼는 것이다.(150쪽)

이 책을 읽으며 여전히 자연 안에서의 인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인간의 삶이 전제가 된 자연의 이야기를 할 때의 한계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봐야 한다. 분명 자연이 먼저였는데 어느 순간 인간의 생존 능력이 월등히 높아져 자연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자연은 너무 많다. 물론 모르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인간은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공통의 의무'다. 아무리 인간의 삶이 중요하다 해도 가장 근본적인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나온, 마법사와 예언자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물론 사람들의 생각을 각자 다르다. 다른 생각과 기호, 성향과 가치관을 무조건 한 가지로 통일한다거나 혹은 사회 전체를 채식주의자의 사회로 만들자고 호소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최소한, 다른 사람의 생각에 우선은 귀 기울이고 서로 대화하며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한다고도 생각한다. 나와 다른 생각이니 무조건 아니야, 하는 식으로는 어떤 미래도 희망적일 수 없다. 물론 저자는 지금 어떻게 변화해야 우리의 미래가 이상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책 전반에 걸쳐 내내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이루어지지 못해 안타까운 것이 있음을 함께 제시하고 있었다. 어느 사회든 비슷할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을 제대로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지구에서 어떻게 함께 살고 싶은가에 대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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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참 이상한 마음 황인찬 시에세이 2
황인찬 지음 / 안온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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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참이상한마음 #황인찬 #시에세이 #안온 #서평

시는 참 이상한 마음. 황인찬 시에세이2. 안온. 2026.

제목에 이끌린 책이었다. 정말 내 마음을 딱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진짜, <시는 참 이상한 마음>이다. 시를 어떻게 봐야할 지 해석해야할 지 혹은 써야할 지. 이 모든 마음이 참 야릇하고 이상하다. 분명 어려워서 멀리하고 싶다가도 늘 시가 주변을 얼쩡거린다. 아니, 사실은 내가 시 주변을 쭈뼛대며 엉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시집도 좋아하지만 이런 시에세이도 참 반갑다. 내가 엉기는 마음과 혹여라도 비슷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읽다보면 한편으로 안심이 되기도 하니까.
안심이 된다는 말이 요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시인의 시에세이에서 오히려 마음의 안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시읽기에 대한 다독임 혹은 나의 시에 대한 마음에 자극제 같은,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겹치게 될 때, 그 시가 또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랬던 시를 이 책에서도 발견했다. 박용래의 '물기 머금 풍경 2'와 김상혁의 '영화관'이 그랬다. 시에세이가 마음이 들어왔고, 나의 마음이 시에 들어가면서, 시를 다시 읽게 만드는 대표적인 시였다. 물론, 다른 시들도 나의 읽기 속도를 내내 늦추게 만들었지만.

드문드문 상고머리 솔밭/넘어가는 누런 해/반쯤만 본다./잉잉 우는 전신주/귀퉁이에 매달린 연 꼬리/아슬히 비낀 소년의 꿈도(54쪽_'물기 머금 풍경 2' 중)
영화가 끝나지 않아서, 영화가 점점 더 좋아져서/그대로 앉은 채 이야기에 다시 빠져버리고 말았다/나는 밖에서 그녀의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린다/여주인공이 마지막엔 꼭 잘되었으면/여자를 괴롭힌 마을도 다 불타버렸으면 좋겠다(159쪽_'영화관' 중)

이 두 시는 너무 슬퍼서, 그리고 너무 행복해서, 마음에 오래 남았다. 별 얘기 안 한 것 같은데도, 이렇게 아프게 슬플 수가 있나 싶었고, 또 이렇게 평안하게 행복할 수가 있나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이 시는 어른이 되는 일과 '선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시이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한 선물이 결코 마음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사랑이 의지와는 무관하게 좌절되는 방식에 대해, 그럼에도 관계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어떤 정성스러움에 대해, 아주 시니컬하면서도 귀엽게 말하는 시입니다.(47쪽)

'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린이날 선물을 받지 못하는가?'(김승일) 시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만으로도 확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는 시다. 그리고 어린이와 어른, 그 사이에서 선물에 대해 갖는 마음을 어찌 다르려야한다는 걸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선물' 좋아한다는 어른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우리가 과거를 그리워하게 된 것은 어려운 삶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155쪽)

'세기말을 떠나온 신인류는 종말을 아꼈다'(고선경) 시에 대한 이야기다. 시보다도 에세이의 저 한 문장이 확 와닿았다. '레트로피아'란 용어를 사용하며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할 때, 과연 나는 어떤 그리움으로 어느 방향을 향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해보고 되었다. 우리가 닿고자 지향하는 곳이 실제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동경하게 됨을 염두에 둔다면, 진짜 미래에 상상의 힘을 잃고 우린 과거에 뒤를 돌아보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한참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침묵 또한 대화의 방식이라는 점을 빠뜨려서는 안 될 겁니다. 사실 시는 말하기보다 침묵하기를 더 좋아하는 양식이니까요. 불투명한 언어들 사이, 분별이 흐려진 말들 사이에 침묵은 잠시 찾아옵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그 모든 작고 애매한 말들을 헤아리며 비로소 진정으로 대화하게 됩니다.(10쪽)

침묵의 대화. 시는 침묵하기를 더 좋아하는 양식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침묵이 만들어내는 그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양하고도 감성적인 느낌을 찾아 시 주변을 기웃대는 것이기도 하니까. 시가 갖고 있는 이런 힘이 곧, 이상한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상한 마음이 좋은 것이고. 이런 이상한 마음을 시인이 시로, 그리고 시에세이로 이야기해주니,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이런저런 감정으로 이리저리 움직여다닐 수 있었다. 참 이상한데 참 기분 좋은 마음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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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없어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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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없어 #김지현 #돌베개 #서평

유자는 없어. 김지현 장편소설. 돌베개. 2026.

책을 읽기 전에도,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제목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책 읽기 전의 궁금증은 책을 다 읽으면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아리송하다. 유자는 왜 없다고 하는 걸까. 이 궁금증의 답을 찾아나가봐야겠다.
거제라는 공간이 이 소설에서 중요한 공간적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상대적인 공간으로 서울을 두고 있다. 서울과 거제의 거리감과 그런 거리에서 비롯되는 막연한 동경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말에,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서울이란 공간이 가야할 최종적 목표가 되는 듯한, 그 서울이란 공간에서야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혹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서울과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외 지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지안이가 선생님과 나누었던 상담에서도 당연히 인서울 하는 것이 정해져 있는 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안이도 지금의 거제라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도 보인다.
아마 이 시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을 다 보낸 이후에는 지금의 이 공간에서 벗어나야지,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 하는 마음. 나의 경우도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면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 혹은 다른 공간에서 새롭게 새출발을 하고 싶다는 갈망. 하지만 공간이 달라진다고, 환경이 달라진다고 나 자신이 함께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은 내 마음이 어때야할 것인가의 마음 먹기에 달려있는 것일 뿐.
그런 면에서 전학생, 김해민의 행동과 태도에서 그런 마음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 지안이나 수영과는 전혀 상반되는 시간을 보내온 아이가 해민이기 때문이다. 지안과 수영이 한 곳에서 지내왔다면 해민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지내왔다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해민에게는 서울이든 거제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무르며 정착하고 싶다는 갈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 어찌보면 막연하게 지안이 가지고 있던 미래에 대한 막연함은 어쩌면 지금의 삶이 너무도 안정적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해민에게는 오히려 지금의 삶이 막연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서는 보다 확실한 목표를 지니고 있을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유자가 없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 보면, 유자는 어찌보면 지안의 삶을 대변하는 요소일 것이다. 지안이 살아온 공간의 대표적인 산물이면서, 지안의 부모님의 삶도 그 안에 담겨 있다. 이는 고스란히 지안의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지안의 별명으로 쓰이므로 곧 지안 자신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자가 곧 지안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해민이 계속 전학생으로 불릴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 아이들(혹은 이재희를 포함한 네 사람)은 모두 자신이 놓여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고자 한다. 자의든 타의든 온전히 자신으로 봐줄 수 있는 이름을 찾아 그 이름에 맞는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매사 진지했다. 어쩌면 이 소설의 제목은, 그런 이들의 노력을 보여주려는 제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아이들이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과정. 지안이 고래뱃속과 같은 터널을 무사히 지날 수 있도록 해준 존재들과 그런 지안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동력일 것이다. 그러니, 유자가 없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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